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기 제주에 내려와 산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뻔질나게 서울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래도 주 주거지로 엉덩이를 깔고 산지가 이렇게나 되었다. 몇 년 전 동생과 장난처럼 던진 한마디가 현실이 되어 나도 모르게 제주에 내려오게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꿈같았다.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 모 놀이동산의 CM 송처럼 딱 그게 내 마음이었다.
내가 이삿짐을 싸 들고 왔을 때는 이미 겨울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날은 추웠고, 꿈과 희망의 나라였던 제주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날은 추운데 여긴 시골이라 가스보일러가 없었다. 난생처음 기름보일러를 때었어야 했는데, 기름통은 텅텅 비어 있었다. 주유소에 전화해서 등유를 배달시켰는데 세상에, 그 당시 기름값이 천정부지라 한 드럼에 28만 원인가 했던 것 같다.
어르신들 말대로 애끼고 애껴도 한달반을 겨우 쓰는 정도였다. 그것 뿐인가, 마당에는 노래기라고 불리는 까맣고 다리가 많은 벌레가 수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고, 밤이 되면 돈벌레며 바퀴벌레며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이 ‘까꿍’ 하며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시골 생활에 적응을 힘들어했고, 옆집 아저씨는 정말 자주 말을 걸었다. 제주는 오름도 많고, 걸을 데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편하게 걸어 다닐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해가 지고 나면 정말 너무 깜깜하고 음습해서 어딜 돌아다니기에는 무서웠다. 하아-. 시골살이라는 게 말 그대로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때쯤, 나는 정말로 여길 떠나고 싶었었다.
그러다가 봄을 지나 여름을 만났다. 해수욕장이 개장했고, 관광객들이 부쩍 많아졌다. 올해는 날이 정말 너무너무 더워서 집안의 에어컨으로도 한계를 느끼다 보니 우리는 매일 바다에 갔다. 20분 거리에 바다가 있고, 바닷물에 풍덩 하면 그 순간만큼은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름이라 휴가를 맞은 친지와 친구들이 하나둘 놀러 와서 우리 집은 7, 8월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았고, 심심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은 꽤 살만한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제주가 즐거웠다.
그렇다고 제주의 생활환경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름이라 벌레는 겨울보다 훨씬 더 많아졌고, 특히 지네라는 무시무시한 녀석이 자주 출몰하지만, 이제는 처음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오돌오돌 떨지 않는다. 파리를 잡는 전기채와 잽싼 내 팔다리를 이용해 나타나면 금방 저승길로 보내드린다. 최근에는 하루에 한 마리씩의 돈벌레는 매일 마주치고 있고(이름값을 좀 하면 좋으련만….), 손가락만 한 청소년 지네에서 아주 아가아가한 지네까지 다양하게 며칠 건너 한 번씩 마주친다. 성인 바퀴벌레를 마주할 때도 있고, 요상하게 생긴 까만 이름 모를 벌레도 자주 만난다. 저승길로 보내드리면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같이 동고동락할 수는 없어서 빠르고 고통 없게 보내드리고 있다.
습하고 습한 제주날씨에 처음 왔을 땐 기관지와 코가 너무 아팠다. 늘 헐어있는 느낌도 들고 불편했는데, 그것도 이제는 많이 적응되어 힘들지 않다. 매일 몇 통씩 물을 비워야 하는 제습기도 익숙해졌고,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날씨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뽑아도 뽑아도 나는 잡초 때문에 처음엔 너무 지쳤었는데, 이제는 밭일이라는 게 머리를 비우는데 세상 좋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잡초를 뽑다 보면 무념무상의 상태에 다다라서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아닌데 너무 여러 가지를 참견(?)하신다 생각되었던 늘 성가셨던 동네 어르신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여전히 다양하게 신경 쓰이게 하시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시골의 생활방식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고 보니 또 별일이 아니구나 싶고.
영영 적응되지 않을 것 같았던 이곳의 낯선 삶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들다 보니 문득, 이곳에 있었던 시간 동안 내가 별로 한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몸이 아팠으니까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집에만 있었다. 이대로 이렇게 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라던 제주라는 땅에 와서 살기는 했는데, 나는 정작 여행자였을 때보다도 제주를 보지 않았다. 언제든 갈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함과 육지에서 온 부적응자의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다 쓴 것 같다.
동생과 나는 앞으로 1년은 더 제주에 있기로 했다. 아직은 자리를 옮길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떠나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그러기로 했다. 남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봄의, 여름의, 가을, 겨울의 제주를 가득 느껴볼 생각이다. 여전히 마트에 가려면 30분이나 걸리고, 병원은 제주시까지 나가야 하고, 배스킨라빈스라도 갈라치면 차로 한참을 달려야 하지만, 불편한 것이 많은 만큼 좋은 것도 많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소소한 경험을 하면서 ‘나만 아는 제주’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오늘이 즐거운 날을 살면서 말이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고, 마음먹기 나름이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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