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봄날 장터 / 김홍성

서대선 | 기사입력 2021/12/06 [08:40]

[이 아침의 시] 봄날 장터 / 김홍성

서대선 | 입력 : 2021/12/06 [08:40]

봄날 장터

 

응달 개똥 녹았다

펑펑펑

강냉이나 누룽지

묵은 가래떡이나 인절미

뻥 튀긴다 봄이다

앉은뱅이 곰배팔이 소경 곱추 미친년

장날 거지 죄 모였다

엄동설한에 안 죽고 살았다 봄이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알고 보면 죄 불쌍한 사람

햇빛과 바람 속에

살아서 어여쁘다 봄이다

 

# ‘말린 시래기 사러 갑시다. 장날이예요.’ 내가 사는 시골은 ‘이 칠 장날’이 선다 이 칠 장날이란 매월 2와 7자가 들어가는 날짜에 열리는 재래시장 장날을 말한다. 장날, 재래시장 순례는 시골 생활에서 삶의 활력을 준다. 김장을 담고 텃밭과 마당의 구근 식물들을 모두 갈무리해 두었지만, 한 가지 겨울나기 준비가 남았다. 뒷산에서 겨울을 나는 산속 식구들을 위한 월동 준비를 해야 한다. 

 

물까치, 직박구리, 산까치, 이름도 잘 모르는 작은 철새들을 위한 잡곡을 준비해야 하고, 다람쥐, 청설모, 고라니, 산토끼를 위해서는 고구마, 감자, 시래기 등을 준비해야 한다. 재래시장 장날 장터에선 대형마트에 들어가지 못한 B급의 농작물들도 만날 수 있다. 자식처럼 키운 농작물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진 우박 때문에 우그러지고 상처 입었거나, 억센 바람에 생채기가 났지만, 식용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과일들과 야채들이 모판 한쪽에 옹기종이 모여 있다. 상처 입은 농작물도 농사꾼에겐 모두 자식 같은 농작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못나고 흠집이 있어도 “어여쁘게” 보인다. 조금만 손질해서 다듬으면 맛있는 식재료가 되고, 산속 식구들 겨울나기용으로는 훌륭하다.  

 

요새는 재래시장도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시인이 노래한 “봄날 장터”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목이 풀린 채 장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개똥”을 싸는 개들은 만날 수 없다. “펑펑펑/강냉이나 누룽지”를 튀기는 아저씨들은 만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뻥튀기 아저씨가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뻥이요” 하고 소리 지름과 동시에 재래시장 한 귀퉁이가 모두 날아갈 듯한 “뻥”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던 그런 소리는 만나기 어렵다. 뿐이랴, 바깥출입이 어렵던 “앉은뱅이 곰배팔이 소경 곱추 미친년”들 까지 모두 품어주던 장터에서 만병통치약을 팔던 약장수 아저씨의 호객 소리도, 약장수 아저씨를 도와 노래하고 춤추던 어린 가수의 반짝이 드레스가 햇살에 눈부시던 화려한 장날의 풍경은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장날이면, 오래되어 기울어진 초가집 같은 할아버지의 거나한 모습을 가끔 볼 수 있고, 재래시장 장터를 흘러 다니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빈대떡에 막걸리를 앞에 둔 아저씨들 모습도 정겹다.   

 

시인은 “봄날 장터”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처럼, “잘난 사람 못난 사람/있는 사람 없는 사람/알고 보면 죄 불쌍한 사람/햇빛과 바람 속에/살아서 어여쁜” 삶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 한다. 장바구니 가득 산속 식구들 월동 준비물을 사 들고 활기찬 재래시장 골목길을 지나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 팬대믹과 한파와 힘든 삶으로 ‘지금 여기’의 삶이 팍팍해도 견디고 살아내어 따스한 봄날이 돌아오면, 우리 모두 “봄날 장터”에서 만난 듯 서로서로 얼굴 마주 보며 “어여쁘게” 여기는 날이 오길 기원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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