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 에세이] 뽕아의 사랑

송금호 | 기사입력 2022/05/21 [18:24]

[송금호 에세이] 뽕아의 사랑

송금호 | 입력 : 2022/05/21 [18:24]

 

새벽 5시30분.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향한다. 거실에는 전등불이 아직도 켜져 있다. 그녀는 한숨을 가볍게 쉬고는 소파에 앉는다.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서는 나지막하게 말을 맺는다.

 

“규영이 아빠, 오늘도 기다렸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녀는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주방을 더듬어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따뜻하지만 두텁지 않은 옷으로 몸단장을 하고서 현관문을 나섰다. 3월 초순의 추운 새벽바람이 쌩하니 달려들어 살갗을 할퀸다.

 

자전거를 타고 새벽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김밥집이다. 춥고 암흑 같은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난로를 켜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야채를 다듬어 데치고, 국물을 만들면서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어느새 밖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발자국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침 7시가 넘어가고 있다.

 

“어머~ 벌써 나오셨네요?”

 

귀에 익은 주방 담당 아주머니의 목소리다. 

 

“아, 어서 와요. 많이 춥지요?”

 

“그러게요, 낮에는 그래도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넘 추워요.”

 

그러면서 진저리를 친다.

 

“자, 오늘도 힘차게 출발해봅시다!”

 

주방 아주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는 김밥을 말기 시작한다. 곧 사람들이 올 시간이다. 김밥집 건너편에는 부천에서도 꽤 오래된 병원이 자리 잡고 있어서 밤샘을 하는 간호사들이 자주 찾고,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들이 김밥 한 두 줄과 뜨거운 국물로 요기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그녀는 새벽부터 바쁘다.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더 출근하고서 김밥집은 더 부산해진다. 김밥을 마는 그녀의 손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김을 펼쳐놓고 고소하게 만들어 놓은 밥을 골고루 펴고, 그 위에 달걀말이 외에 시금치, 우엉, 당근을 비롯한 야채를 듬뿍 얹고서 잘 말아준다. 김밥을 파면서 가게 안 일을 맡아보는 아주머니가 쉴 새 없는 그녀의 손놀림을 바라보더니 농을 친다.

 

“아유, 우리 김옥랑 사장님 김밥 마는 솜씨는 전국에서 최고에요. 아마 기네스북에도 오를 수 있을 거예요. 호 호 호~~”

 

“원 별 말을 다 허네. 하기야 이 일을 한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 넘었으니까 이제는 눈을 감고도 김밥을 쌀 수 있지. 안 그래요?”

 

“그렇지요. 그것도 그렇고, 사시사철 매일 새벽마다 이렇게 일찍 나와서 준비하고 일 하시는 것 보면 대단하세요.”

 

“뭐~ 나라고 별 사람인가. 너 나 없이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그래도 그렇지요. 교장선생님이 병원에 누워 계신지가 벌써 몇 년째예요? 그런데도 힘들다는 내색도 없이...”

 

아주머니의 그 말이 귓전에 닿자 김밥을 마는 그녀의 손놀림이 잠시 멈칫거린다. 목이 메이는 것 같아서 그녀는 헛기침을 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 저녁때부터는 병원에 가서 간병을 해야 한다. 간병을 맡은 아주머니가 오늘부터 사흘간 휴가를 가기로 돼 있다.

 

벌써 5년째 그녀의 남편 심형보 씨는 요양병원에 누워있다. 남편은 평생 교편을 잡아오다 교장으로 정년퇴직 한 뒤 루게릭병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아오다가 갑자기 심 정지를 일으켜 뇌사상태에 빠져있다.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음식은 호스를 통해 위장에 넣어주고 있다. 몸이 굳지 않도록 자주 움직여주고, 몸을 씻겨주어야 하기에 간병인은 꼭 있어야 한다. 혹시 혈압이 떨어지거나 다른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간호사나 의사에게 알려야하기 때문에 24시간 살펴보아야 한다.

 

간병인을 잘 만나서 만족스럽다. 그녀는 몇 년간을 매일 한 번씩 병원에 들러서 남편의 얼굴을 봐왔다. 남편을 위한 것이 그녀의 삶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매번 간병인에게 줄 과일과 반찬을 몽땅 장만해서 가져간다. 종갓집 맏며느리답게 손이 커서인지 갈 때마다 양 손에 음식이 가득하다.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 간병인들도 덩달아 포식하고, 일부는 간호사들에게도 전달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진 뒤부터는 자주 가지 못한다. 병원에서 면회를 제한해 놓고 있어서다. 남편을 직접 보지 못하니 애가 타기도 하지만 혹시나 코로나19에 전염돼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하루 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작년에는 요양병원에 코로나19가 퍼져 간병인도 감염됐었다. 덩달아 간병인 구하기도 어렵고, 비용도 크게 늘었다. 그때 다행히 남편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어서 괜찮았다. 요즘에는 코로나19 대응이 조금 느슨해져서 면회가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다행이다.

