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상무 이흥수 감독과 상무복싱전우회 홍성식 회장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4/19 [21:58]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상무 이흥수 감독과 상무복싱전우회 홍성식 회장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4/19 [21:58]

훈풍이 불던 지난 어느 날 경기도  화성에서 경희 복싱클럽을 운영하는 상무복싱전우회  총무 구재강 관장이 기자의 체육관을 방문해 오찬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방문 목적은 현재 고창 영선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상무복싱전우회 홍성식 회장의 전령(傳令)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구재강은 수원농고 시절 이명근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94년 학생선수권(라이트급) 우승을 비롯해 전국체전과 협회장기 대회에서 안승일(송전농고), 변성만(성서공고)과 트로이카를 형성한 순발력이 뛰어난 파이터였다. 96년 경희대에 진학했지만 해체 수순에 들어간 팀 분위기 속에 대학 4학년 때인 99년 상무에 입대해 국가대표 최종선발전 결승(웰터급)에서 올림픽 대표 출신의 배호조(한국체대)와 치열한 접전을 펼쳐 갈채를 받았던 파이터였다. 

 

▲ 화성시 경희복싱클럽 관장 구재강     ©조영섭 기자

 

구재강은 2009년부터 복싱클럽을 운영하면서 2015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돼 선이 굵은 호쾌한 복싱스타일로 선수들을 지도하며 호평을 받았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복싱이 전 체급을 석권할 때 김성은 당시 대표팀 감독이 현재 구재강과 같은 만43세인 점을 상기시켜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가 체육관을 운영하는 화성은 축구의 차범근, 음악의 홍난파, 가요계의 조용필이 탄생한 지역으로 이 고장에도 구 관장이 뛰어난 용병술을 발휘해 이들과 필적할 만한 걸출한 복서를 탄생시켜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84년 고창고 1학년 때 복싱에 입문한 상무 전우회 회장 홍성식은 85년 2월 학생선수권대회에서 정양식에게 3회 RSC로 패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졸업반인 86년 제 67회 전국체전(페더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서원대에 진학한 공수주( 攻守走) 균형 감각이 부족한 복서였다. 

 

▲ 92년 올림픽에서 호야에 패하고 비통한 표정을 짓는 홍성식 

서원대 2학년 때인 88올림픽 선발전에서 박윤섭(동아대)에게,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선 이재권(동아대)에게 각각 판정패한 홍성식은 김승미 감독이 사령탑을 맞은 대표팀에 승선 1990년 서울컵(라이트급)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해 아이레에서 개최된 제6회 월드컵에서는 쿠바의 홀리오 세자르에게 RSC로 패해 세계수준과는 격차가 있음을 실감한다. 91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 홍성식은 상무에 배속되어 이흥수 감독의 조련을 받으며 복싱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해 제16회 아시아 선수권 라이트급 2위를 차지하며 워밍업을 시작한 그는 92년 서울컵에서 한수 위의 기량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후 제25회 바로셀로나 올림픽 준결승에서 미국의 골든보이 오스카 델라호야를 맞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접전 끝에 10ㅡ11 로  패해 동메달에 머문다. 

 

84년 LA 올림픽에서 무려 9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은 미국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선 오스카 델라 호야의 금메달이 유일한 금메달 이었다. 6살 때부터 복싱을 익힌 당시 20세의 호야는 그의 자서전에서 ‘홍성식전이 가장 힘겨운 몇 안 되는 경기 중 하나’였다고 했으며, 다큐멘타리 프로에서는 ‘홍성식과의 4강전이 후에 차베스 등을 꺽고 6체급을 석권한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의 골든보이로 불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면서 ‘그 경기는 사실상 패한 경기’라고 인정했다. 호야의 거인다운 풍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홍성식은 그해 9월 세계 군인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93년 동아시아대회에서 북한의 이영호를 2회 RSC로 물리치며 탈(脫)아시아권 복서임을 증명하며 화려한 전역식을 치르고 떠난다. 후에 그는 ‘이흥수 감독이 지휘한 상무에서 훈련할 때 역동적인 에너지가 충만해 가장 만들기 힘들다는 정신의 근육을 탄탄하게 키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94년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홍성식은 미들급의 이승배와 함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출국 10여일을 앞두고 운명처럼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현지에 도착한 그는 상대에 대한 전력분석은 망각한 채 멘탈이 붕괴돼 첫판에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다. 

