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이름을 보면 끝에 ‘어’가 붙는 것과 ‘치’가 붙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 자가 붙은 생선은 비늘이 있는 생선이고 치로 끝나는 생선은 비늘이 없는 생선으로 보면 된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제사상에는 주로 어로 끝나는 생선이 올라가고 치로 되어 있는 생선을 통상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같은 바다 물고기인데 이름이 다르게 붙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과거 몽골이 지배하던 고려시대에 ‘치’자로 끝나는 생선이름이 많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그리 점잖치? 못한 물고기 위주로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몽골이 고려를 지배하던 시절 고려 조정을 감독하기 위해 남겨놓은 몽골의 관리를 ‘다루가치(달로화적 達魯花赤)’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치’는 몽골 말에서 직업이나 사람을 나타내는데 물고기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장사치나 벼슬아치 등의 말에서 이런 몽골 말의 영향을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물고기 이름에서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부르는 물고기 이름 중에 한자 이름이 붙은 것은 19세기인 1814년 손암 정약전이 귀양지였던 흑산도에서 ‘자산어보 玆山魚譜’를 저술하면서 약전이 이름을 붙인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실제로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물고기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 같은 한 여름에 더위를 이기는 음식은 참으로 많다. 복날에 삼계탕을 먹거나 장어를 먹는 등이다. 그중 특히 바닷가 남도지방에서 민어는 바로 여름을 나는 물고기였다. 여름철 민어는 보양식의 대표 주자다. 지금도 여름철에 민어는 호남지역에서 제법 잡히는 여름 물고기이다. 그러기에 백성을 뜻하는 이름 그대로 ‘백성의 물고기’인 민어(民魚)는 요즘말로 하면 국민 물고기였다. 지금이야 귀하디 귀한 몸이지만 과거에는 바닷가에 흔히 잡히는 물고기였던 것이다. 요즘에야 국산 민어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쫒아가지를 못해 아프리카나 중국 등에서 민어 사촌격인 소위 ‘큰 민어’가 수입되기도 한다.
특히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의 부레는 맛도 좋고 용도도 다양하다. 질기지 않고 그렇다고 무르지 않은 특유의 식감이 일품이다. 특히 민어의 부레는 젤라틴 덩어리로 회로 먹어도 일등이지만 과거에는 이 부레를 끓여서 천연 접착제인 아교풀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 민어부레로 만든 아교는 여름철 더위나 습기에도 물러지지 않고 겨울 추위에도 굳지 않는다. 이 아교는 예로부터 물소의 뿔 등을 붙여서 만든 우리나라 전통 활인 소뿔로 만든 각궁(角弓)이나 나전칠기와 장롱을 만드는데 필수불가결의 재료였다.
특히 우리 각궁은 활을 만드는 나무나 뿔 등 재질의 특성을 정(正)방향으로 활용하여 만드는 양궁과 달리 재질의 역(逆)방향의 성질을 이용하였기에 아교와 같은 접착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여름철이나 겨울철에도 아무 이상 없이 접착력을 유지하는 부레로 만든 전통아교는 조선시대 군대전력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민어 없이는 활도 없었다. 요즘의 화학접착제가 여름에는 물러져서 접착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면 민어 부레로 만든 전통 아교는 대단한 물질?이었다. 웬만한 변화나 시련에는 전혀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끈기와 인내를 닮은 민어 부레로 만든 아교이다.
무더운 한 여름 더위에도 아교와 같은 뚝심으로 버티다 보면 입추가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 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민어가 백성의 물고기인 것은 우리 민족을 꼭 닮아서가 아닐까 한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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