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대중주도사회! 논어(論語)에 대한 정명(正名)

논어의 노즈 워크 놀이

박항준 | 기사입력 2021/05/10 [09:30]

[박항준 칼럼] 대중주도사회! 논어(論語)에 대한 정명(正名)

논어의 노즈 워크 놀이

박항준 | 입력 : 2021/05/10 [09:30]

논어를 읽기 시작하면 졸리기 시작한다. 조금 읽다 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 같기 때문이다.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성경은 역사적 스토리라도 있는데 논어는 스토리 전개도 없는 문답서다. 앞뒤 맥락을 모르고, 인물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간 직간접적으로 논어를 알고 있지만 논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거의 없다. 주워들은 얘기들, 공자가 말한 좋은 문구들을 외우고 인용할 뿐이다. 논어 읽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냥 우리 관점으로 우리 시선으로 해석해 읽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에 너무 당연한 얘기 거나 이해 안 가는 문구는 대충 넘기게 된다. ‘부모님께 효도해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뭐 달리 해석할만한 건더기가 없다. 결국 내 처지나 경험에 맞춰 와 닿는 얘기들만 밑줄 그어놓고 저장했다 활용하고 있다. 논어를 잠언이나 처세서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세서 읽고 사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실천이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체험한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성이나 응용력이 떨어진다. 

 

논어는 솔직히 부정적 이미지도 만만치 않다. 예절에 치우치고, 제사에 집중하고, 원칙적이며, 교조주의적 이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제발 ‘공자 타령하지 말라는 ‘ 비아냥거리는 말까지 속 담화될 정도다. 더욱이 우리 민족은 역사에 있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유학자들 간의 소모적 논쟁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 의회민주주의의 양당제를 조선시대 사림 간 당쟁의 연장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논어는 경전이 되고,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으로 거론된다. 미국 대법원 건물 벽에 18명의 철학자(법학자)가 새겨진 동상에 ‘공자’가 있을 정도다.      

 

                                                   [미국 대법원 건물 벽화]

 

그런데 이제 논어를 제대로 읽어야 할 시대가 왔다. 이유는 단 하나 뉴 노멀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00년의 세기(Century)가 바뀌고, 1000년의 밀레니엄이 바뀌고, 2000년의 듀오 밀레니엄이 한꺼번에 맞물려 바뀌는 시대다. 이 새로운 시대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리셋된다. 리셋된 사회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보니 여기에 맞는 새로운 철학적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공자 철학을 고민하고, 논어를 제대로 읽어야 되는 이유다. 

 

인류가 지난 2000년을 지내온 ‘지식사회(역사시대)’ 동안 논어는 아쉽지만 처세서로 남아 있어도 될 정도로 학문들이 세분화되고, 새로운 철학이 필요 없는 시대였다. 굳이 “공자왈~”하지 않아도 사회적 구조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새로운 철학의 필요보다는 철학의 응용 즉, 처세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눈으로 논어를 보지 말고 가슴으로 봐야 한다. 가슴으로 논어를 본다는 것은 공자의 프레임으로 논어를 다시 보는 것이다. 논어를 구성하고 있는 한자(漢字) 하나하나의 의미에 매몰되지 않고 공자가 설계한 인류사적 메커니즘을 봐야 한다. 그래야 왜 공자가 4대 성인으로 추앙받고, 미국 대법원 건물에 조각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논어의 구성은 한자(漢字)로 함축되어 있고, 알 수 없는 구조로 편집되어 있다. 이 비밀을 풀어야 새로운 3000년의 시작을 예측할 수 있다. 

 

반려견과의 놀이 중에 노즈 워크 놀이가 있다. 간식을 다양한 곳에 숨겨놓음으로써 반려견 스스로가 사냥에 대한 성취감을 높일 수 있고, 후각의 감각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놀이 겸 훈련이다. 

 

논어의 편집자는 이 노즈 워크 놀이에 매우 충실하게 논어를 편집해놓은 듯하다. 그러나 노즈 워크 놀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지난 2000여 년간 우리는 논어가 숨겨 놓은 숨은 비밀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인류의 감각이 무뎌진다. 역사시대 후반기에 학문들은 세분화되었을지언정 창조성이 결여되었다. 물리학에서부터 수학, 철학,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노즈 워크 놀이를 멈춘 덕분에 새로움이 없다. 2000년 전 철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훌륭한 표준에 만족하고 이를 넘으려는 노력에 게을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논어 학자는 있어도 공자를 넘는 동양철학자가 탄생하지 못하는 이유다. 오죽했으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제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인류사회의 기준을 설계하기 위한 논어(論語)에 몇 가지 읽기 기준을 살펴보자. 

