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너머 나부끼는 시나위…나희균 작품전 ‘음률’을 보고

서승석 | 기사입력 2022/06/22 [14:25]

고요 너머 나부끼는 시나위…나희균 작품전 ‘음률’을 보고

서승석 | 입력 : 2022/06/22 [14:25]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을 좋아하는 나희균 화백은 “나는 작곡가가 풍경을 묘사하듯이 음률을 그려보려고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열여섯 번째 개인전 ‘음률’을 안상철 미술관에서 2022년 6월 15일부터 7월 5일까지 선보인다. 그동안 유화·아크릴·수채화의 평면회화, 기하추상, 네온·PVC파이프·철판의 조형작품 등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새로움을 모색해온 작가는 2018년 환기재단 작가전 <빛의 공간, 그리고 자연>, 2020년 ‘수화가 만난 사람들 <나희균, 고요의 빛>’(*1)에 이어, 이번에 음악을 주제로 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 나희균, 음률(슬픔) 앞에서 1, 2022


30여 년 동안 불광동에 살았던 작가는, 현재 안상철 미술관이 소재하고 있는 양주시 백석에 오래전 작업실을 마련하고, 30여 년간 기산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을 응시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내면 깊이 은닉되었던 음률이 이제 서서히 싹트고 고요의 지평선 너머로 드높게 날아오르고 있다. 

 

화폭에 주도면밀하게 구획되어 정갈하게 포개지고 쌓이고 기대고 병치된 다양한 색채의, 크고 작은, 굵고 가느다란 기둥들의 조화로 표현된 피아노곡이나 교향곡의 멜로디와 화음들은 어느덧 우리 국악으로 옮겨와, 때로는 나부끼는 시나위(국악 즉흥곡)처럼 신선하고 자유롭게, 때로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고 세련된 초서처럼 유려하게 춤추는 음률로 재현되고 있다. “요즈음은 귀에 울리는 피아노곡이나 교향곡은 잘 안 들리고, 고전음악 명인들의 독주나 가야금산조 같은 국악의 소리는 잘 들린다”고 하는 작가의 저하된 청력 때문일까?, 최근 내면의 빛과 소리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90년 스쳐간 세월의 비바람과 눈물과 미소를 담고 있는 나희균의 고운 얼굴은 마치 이슬 머금은 풀섶에 살포시 고개를 내민 하얀 클로버 꽃과도 같았다. 뽀얗게 잘 삭은 식혜처럼 은은한 표정으로 가끔 먼 산을 향하는 작가의 눈에는 언뜻 번개처럼 스치는 값진 오팔의 광휘와도 같은 강인함의 불꽃이 번득였다. 아직도 매일 아침 새벽예배를 보러 성당에 나가시고, 하루에 4시간 정도 꾸준히, 과하지고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그저 숨 쉬듯이 그림을 꾸준히 그리고 계신 노화백의 놀라운 초인적 정신력이 돋보인다. 김환기 미술관을 관람하고 함께 근처의 만두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가볍고 재빨랐다. 그리고 시몬느 드 보브와르가 늘 매고 있던 것과 흡사한 그녀의 독특한 머리띠가 예뻐서 어디서 사셨느냐고 물으니, 직접 손수 만드셨다고 한다.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나희균 作 △시나위(국악 즉흥곡), 캔버스에 아크릴, 2022, 60x49.5cm △시나위 22-1, 2022, 캔버스에 아크릴, 60x49.5cm △광주여 영원히(윤이상 곡에서), 2020, 캔버스에 오일, 91x116.5cm


나희균은 1932년 만주 봉청(심양)에서 태어났다. 1950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후 6·25동란이 발발하여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송도 임시가교에서 수업을 받았고, 이 당시에 장발 교수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 역임)을 만나 수업을 들었다.(*2) 1953년 조기졸업을 하고,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가족>으로 입선하였다. 세잔느를 좋아하는 그녀는 배움의 갈증을 해갈하려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서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였다. 특히 김환기 화백을 만난 것이 이 화가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한다. 파리 라틴가에 소재한 자신의 기숙사에서 륙상부르그 공원을 가로질러 20여분 거리에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작업실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방문하여 식사도 하고 그린 그림도 가져가 보여주며 친분을 쌓았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김환기 화백에게 미술을 직접 배우고 영향을 받았나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그림보다는 특히 그로부터 화가로서의 생활태도와 기본자세를 배웠다고 대답했다. 시인과 진배없었던 김환기처럼 순수하고 스케일이 큰 작가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하시며, 그는 섬에서 살았던 순수함을 끝까지 간직하고 점 하나하나를 찍으면서도 아마 우주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을 것이라 말하며 그녀는 회상에 잠긴다. 내조의 달인이었던 그의 부인 김향안 여사의 도움으로 1957년 파리 베네지트 화랑(Galerie M. Benezit)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그녀는 1958년 귀국하였다. 

 

“이성을 중시했던 플라톤은 질서정연한 규칙에 따르는 음악은 중시하였지만, 아무런 규칙도 없어 보이는 음유시인들의 즉흥적인 음악과 시는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희균은 <음률 19> 연작·<음률 21> 연작·<낙엽의 계절> 연작과 <예약>을 통해 엄격한 규칙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나위> 연작과 <글씨 연작>, 그리고 <노을 레뀌엠>을 통해 작가 내면에 내재한 유연성을 엿듣게 함으로써, 플라톤을 비웃듯, 음악적 성취감을 한껏 증폭시키고 있다. 나희균의 끝없는 조형적 질주가 아름답고 찬란한 교향곡으로 훌륭하게 마무리되길 빈다.     

 

<추신>

나희균은 한국 초기 페미니스트이며 서양화가·수필가·소설가로 알려진 나혜석의 조카이며, 동양화가 안상철의 아내이고,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을 집필한 영문학자 나영균의 동생이다.   

 

안상철미술관(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권율로 905)에서 2022년 6월 15일부터 7월 5일까지 열리는 <나희균 작품전 음률>을 계기로, 이 전시 시작과 함께 그녀의 <지붕(1958)>, <이웃과 함께(1970)>, <삼각의 네온(1970)> 세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된다.      

 

(*1) 『수화가 만난 사람들 <나희균, 고요의 빛>』, 서울, 환기미술관, 2020년, 160쪽, 참조.

(*2) 권행가 채록연구, 『나희균羅喜均 193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년, 62쪽.

 

서승석(문학평론가, 불문학박사, 한불문화예술협회 회장)

 

▲ 서승석, 나희균의 글씨 연작 앞에서, 2022


평론가(문학·미술)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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