 

9시가 넘어가면서부터 손님들이 뜸해진다. 가게 안에서 식사를 하는 아가씨 둘이서 재잘거리며 김밥과 라면을 먹고 있는 보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비닐장갑을 벗어놓고는 두 명의 직원을 불러 모은다.

 

“오늘부터 두 사람이서 고생을 좀 하셔야겠네요. 아르바이트는 내일 아침부터 출근하기로 돼 있으니 사흘 동안만 좀 봐줘요.”

 

그녀의 말에 중년을 넘긴 두 여직원은 흔쾌한 목소리로 맞받는다.

 

“별 말씀을 다 하세요. 저희들이 사장님보다 솜씨는 못하지만 열심히 할게요. 걱정말고 잘 다녀오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아, 참. 나는 지금 나가서 농산물시장에 다녀올게요. 김밥집과 두 군데 추어탕집에 며칠간 필요한 과일과 야채도 사 와야 하고...아, 그리고 뭐가 필요하더라. 아, 병원에 가지고 갈 반찬도 좀 준비해야겠다. 은행도 가야하고... 허어~ 바쁘다 바뻐...”

 

비둘기들처럼 머리를 맞댄 직원들과의 회의는 간단히 끝났지만 그녀는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빠졌다.

 

준비를 마친 뒤 점심도 거른 채 김밥 두 줄과 생수 한 병을 손에 든 채 그녀는 차에 올랐다. 아까 김밥집을 나와서 농산물시장에 다녀오고, 부천 심곡동과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추어탕집 두 군데에 가서 과일과 야채를 내려놓고서 가게 상황을 점검하고, 은행에도 들렀다. 오늘 휴가를 가는 간병인에게 줄 휴가비와 간병인 비용, 병원비용을 챙겼다. 병원비와 간병인비용을 합해서 월 600만원이 든다. 그녀는 김밥집과 추어탕집 두 군데를 운영해서 번 돈으로 몇 년째 병원비와 간병인비용을 대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이 빠듯하지는 않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지금은 벌어놨던 돈을 까먹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돈이 아깝지가 않다. 하늘같은 남편인데, 아이들의 아빠인데 가산을 다 팔아서 병원비를 댄 들 아까울 리가 있는가.

 

한 시간을 달려 경기도 광주시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요양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코로나 PCR검사서와 음식 바구니를 들고 간호사실로 향했다. 매번 오는 병원이지만 가슴이 떨린다. ‘오늘은 좀 차도가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과 ‘더 나빠졌다는 얘기를 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교차하면서 그녀의 가슴을 짓누른다.

 

병실에 들어서니 낮 익은 간병인들의 얼굴이 내밀어진다. 그녀는 그들과 인사를 하는 등 마는 둥 먼저 남편의 침대로 눈길을 준다.

 

“사모님, 일찍 오셨네요.”

 

간병인 아주머니의 인사다. 중국 교포인 그녀는 매우 성실하다.

 

“네. 고생 많으셨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좀 어떠세요? 별 이상은 없으신가요?”

 속사포처럼 묻는다.

 

“네. 별 이상 증세는 없으시네요. 혈압이 가끔 떨어져서 혈압 상승제를 투여하기도 했습니다.”

 

간병인의 말이 가슴이 덜컥 내려않게 만든다.

 

“그래요?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세요?”

 

“네. 잘 대처하고 있다는 말씀만 하시네요. 혹시 폐렴이라든가 이런 증세가 있으면 위험하니 즉각 대처해야 된다는 말씀이 있으셨어요. 간호사들도 자주 들르고 있어요.”

 “네, 알겠어요.”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려쉬고는 남편에게 다가가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도 뜨지 않고 움직임도 전혀 없이 무심히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가빠온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만났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고, 첫사랑 선생님은 남편이 되었다. 강원도 삼척 시댁에서 농사일과 함께 고달픈 신혼살림을 하면서 남편을 내조하고, 두 아들을 길렀다. 돈 되는 일이면 물불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남편이 집안 걱정을 하지 않고 선생님 노릇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예쁜 막내 여동생이 고생한다는 오빠와 언니들의 성화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그녀는 도회지로 나왔다. 아이들의 교육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는 장사라도 해 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해서 경기도 부천에 자리를 잡아 김밥가게도 하고, 돈을 조금 모아서 추어탕집도 차렸다. 음식솜씨 좋고, 부지런하고, 싹싹한 그녀에게 보상도 따랐다. 남편은 교감을 거쳐 교장 선생님까지 올랐고,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해서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둘 다 결혼까지 했다. 귀여운 손주들도 태어나서 주말을 즐겁게 해줬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온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정년퇴직을 하고 쉬고 있던 남편 심형보 교장 선생님이 운동신경만 선택적으로 손상을 입는 루게릭병에 걸린 것이다. 온 병원을 다 다니면서 치료를 했지만 급기야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요양병원으로 남편을 옮겨 몇 년째 물리치료를 비롯한 모든 정성을 쏟아왔다. 의사들은 이제 가망이 없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 회생할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라는 얘기다. 그래도 그녀는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이 그 특유의 의지로 다시 회생할 것이라는 믿음을 지키고 있다.