 

▲ 홍성식 부부와 96년 아틀란타 올림픽대표 한형민(우측)  ©조영섭 기자

 

이후 불암산 오토바이라 불리는 홍성식의 강철체력을 예의주시한 심영자 회장이 그를 스카웃 하기위해  특사(特使)로 파견한 기자가 그를 만나 당시 스카웃비 5천만원을 제시했지만 결렬 되었다. 홍성식은 이후 고향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만개(滿開)시켜준 이흥수 사단의 상무팀에 감사함을 갖고 전역한 복서 6명이 모여 새천년 어느날 상무복싱전우회를 발족한다.  

 

이 모임에서 세계대회 메달리스트인 여고생 임예지 양에게 격려금을 전달해주는 등 복싱 저변에서 소리없는 선행을 하고 있다. 상무팀을 1987년부터 2013년까지 총괄한 이흥수(천호상전 ㅡ용인대) 감독은 1954년 경북의성 태생으로 이미 82년부터 3년간 서울체고에 근무하면서 최고의 유망주 김석호(서울체고ㅡ상무)를 위시해 정해명, 한광형, 정경준, 최임곤(경희대), 조동범, 나학균, 전병성(한국체대), 김석현, 김범수(동국대) 등 초고교급 복서들을 봇물처럼 배출하며 학원스포츠를 평정한 인물이다. 

 

이를 발판으로 86년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된 이흥수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인물이 박기홍, 최석만, 김진호(동아대), 조인주(동국대), 이창환, 김희준, 박정필(서울시청), 김창현(서원대), 최윤동(경희대), 김호철(한국체대)을 배출한 리라공고의 황철순 감독이고, 이어 박덕규(원광대)를 비롯해 이광중, 유지윤, 배호조(한국체대), 최진우(대전대), 신종훈, 김기석(서울시청) 등을 조련한 복싱계의 제갈공명 곽귀근(경북체고)이 신화의 주인공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학원 스포츠를 평정한 발원지 역할을 한 선구자 이흥수 감독은 73년 3월 제26회 전국 신인선수권에서 라이트 플라이급의 박찬희(한영고)와 함께 밴텀급 결승에서 황해남(중산체)을 꺽고 우승한 선수권자로, 74년에도 대통령배 대회에 서울대표로 출전한 중견 복서였다. 이흥수는 2013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26년간 봉직하면서 3회 연속 올림픽에 코치로 참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한광형 고요다 이흥수감독 조동범 홍성식 (좌측부터) 

 

그는 상무 2년차인 88년 서울 올림픽에는 김광선, 오광수, 하종호, 박병진 등 4명을,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는 조동범, 한광형, 고요다, 전진철, 홍성식 등 5명을,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는 배기웅, 신은철, 한형민, 신수영 등 4명의 소속팀 선수들을 쉼없이 발탁시켰다. 이즈음에 그는 체육유공자로 뽑혀 당시 이진삼 체육부 장관에게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는다.  탄력이 붙은 이 감독은 45세인 1998년 용인대를 졸업하며 만학도의 꿈을 이룬 후 99년. 전격적으로 국가대표 감독으로 발탁된다. 

 

특히 2001년엔 동아시아 대회(오사카)에서 라이트플라이급 김성수, 벤텀급 박정필, 라이트급 박권영, 라이트웰터급 양현태, 웰터급 김수영, 라이트미들급 송인준, 라이트헤비급 송학성, 수퍼헤비급 이강언 등 소속(상무)팀에서 8체급을 대표팀에 합류시켰고, 본선에서는 11체급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를 획득하는 등 전 체급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는 신기원을 창출했다. 하지만 그 대회가 이흥수 감독의 마지막 대표팀 감독 무대였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공수신퇴(功遂身退)란 글귀처럼 공을 세운 후 그는 미련 없이 떠난다. 한편, 홍성식은 이런 이흥수 감독을 한마디로 잡견(雜犬)을 진돗개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을 지닌 분 이라고 은유적인 촌평(寸評)을 했다. 

