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색깔의 정치학

강인 | 기사입력 2022/01/13 [09:34]

[강인 칼럼] 색깔의 정치학

강인 | 입력 : 2022/01/13 [09:34]

‘백치(白癡)’라는 말이 있다.

‘백치’는 19세기 러시아의 세계적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이기도 한데 이 소설 속에서 백치라고 불릴 만큼 때 묻지 않은 주인공 ‘미쉬킨’ 공작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한편, 대한민국의 근대소설가 계용묵(桂鎔默)이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백치 아다다’에서는 벙어리인 주인공 ‘아다다’(소설 속의 이름은 ‘확실이’지만 그녀가 입을 벌려 말하려 하면 '아다다다~'라는 소리밖에 낼 수 없기에 아다다로 불림)라는 여인이 순수하고 진실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다 끝내 물에 빠져 죽는 비극적 모습을 보여줌으로 사전적 의미의 백치(Idiot)는 ‘Fool’과는 달리 꽤나 괜찮은 이미지를 가진 단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백치는 순수한 인간성의 상징이다. 오죽하면 ‘백치’ 뒤에 아름다울 미(美)를 붙여 ‘백치미(白癡美)’라는 표현을 썼겠는가?

 

그러고 보면 미쉬킨이나 아다다는 결코 백치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순수한 인간성이 오염된 세상 속에서 사나운 바람에 떠밀려 사라져 간 흠모(欽慕)의 대상이다.

 

사람을 ’색깔‘로 구별한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흰색이다. 태초(太初)에 빛을 받기 전(前) 무색(無色)으로서의 흰색이다. 비유컨대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어찌 보면 백치(白癡)의 상태이다.

 

그런데 빛을 받은 후(後) 유색(有色)으로서의 흰색도 있다. 이 흰색은 세상의 모든 색깔을 흡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이 흰색 속에 감춰져 있는 어떤 색깔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빛을 받아 생긴 모든 색깔이다. 이를 가리켜 ’빛깔‘이라고도 한다. 이는 고혹적(蠱惑的)인 무지갯빛 색깔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의 모든 색깔을 통째로 삼킨 어둡고 음흉한 검은색(黑色)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현란하면서도 시커먼 속내를 품은 무지갯빛 색깔이 역겹다. 백치처럼 순수해 보이는 흰색 뒤에 감추어진 무지갯빛 고혹의 소리장도(笑裏藏刀)가 두렵다.

 

수년간 역겨움 속에 어쩔 수 없이 바라보아야 했던 거짓, 비겁, 속임수, 더러움, 아부, 교활, 자화자찬 등 무지갯빛 희롱(戲弄)이 그 수명을 다한 이즈음. 앞으로 필자가 바라보고 싶은 어느 공복(公僕)의 색깔은 세상에서 만나기 힘든 순수한 흰색일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흰색이 태초의 무색으로서의 흰색이 아닌, 빛을 받아 생긴 흰색으로서 혹시 그 속에 다른 색깔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새해의 몇 날을 좌불안석(坐不安席)으로 지냈다.

 

이는 최근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자당(自黨)에 가입하지 않은 모 위원장이 이끄는 어느 '위원회‘ 현판식에서 “저희 선대위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 선대위입니다”라는 선언을 통해 스스로 모호(模糊)한 색깔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모호함이 그가 속한 정당이 추구하는 색깔을 벗어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정치는 추구(追求)하는 이념(理念)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정치는 같은 이념을 가진 자들의 집단인 당(黨)을 중심으로 이루어가야 한다. 

 

이는 하다못해 북한의 조선노동당도 마찬가지이다. 당의 정치이념이 마구 바뀔 수 없듯이 정치인이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더더욱 대선(大選) 기간 중 비당원(非黨員)의 신분으로 선대위(選對委)의 중직을 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디 새 대통령에게서는 미쉬킨과 같은, 아다다와 같은 순수한 태초의 흰색을 보고 싶다. 그들의 순수한 백치미가 사무치게 그립다.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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