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웅, 안우진이 끄집어낸 학폭위 시대상

이환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3/02 [14:44]

황영웅, 안우진이 끄집어낸 학폭위 시대상

이환희 기자 | 입력 : 2023/03/02 [14:44]

#1. 황영웅은 무대에 올랐다. 191만 표의 몰표로 예상 1위에까지 등극했다. 그는 무대를 마친 소감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면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에게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고발을 그치지 않는 와중이었다. 황영웅이 공적 공간인 방송 무대에 서기까지 그의 학폭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 사건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그의 학폭은 묻히게 되는 형국이었다.  

 

#2. 투수 안우진의 학폭은 은폐될 뻔했다. 2017년 4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안우진의 학폭을 두고 학교 측은 쉬쉬했다. 학교는 물론 고교 야구계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한 방송국에 의해 보도되기까지 안우진의 학폭은 교문 안에서 잠겨있었다.  

 

#3. 지난 달 25일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의 경우도 같았다. 강원 소재 유명 자사고에 다니던 정 변호사의 아들 정 모 군의 학폭위 기록은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았다. 정 군은 전학 처분이 내려진 학폭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심판까지 제기한 끝에 전학을 가게 됐다. 거기까지였다. 전학을 마친 정 군은 입시에서 학폭위 결과가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했다. 정 군의 학폭위 조치 사정은 학생 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록되지 않았다. 해당 학교 측은 “정 군 측이 학폭위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해 학생부에 해당 사실을 기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봐주기는 아니었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학교 폭력을 학내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거쳐 현행 학교폭력을 다루는 기구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사회적 효용이 다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교 폭력 가해자의 교화보다는 망각에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도 있다. 연일 학교 폭력에 대한 폭로가 나오는 시기,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학교 폭력 주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 문화저널21 DB

 

학교 폭력의 기억과 기록은 언제까지 존재해야 하나

 

학폭 가해자의 과오는 생애 어느 지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또 한 명의 학폭 가해자가 세상에 등장했다. 한 방송국 트로트 오디션에 참가한 황영웅이라는 참가자의 과거 행적들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황 씨는 폭력 혐의로 50만 원의 약식기소 판결을 받는 등 지역사회에서의 악행들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였다. 황 씨가 공적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의 비위는 세상에 공개됐을까 하는 물음이 따라붙었다. 그의 학창 시절 무수히 열렸을 학폭위, 학폭위의 처분이 황 씨의 인생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학교 폭력 가해 기록 평생 뒷따라야

  

이 같은 경우를 두고 중, 고교를 졸업하면 씻은 듯 사라지는 학폭위의 처분 기록을 두고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해서 가해자의 평생에 따라붙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의 힘 조경태 의원은 학폭 가해자의 학폭위 생활기록을 10년 간 보존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해 최근 잇따른 학교폭력 논란 중에 이목을 끌었다. 해당 입법을 지지하는 의견 다수는 더 나아가 피해자의 상처는 평생을 가는데, 가해자의 잘못은 고작 10년 동안 남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반론도 있었다. 교사 출신의 더불어 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교육적 지도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친구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성인이 돼서 잘 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며 생활기록 10년 보존 법안을 강경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학폭 과거 행적에 반론에 실리는 힘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 현장에선 학폭 심의기구가 몇 안 되는 대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학폭위의 실효성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과거처럼 체벌이 허용되는 시대도 아니지 않나. 학폭위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학교폭력 예방영화 ‘부메랑의 귀환 : 예쁜상처’ 촬영현장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문화저널21 DB

 

학교 내부 자율기구였던 학폭위에서 교육청이 심의하는 학폭심위로

 

학교내 자치 기구로 운영되던 학폭위에서 (학폭 정도에 따라)교육청이 주관해 심의하는 기구인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심위)로 개편되며 많은 기대가 모인다. 학폭심위는 학폭 정도에 따라 학교장 재량으로 해결될 수 있고, 정도가 심하면 교육청이 주관해 심의에 붙인다. 이때 교육청은 피해자와 가해자, 담당 교사 등을 조사해 사정을 청취한다. 조치 결정까지 이어지는 절차인데, 조치 내용은 예전 학폭위와 비슷한 수준이다. 1호 서면사과부터 8~9호 전학 혹은 퇴학까지.  

 

학폭심위 역시 강력한 강제력을 동반하지 않은 맹점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아무래도 사회가 아닌 학교 현장이니만큼 강력한 제재보다 교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전학, 퇴학 이상의 조치가 나오기 어렵다. 

 

학폭심위의 결과가 생기부에 기록되는지 여부도 논쟁거리다. 경미한 사안이 아닐 경우 생기부에 기록되는데, 이를 두고도 일부 교사, 학생, 학부모 단체 등이 인권 침해라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반발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피해자의 피해를 치유하지는 못할망정 가해자의 인권부터 챙기고 있다는 반박에 맞닥뜨렸고 가해자의 교화 및 반성과 피해자의 피해 구제라는 대립 구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학교 폭력 주관 기구 논의해야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잘못에 즉자적으로 대처했던 체벌 시대를 지나 학생 인권을 고루 살핀다는 학폭위 시대를 거쳐왔다. 학폭과 학폭 피해가 이렇게나 만연한 시대에 학교 현장의 학폭을 다룬다는 학폭심위의 역할을 고민할 때가 시작됐다. 강경한 학폭심위의 반작용으로 행정심판 등의 학교 밖 절차가 남발되는 상황을 우려해 학폭심위의 조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건 결국 학폭 가해자의 갖은 수단에 제도가 굴복했다는 평가도 있다. 피해자의 피해 구제에 국가와 사회, 학교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제도와 조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에 마주치게 된다. 한 학교 관계자는 “피해자의 마음을 살피고 가해자의 교화와 더불어 인권을 챙겨야 한다는, 이 세 가지가 합치되는 사회적인 제도가 마련될 수 있긴 할까”면서도 “2020년 이전의 학폭위와 지금의 학폭심위는 시대적 요구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저널21 이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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