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행복 / 허형만

서대선 | 기사입력 2022/12/05 [10:29]

[이 아침의 시] 행복 / 허형만

서대선 | 입력 : 2022/12/05 [10:29]

 

행복

 

숲속에서 야생 초록빛 오디가

자주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하다.

그냥 그 모습만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줏빛 속에서 햇볕과 빗소리도

함께 익어가는 것을 보아야 행복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먹빛으로 완성을 이룰 때

혀에서 꿈결처럼 무르녹는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유년 시절 맛보았던 그 맛 그대로

지금 늙어서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늙는 것도 익는 것이라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다구요?’ ‘장금이 혀’로 돌아왔으니 이제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부스터 샷을 맞았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는 행사에 다녀온 남편이 오미크론에 걸려 자가 격리 일주일 진단과 지정해준 약 처방까지 받았다. 오미크론 후유증으로 미각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여 은근히 걱정되었었다. 우유와 꿀과 홍시를 넣고 간 따끈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홍시 맛을 가려내는 것 아닌가.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고 열을 잡아주는 음료수라는 추임새도 한 모금 넣었다.  

 

미각(味覺)도 변한다. 45세를 전후해서 맛을 느끼는 3000-1만 개의 미각세포는 점점 퇴화된다. 특별한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닌데, 어느 날부터 늘 먹던 음식이 싱겁게 느껴지거나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당신의 혀는 늙어 가는 것이다. 혀에 있는 맛돌기들이 위축되면서 돌기의 맛싹 개수와 기능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청년기에는 혀의 돌기마다 맛싹이 이백 오십여 개씩 있던 것이 칠십 오 세가 넘어가면 백 개 미만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입안의 점막도 얇아지고, 침도 감소한다. 미각을 담당하는 뇌신경인 제 7번 얼굴신경(Facial nerve), 제 9번 혀 인두 신경(Glossopharygeal nerve), 제 10번 미주 신경(Vagus nerve) 등의 기능도 변화되어 입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노화 이외에도 미각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코로나와 같은 질병, 심한 스트레스 등이 일시적으로 침의 성분을 변화시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우울증이 있는 경우도 미각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특히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감각신경에 내성이 생겨 미각이 감퇴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폐경기를 건너면서 호르몬의 변화로 입안의 침이 감소해서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음식의 맛은 ‘감각적인 맛, 의학적인 맛, 사회적인 맛’ 등이 있다. 이런 맛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숲속에서 야생 초록빛 오디가/자주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줏빛 속에서 햇볕과 빗소리도/함께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머지않아 먹빛으로 완성을 이룰 때/혀에서 꿈결처럼 무르녹는/달콤한 맛”은 감각적인 맛이다. 오미크론이나, 독감 같은 질병을 앓을 때,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고 열을 잡아주려 마시는 감과 꿀을 넣은 우유 차는 의학적인 것이 가미된 맛이다. 어린 날 친구들과 숲속을 헤매며 발견했던 “오디”가 익어가는 동안, 우정도 익어갔던 시간 속에서 맛보았던 ”오디“ 맛은 사회적인 맛까지 더해진 맛이라 할 수 있다. 노년의 시간을 건너면서도 “유년 시절 맛보았던 그 맛 그대로”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의 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 “행복”이 미소 지으며 어깨동무를 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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