 

첫째, 글자 해석의 매몰을 피해야 한다.  

공자의 눈으로 논어 읽기에서는 논어 속에 사용되고 있는 글자 해석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논어가 남긴 한자(漢子) 하나하나의 글자 속에 갇혀버리면 논어 여행은 또 실패하게 된다. 내가 임의로 깨닫고 해석한 내용을 타인에게 가르치게 되고, 강요하게 된다. 그러면 교리가 생기고 논쟁이 발생하는데 교리와 논쟁 속에 공자의 철학은 없다. 기독교에서 교리와 성경해석 속 이단 논쟁 속에 예수가 없는 것과 같다.  

 

물론 한자를 잘 모르기에 선현들의 해석을 그대로 따르기도 했지만, 2000년간 강력한 세뇌를 당해왔다고 할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있어 특정 층만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성경을 각자 임의 해석하는 행위를 경계하기 위함이 크다. 논어도 그 해석을 감히 함부로 못하게 만들어 놨다. 아무리 유명한 논어 학자마저도 새로운 해석에 대하여 비판과 이단 소리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러한 압력으로 논어는 2500년간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철학적 발전 없이 주자 등 유명 학자들의 해석을 외우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결국 내 옷이 아닌 남의 옷을 걸치게 된 이유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있을 정도지만, 이 논쟁 속에 빠진 우리에게 공자는 이미 없어 보인다. 

 

둘째, 논어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다. 

2500년 전 공자는 논어의 편집자를 통해 비밀의 수수께끼를 숨겨 놓는다. 공자 스스로는 자신이 분명 이 답을 깨닫고 있었지만 대 놓고 학술논문을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자는 시작과 끝은 명확히 내놓는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 가져야 할 것은 학(學)과 습(習)의 마음이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것은 ‘인(仁)’이라고 선포한다. 

 

결국 시작과 끝이라는 메커니즘 속에서 어떻게(How to?) ‘인(仁)’을 이룰 것인가라는 적어 놓은 가이드북이 바로 '논어'다. 사람이 이 인(仁)을 완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풀어놓은 것인데 더 쉽게 표현하자면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는’ 책이 '논어'라 할 수 있다.  

 

셋째, 편집자는 논어(論語) 속에 수수께끼를 숨겨 놓는다. 

그 수수께끼는 자신의 '지식(Text, 語)'을 '지혜(Hypertext, 論)'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 즉, 알고리즘을 숨겨놓은 것이다. 이를 숨겨놓은 이유는 인간은 각자 생각(語)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깨달음이 다르기에 자기 생각(語)과 여럿의 생각을 바르게 모아 놓은 '논(論)'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수학공식처럼 절대적인 기준으로 적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이를 노즈 워크 놀이라 표현한 이유도 '논어(論語)'를 읽으면서 공자가 숨겨 놓은 보물을 우리가 찾아가는 과정이 곧 '훈련'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논어에서는 내 생각(語)과 남의 생각(語)이 서로 부딪혀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값(仁,Hypertext)을 만들어 가는 알고리즘에 필요한 개념을 탄생시킨다. 바로 '예(禮)'다. 학습을 통해 '덕(德)' 으로써 자기 생각을 갖추어 나아가되,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타자에 대하여 '예(禮)'를 다함으로써 '논(論)'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仁)'하게 된다는 것이 논어의 기본 알고리즘이다. (물론 '예(禮)'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절이나 예의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논어를 조금만 읽다 보면 쉽게 이 알고리즘을 맛볼 수 있다. 물론 해석자에 따라 한자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한자(漢字)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보다는 공자가 '어(語)'를 '논(論)'으로 바꾸는데 우리 인간이 어떠한 마음가짐과 실천을 해야 하는지 적어 놓은 비밀을 파헤치면서 노즈 워크 놀이를 즐기다 보면 논어(論語)의 저자가 만들어 놓은 노즈 워크 놀이에 최고의 효과를 보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박항준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현 (사)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현 누림경제발전연구원 원장

현 중기부 액셀러레이터 (주)하이퍼텍스트메이커스 대표이사 

현 (사)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부회장

현 (사)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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