[이 아침의 시] 우울해지면 먹는 약 / 박광배

서대선 | 기사입력 2024/10/14 [10:12]

[이 아침의 시] 우울해지면 먹는 약 / 박광배

서대선 | 입력 : 2024/10/14 [10:12]

 

우울해지면 먹는 약

 

엄마랑 장거리에서 나눠 먹던 맛을

잊지 못한다.

씹히던 비계, 비계에 붙은 털이 

목구멍을 긁고 넘어가는 맛.

비릿한 면 냄새.

 

오늘도 짜장면 먹으러 간다.

 

# ‘외롭고 힘들었구나.’ 먼 이국땅에서 공부하던 딸이 문득 전화하더니, ‘꽃게 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새벽꿈 속에 부엌에서 끓고 있던 꽃게 찌개 냄새에 잠에서 깨었다던 딸의 목소리에 담긴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열흘에 한 번씩, 딸이 다니던 학교 사무실 팩시밀리로 A4 용지에 가득 가족들의 소소한 소식과 가족 얼굴 캐릭터를 그려 보내면서 탯줄처럼 연결된 마음을 지니도록 신경을 썼지만 홀로 낯선 땅,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리고 조그만 체구임에도 대학 신입생 때 지리산 종주도 해냈던 강단과 독립심 강한 차돌 같은 딸이 처음 외롭고 힘든 마음을 내비친 것이다.

 

아이들의 유년 시절, 꽃게 철이 되면 주말 새벽 우리 부부는 가까운 수산 시장에 들렸다. 건새우와 국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내는 동안, 아버지는 꽃게를 손질하고 엄마는 무와 호박과 옥파와 대파와 고추 등을 썰며, 부모가 함께 만드는 꽃게 찌개 속에서 아이들은 사랑을 느꼈던 걸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탁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냄비 속 꽃게를 꺼내 보드랍고 달큰한 속살을 발라 주었던 시간이 딸에겐 일화기억 속에 행복한 추억으로 저장되었었나 보다. 추억의 음식이 불러낸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은 구체적 시간, 공간, 상황에 대한 출처(source)를 지닌 기억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특정 시기나 상황 속에서 오래 추억으로 남는 맛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이때 음식은 행복이며, 사랑이며, 훗날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의 증상은 공연히 슬프거나 눈물이 고이고 공허해지며,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해진다.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불면증이나 과다 수면 같은 수면장애가 오기도 한다. 특히 식욕이 저하되어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공연히 불안하고 집중력도 낮아져 업무나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 죄책감이나 무가치함에 젖는다. 때론 지나치게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지나간 일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괴로워한다. 이런 증상이 2주 이상 지속 되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 원인으로는 유전적인 원인이 아니라면, 환절기를 맞아 일조량의 부족으로 오는 생체 리듬의 변화 이거나 사회생활에서 소속감, 자존감, 인정 욕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한다. 

 

살아가면서 부딪친 문제 앞에서 잠시 “우울”해졌던 시인은 자신의 우울증 증상에 대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유년 시절, 시인에게 가장 행복한 마음을 채워 주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을 일화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기에 외롭고, 힘들고, 우울할 때마다 꺼내 “약”으로 자신을 처방한다. 일화 기억은 생생한 기억의 ‘출처’를 떠올려 준다. “엄마랑 장거리에서 나눠 먹던 맛을/잊지 못한다./씹히던 비계, 비계에 붙은 털이/목구멍을 긁고 넘어가는 맛./비릿한 면 냄새.”가 났던 “짜장면”에 대한 기억이 시인의 편도체(扁桃體)와 해마(海馬)에 저장되어 있다가 현재 새로운 기억으로 재생되어 시인에게 사랑과 소속감과 행복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치유의 음식’으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우울해지면”, “짜장면 먹으러 간다.”고 한다. 

 

먼 이국땅에서 외롭고 힘들고 “우울”했을 때 ‘꽃게 찌개’를 떠올렸던 딸도, “오늘도 짜장면 먹으러” 가며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 우울한 마음을 걷어내는 시인도 사랑의 묘약이 일화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기에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 소속감과 자존감과 행복한 마음을 회복시켜 본래의 자신을 되찾고 씩씩하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폭염(暴炎)도 극한 호우도 견딘 우리 앞에 가을이 당도했다. 일조량도 줄어들 것이고, 환절기에 적응하려는 생체 리듬의 변화도 느끼게 될 것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면, 시인처럼 자신의 일화 기억 속에 저장된 가장 맛있고, 기쁘게 먹었던 사랑의 음식을 찾아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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