 

이흥수 감독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85년 월드컵과 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인 오광수는 88년 올림픽 선발전에서 조동범(한국체대)에게 2차례 다운을 당하고 판정패했고, 88 서울컵 결승에서 오영호(상무)에게 2ㅡ3 으로 패했다. 올림픽 최종선발전을 앞두고 승리에 대한 갈망이 똬리를 틀고 있던 그가 선택한 길은 이흥수가 있는 상무팀에 군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그의 지도를 받는 것이었다. 

 

▲ 역대 서울체고 최고의복서 최고의명장 이해정 이흥수(우측)     ©조영섭 기자

 

오광수의 예상은 적중했다. 최종선발 4강에서 오영호에 1회 RSC 승을 거두고 결승에서 난적 조동범에 한차례 다운을 뺏으며 판정승을 거두자 조동범은 절망의 신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인다. 사달이 난 오광수가 이흥수를 선택한 것은 기막힌 신의 한수란  생각이 든다. 

 

이 밖에도 아마복싱 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꼽히는 전국체전 10연패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2회연속 메달리스트인 극강의 김정주(원주시청)에게 회심의 일격으로 패배를 선물한 복서가 바로 상무 소속의 한상진이다.  

 

또한 홍기호(서원대)에 연패를 당한 하종호(상무)가 연패 사슬을 끊고 88서울 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미들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라이트헤비급에서 언더독으로 평가받은 박병진(상무)이 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민병용(경남대)을 꺽고 용인대 출신으로 첫 올림픽에 출전한 일화, 89년 1월 미국 뉴저지에서 개최된 제3회 한미 국가대항전에 10체급중 8체급에서 패할 때 상무소속 김오곤과 박준호가 2체급에서 승리한 기록 등은 그의 지도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주요한 잣대라 생각한다. 이런 그는 항상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겸손해 한다. 

 

한편, 제자 홍성식이 복싱 스토리를 통해 그의 스승 이흥수 감독의 지난 발자취를 발췌해 시간이라는 모래밭 위에 흔적을 남기게 한 것은 사제 간의 휴머니티의 발로라 생각하며. 상무복싱전우회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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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학성 2020/09/24 [11:46] 수정 | 삭제
  • 한시대를풍미했던 지도자라생각합니다! 이흥수감독님 감사드리며 고생하셨습니다!
  • 배도령 2020/04/28 [09:56] 수정 | 삭제
  •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호야와 메이웨더의 경기가 떠오르네요ㅎ
  • 배도령 2020/04/28 [09:43] 수정 | 삭제
  • 많은 전설들을 알수있는 기사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 웅영 2020/04/26 [01:14]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 폴민준 2020/04/20 [15:31] 수정 | 삭제
  • 선수 재능도 중요하지만 스승님의 혜안이 더욱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성수 2020/04/20 [14:40] 수정 | 삭제
  • 복싱사의 이런 저런 스토리...이흥수 감독등등.....감사하게, 편하게 읽고 있습니다....다음편이 기대 됩니다.....^^
  • 박태진 2020/04/20 [10:11] 수정 | 삭제
  • 기사 잘읽었습니다^^
  • 끈이 2020/04/20 [09:36] 수정 | 삭제
  •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_^
  • 단지 2020/04/20 [09:26] 수정 | 삭제
  • 좋은글 즐감했습니다 좋은 한 주되십시오! 화이팅^~^
  • 꿀오소리 2020/04/20 [08:55] 수정 | 삭제
  • 많은 복싱 선수분들을 알게 되어 흥미롭고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상무복싱전우회의 건승을 바랍니다~^^
  • 베냐민 2020/04/20 [08:36] 수정 | 삭제
  • 그 호야선수와 대등하게 경기 했다니 대단합니다!! 멋진 복싱이야기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b
  • 복싱월드 2020/04/19 [22:37] 수정 | 삭제
  • 역시 진인사님의 글은 복싱인으로써 많은 경험과 많은 지식 역사를 알지못하면 쓸수 없는글 갔습니다. 잘읽고갑니다. 이흥수감독님,홍성식형님 후배구재강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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