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 강명희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4/19 [10:34]

[이 아침의 시]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 강명희

서대선 | 입력 : 2021/04/19 [10:34]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 강명희*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올 때면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강명희는 1960년 4월 19일 당시 서울 수성초등학교  4학년 학생

 

# 그날, 오빠는 늦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긴장된 모습으로 일찍 귀가하신 아버지께서는 집안의 장손인 사촌오빠부터 찾았다. 라디오에서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음을 알리고, 사람들의 바깥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반복되었다. 자정이 다될 무렵 들어온 오빠의 교복은 마구 구겨져 있었고 흙도 묻어 있었으며 앞섶 단추도 덜렁거렸다. 청와대로 가는 통의동 근처에서 학생데모대는 강력한 저지세력과 충돌하면서 달리고 달렸다고 했다. 내성적이며 공부밖에 몰랐던 오빠가 독재자를 타도하려고 청와대로 향했던 학생들의 대오 속에 있었다고 하였을 때,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무셨고 어머니는 우셨다. 이튿날 사색이 된 채 들이닥친 큰어머니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찍어 내셨고, 오빠의 두 손을 잡고 몸조심하라고 애원하셨다. 

 

인자해 보였던 대통령 할아버지가 “오빠와 언니들”에게 총을 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오랫동안 괴롭힌 독재자라고 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나는 대통령 탄신 일마다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되었던 대통령 탄신 축하 공연에서 춤추던 어린이였다. 단상 위에 앉아서 인자하게 웃었던 대통령의 얼굴은 몇 개나 되었던 걸까. 4.19혁명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소환된 것은 대학생 때 이건청 시인에게 ‘4.19 학생혁명 희생 학도 추모시집’인 『뿌린 피는 영원히』를 소개받았을 때였다. 이 시인 자신도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모교 교정에서 직접 지은 4.19혁명 시를 낭송한 뒤 전교생과 함께 청와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는 이야기와 강명희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위의 시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는 1960년 수성초등학교 4학년이던 강명희 어린이가 지은 글이다. 이 시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동안 4.19혁명에 크게 빚지고 있었으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어린이가 독재에 맞서다 총 맞고 쓰러진 오빠와 언니들을 잊지 않으려고 절절한 시를 남길 때, 나는 사촌오빠가 무사해 기뻤고, 인자해 보였던 대통령 할아버지가 독재자이며 살인자였다는 걸 무서워했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의 정치사는 신산한 부침을 겪으며 조금씩 전진했다. 총칼 대신 촛불로 승화시킨 민주화의 의지는 우리 후손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내일을 지금의 우리가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리라. 우리 후손들은 정치 때문에 희생되는 일 없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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