 

“여보, 규영이 아빠. 제가 왔어요. 뽕아가 왔어요. 눈 좀 떠봐요.”

 

그녀는 그의 볼을 남편의 볼에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를 토해냈다. 아무런 기척이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남편이 뽕아의 살갗을 느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평생을 떠나본 적이 없는 부부의 인연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처음부터 아내를 ‘뽕아’라 불렀다. 애칭이 평생의 호칭이 된 것이다. 60이 넘어서도 ‘뽕아’라고 부르면서 사랑을 퍼부어주던 남편을 그녀는 도저히 이대로 떠나보낼 수가 없다.

 

그날 밤, 두둑한 보너스와 휴가비까지 챙겨서 간병인을 보낸 뒤, 그녀는 밤늦도록 일기를 썼다. 아니 일기가 아니라 남편 심형보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녀는 남편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부터 편지를 썼다. 애절한 아내의 마음을 담아서 쓴 그 편지를 꼭 남편이 일어나서 읽어보기를 원하고 또 원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희미한 병실 등불이 눈에서 점차 가물어지는데 갑자기 그녀의 손에 온기가 뻗쳐온다. 눈을 뜨자 남편 심형보가 웃는 얼굴로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

 

“어머, 여보!”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면서 두 팔을 흔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뽕아~~”

 

남편이 얼굴에 환한 빛을 띄우면서 그녀를 부른다.

 

“여보, 이게 어찌 된 거예요? 괜찮아요?”

 

남편의 손을 다시 두 손으로 덥석 잡으면서 그녀가 외친다.

 

“그럼. 이렇게 멀쩡하잖아. 우리 뽕아도 잘 있었지?”

 

“그럼요. 저도 잘 있지요, 우리 애들도 다 잘 있어요. 맨날 아버지 깨나시는 것만 기도하고 있지요. 여보! 정말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기는...크흐~~. 맨날 여기 와서 날 보고 갔잖아.”

 

“그럼 제가 얘기한 것도 다 들었어요?”

 

“물론이지. 뽕아가 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 들었어.”

 

“아, 그렇구나. 이제 살 것 같네.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 불러 올게요.”

 

“아니야. 뽕아 잠깐 내 말부터 듣고 나서~~”

 

“무슨 말씀인데요?”

 

“나는 괜찮으니 우선 뽕아를 한 번 안아보고 싶다. 내 옆에서 곤히 잠드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이~. 의사선생님이 얼마나 놀라시겠어요. 다들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어렵다고 했는데요.”

 

“그래. 어려운 일이지. 어쨌든 우선 내 옆에 가만히 좀 있어봐. 내가 우리 뽕아의 얼굴 좀 자세히 보고. 나 땜에 몇 년째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남편의 그 말이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단지 남편이라는 것 때문에, 아니 내가 그의 아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라도 혼신을 다해 남편을 살려보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고맙다는 남편의 말이 가슴을 뒤흔들고 있다. 갑자기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눈물이 샘솟듯 한다. 흘깃 남편을 보니 더 없이 편안하고 만족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가 남편에게 다가가 살포시 안긴다.

 

‘아~~ 포근하고 든든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막 잠이 들려는데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그리고는 들어 본 목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

 

“사모님, 이제 그만 의자에서 일어나 편안히 좀 주무세요. 저희가 이상이 있으면 봐 드릴테니까요.”

 

“?”

 

“사모님, 괜찮으세요?”

 

눈을 뜨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누워있는 남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녀에게 옆 자리의 환자 남자 간병인이 다시 조심스레 말을 건다. 어머니를 3년째 간병하고 있는 50대 초반의 남자다.

 

그제서야 꿈을 꾼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허탈감에 비틀거리다가 남편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이 어제보다는 좀 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그러고 섰던 그녀가 다시 남편에게 다가가 얼굴에 눈물로 범벅이 된 자기의 뺨을 가볍게 비벼댄다. 그러면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살갑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여보, 규영이 아빠. 뽕아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 알고 계시죠? 절대로 절대로 잊으면 안돼요. 사랑합니다!”

 


 

송금호 작가

 

여주인공 ‘뽕아’ 김옥랑 여사와 평생 사랑을 나눠 온 남편 심형보 교장선생님께서 어젯밤 소천하셨습니다.

 

심형보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뽕아’의 일편단심 사랑에는 짙은 미소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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