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31

[제6기]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1950~1953년) 한국전쟁,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7/02 [11:32]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31

[제6기]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1950~1953년) 한국전쟁,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세훈 | 입력 : 2020/07/02 [11:32]

[제6기]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1950~1953년) 한국전쟁, 모든 것이 무너졌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휴전선에서 울리기 시작한 한국전쟁의 포성은 우리나라 암흑기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제강점기에서 광복된 이후 서서히 움직임을 보였던 산업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불행을 몰고 왔다. 해방 이후 일제가 남기고 간 근대적 산업시설을 비롯해 사회·경제 전반의 시설물이 거의 파괴되고 정부의 국가발전 계획이나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후 3년간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폭격·방화와 파괴가 뒤따르는 처참한 전쟁으로 광복 후 5년간 공들였던 전기통신시설도 거의 파괴됐다. 전기통신시설은 낙동강 일부지역에서 온존되었을 뿐 시설의 80% 파괴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사용 가능했던 통신시설의 대부분은 군의 작전 수행으로 징발됐다. 

 

3년간의 전쟁으로 많은 전쟁피해가 발생했고 생산 활동도 움츠러들었다. 한국전쟁은 많은 건물을 비롯해 전기통신시설도 남김없이 파괴했다. 통신건물의 피해는 체신본부를 비롯해 중앙전기시험소·서울전파감시국·서울전신전화건설국·서울중앙전화국분국(용산·광화문)·대전체신청·체신학교 등이 전소되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전소가 35국, 파괴 115국, 반파 276국, 부분 파손이 56국이었다.

 

통신선로 시내 가공케이블은 479km 중 250km 파괴되고, 시외 나선케이블도 5만 9270km 중 3만 7413km가 파괴됐다. 시내전화 지하관로는 248km중 56km가 파괴됐다. 복구 작업은 당시 UN군 작전용 통신망복구계획에 따라 현지 중계소기술요원의 협력을 얻어 이뤄졌다.

 

▲ 북한인민군과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장군


전파감시시설은 감시용으로 필요한 송신기 3대, 수신기 29대 등을 복구했다. 교환시설은 공전식교환국이었던 광화문분국과 용산분국이 불타 버렸다. 자동식교환국이었던 본국과 동대문분국도 파괴됐다. 교환시설 복구는 1951년 8월에서 10월 사이에 이뤄져 1952년에 700회선, 1953년에 4000회선을 가복구했다,

 

1951년 6월 체신복구대의 통신복구 작업으로 무선에 의한 서울·부산간 일반 전보업무를 개시하게 된다. 대부분의 통신시설은 국군과 UN군에 대여했기 때문에 무선으로 대체했다. 1950년 10월 영월·청주·춘천·전주·충무 등지에서 무선업무를 시작으로 대전·광주·완도·노화도우체국이 무선전신업무를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군산우체국 무선분실을 발족하여 도서간의 고정통신과 선박과의 해안통신을 시작했다.

 

서울의 경우는 1951년 6월 7일 통신복구 선발대 45명을 투입했다. 서울중앙전화국  시외교환실에 자석식 100회선 단식교환대 1대로 가복구시설에 이어 자석식 단식교환대 2대와 소시외교환대 1대를 각각 설치했다. 지방의 경우에도 대전·공주·천안·수원전화국에 시내교환대와 시외교환대를 설치했다.

 

시설의 파괴 외에도 기술요원이 납치 되거나 동원되어 인력의 부족 현상도 나타났다. 체신종사원 인명 피해는 702명이던 체신본부 직원 가운데 납북당한 직원이 13명, 사망자 9명, 월북자 8명으로 모두 30명을 잃었다. 납북자 중에는 전 체신부장(길원봉)도 있었다. 

 

유엔군의 긴급원조로 보수작업에 나섰으나 군 작전 수행을 최우선으로 했다. 정부는 1953년의 환도를 앞두고 전화복구계획을 수립하여 전쟁에 시달린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가 부흥을 꾀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을 공산화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적화를 목표로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불의의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3년간에 걸쳐 전 국토를 전쟁의 잿더미로 폐허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족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유엔군의 도움으로 전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전투 행위를 중지하기로 한 유엔군과 북한 측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된다. 3년여의 전쟁은 막대한 인명의 희생과 재산의 피해로 막을 내리고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은 휴전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세훈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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