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 칼럼] 한국 피아노 역사의 새 출발, 바하랑

탁계석 | 기사입력 2021/03/29 [13:24]

[탁계석 칼럼] 한국 피아노 역사의 새 출발, 바하랑

탁계석 | 입력 : 2021/03/29 [13:24]

 풍요를 이끈 서양 레퍼토리 이제 판이 바뀌어야 산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피아노 곡이 연주될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끝없이 이어지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피아노 명곡들. 그 수보다 더 많을 피아니스트들. 세계의 콩쿠르 모두를 석권했고 우리는 피아노 강국이 된듯하다. 그러나 전업(專業)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까 피아노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악기다. 그 누구도 자기 관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사진제공=우락)

 

26일 오후 4시 30분, 성수동의 ‘갤러리 구조’에서 임동창의‘ 아리랑 변주곡’(Arirang Variation) 음반 출시 쇼케이스 연주를 보았다. 피아니스트는 바하랑이다.  

 

우선 바하랑이 누구인가? 기자와 평론가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는 외국의 과다한 프로필 주의를 넘어 한국음악의 품에 안겼다. 스승인 풍류 아티스트 임동창이 준 름을 마음에 중심에 두고, 늘 늘을 두려워 하는 (싱그러운 사람)이 되라는 예명으로, 하늘의 뜻을 받아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음악인이 되라는 씨앗이 발화해 눈을 틔운 것이다. 다름 아닌 홍익인간의 정체성을 잇는 것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는 우리 작곡가의 피아노 곡들이 적지 않게 있음에도 이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피아노 곡 연주 기회는 아마도 1/1,000 확률이나 될까? 이 어마 어마한 획일적인 피아노 생태계의 서양 피아노사에서 비로써 바하랑이 태어난 것이니 이게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바하랑이 애초 초등학생 때 임동창 선생에게 배워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피아노의 기술보다 서양과 동양의 근본에서부터 뭣이 다른가를 배웠다고 한다. 기숙(寄宿)을 하면서 전통의 경우처럼 사제(師弟) 관계를 맺은 것도 남다르다. 

 

이후 누구와 다르지 않은 코스를 거쳤다. 예원, 한예종, 줄리아드 예비학교, Johns Hopkins대학, Peabady음악원에서 석,박사를 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 자아(自我) 내면에 꿈틀거리는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가 즐기고 자유롭지 않은 것에 의심을 품었을 때. 스승이 던진 말이 화두(話頭)가 된 것이다. 바하랑은 외로웠던 어느 날, 모국을 떠나 올 때 ‘너의 뿌리를 잊지 마라. 너는 결국 네 음악을 할 놈이다’. 쇼팽이 한 줌의 흙을 가지고 조국을  떠났을 때의 장면이 떠 오른다. 

 

음악에 국경은 없지만 작곡가에게 조국은 있다. 

 

그렇다. 음악에 국경은 없지만 작곡가에게 조국은 있는 것이다. 쇼팽의 음악에 프랑스 살롱의 우미주의가 풍미하지만, 그 뿌리는 민요, 민속, 마주르카 등의 폴란드 조국이 아니던가? 

 

바하랑을 어떻게 봐야 할까? 좀 쉽게 오늘의 세태에 비유해볼까? 우리 클래식은 강북이다. 이미 모든 게 꽉차있고, 더 이상 변별력도, 차별성도 없다. 기술은 보편화되어 콩쿠르 우승자로 넘쳐난다. 누가 누구이지 알지 못하지만 프로필은 병풍처럼 나열이다. 그래서 생존의 아비규환이다.몇 개의 콩쿠르와 박사를 따와 바이엘, 체르니 기초반을 가르친다니 말을 더해 뭣하겠는가!  

 

아리랑 변주곡은 K-Classic 신호탄 

 

바하랑은 개발 전의 강남땅에 서있다. 선구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찰과 지혜로 한국 피아노사(史)를 써 내려 간다면, 한국이 아닌 세계 음악사에 편입하는 최초가 될 것이다. 이는 누구도 밟지 않은 새 루트의 암벽 등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유학 갔을 때 지도교수가 ‘너희 나라 곡 쳐봐라’ 했을 때, 얼굴이 화끈 거리고 한 손가락으로 아리랑 멜로디를 띵똥거렸다는 슬픈 자화상이 사라졌으면 한다. 

 

임동창의 아리랑 변주곡은 아리랑이란 보석(寶石)의 원석(原石)을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50분이란 양적 부담은 작곡가나 연주가, 청중 모두의 것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해설이 필요가 없는 비로써 우리 맛 우리 것의 편안함이다. 변주(變奏)를 관통하는 리듬은 곧 흥이다. 그래서 우리 핏속에 뛰는 맥박이어서 즐겁다. 가락의 여유와 피아노에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신내림 굿 같은 타악의 음향 세례 역시 서양 피아노곡에서는 느낄 수 없는 피아니즘으로 한국 것이다. 색깔도 다르고 구조도 다르다. 여기에 보너스로 재즈도 살짝 곁들였으니 전통의 현대화요, 전통의 글로벌화라는 세련된 세프의 철학이 잘 녹아든 작품이다. 

 

연주가는 ‘작품’으로 성공한다. 작품은 ‘비르투오소(Virtuoso)’에 의해 빛을 발한다. 서양은 과학과 기술, 제도의 근대화, 현대화를 주었고, 동양은 이제 치유와 쉼, 삶을 넘어 공존의 방식을 제공해야 할 때가 왔다. 문명사의 요구이다.  

 

인위(人爲)의 음악과 자연(自然)을 닮은 음악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우리 음악의 정체성이라고 임동창은 말한다. 바하랑 역시 아직은 깊숙이 체내화되지 못한 이것을 찾아 계속 탐구해 나가야 한다. 깊이 들어가면 뭔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 보인다. 오래 묵힌 된장 맛을 아는 것을 연륜이라고 말한다. 

 

 갤러리 구조에서 음반 발매 쇼케이스 연주회  (사진제공=우락)

 

뉴노멀 제시, 세계는 한국의 것들 원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한국 맛에 흠뻑 취해 있다. 김치, 된장은 물론 불고기, 라면, 그뿐인가. 한글이 제 2 외국어로 세계 12위 랭킹에 올랐다. 만두 하나가 1조원을 넘겼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영화도, 그림도 모두 떴다. 문화와 예술이 어느 한 쪽만의 추세일까? 

 

누구는 말한다. 예비군 훈련장이었던 그 땅, 개x 굴러다니던  땅, 뽕나무 땅, 말죽거리 땅, 그 때 좀 샀더라면... K-클래식이 팬데믹 이후 뉴노멀(New Normal)의 땅이 되지 않겠는가. 그는 한국을 노래할 것이다. 정서(情緖)의 복사본이 아닌 원본을 가지고 노는 피아니스트가가 바하랑이다. 변화의 속도는 새로운 것을 원한다. 지구를 다 돌고 나면 우리 것의 소중함이 들어온다. 여기에 바하랑이 서있다.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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