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明暗] 손학규·안철수·유승민의 정치적 장래는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04/14 [11:16]

[4.15. 총선 明暗] 손학규·안철수·유승민의 정치적 장래는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04/14 [11:16]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결정할 제21대 총선이 415일 실시된다. 이번 총선을 통해 비중 있는 수많은 인사가 정치적 부침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던 손학규 민생당 선거대책위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전 새보수당 대표의 총선 이후 위상 및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들 3인은 각각 비례대표 후순위(14), 비례 불출마, 불출마로 21대 국회 등원은 불가능하다.

 

▲ 왼쪽부터 손학규 민생당 선거대책위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민주운동가·거물 정치인에서 노욕의 대명사

손학규, 회한의 정치역정

 

1947년 경기도에서 출생한 손학규 민생당 선대위원장은 학생운동가 및 민주운동가로 온갖 고초를 감수했다. 1993년 경기 광명을 제14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제33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31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정치적 비중을 키워 왔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으나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18대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다. 19대 대선에서 당적을 바꿔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지만 또다시 탈락했다.

 

이렇듯 대권에 도전한 11, 3회의 대선 동안 한 번도 후보조차 되지 못한 정치가가 되었다. 이런 과정에 두 차례 걸쳐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에서 와신상담하면서 한동안 은둔의 세월을 보냈다.

 

20164 20대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에서 복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하며 결국 복귀 타이밍을 놓쳤다. 같은 해 10만덕산이 내려가라 한다라며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손 위원장은 20172월 국민의당에 입당해 세력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바른미래당이 제7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인 20188월에는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9월 당 대표에 선출됐다.

 

▲ 손학규 민생당 선거대책위원장.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바른미래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의 정치 역경은 파란과 굴욕의 연속이었다. 20194월 민주당과 연합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근간으로 하는 패스트트랙 입법 과정에서 극심한 당내 혼란을 초래하며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계 의원 8명이 탈당했다. 이에 더해 김수민 의원 등 8명의 의원이 셀프 제명을 통해 당을 떠나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호남을 근거지로 하는 대안신당, 평화당과 재결합으로 민생당을 출범시켰다. 현재는 이 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지휘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손학규 위원장은 애초 비례대표 2번에서 배정됐다가 노욕이란 비난이 일어나 14번으로 밀려났다. 민생당의 지지율로는 당선이 불가능한 순번이다. 총선 후 야인의 위치에서 정치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손학규 위원장은 더는 대권 주자가 아니다. 더욱이 향후 있을 수도 있는 재·보궐선거에서 그가 출마할 지역도 없다. 손 위원장 본인의 고백처럼 노욕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학생·민주운동가에서 노욕의 대명사로 전락한 손 위원장의 30년 정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과 굴곡으로 얼룩진 헌정사의 축소판이다.

 

손 위원장의 앞날에는 이제 정치적 삶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가는 손학규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대권후보에서 철수를 거듭

지지기반 유실시킨 안철수의 망연자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의사프로그래머교수기업인 등의 다양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이다. 2011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시민운동가 박원순 현 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안 대표는 제18대 대선을 앞둔 2012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에 등장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12월 초 문재인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당 대표로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냈으나 재·보궐선거에 패배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152월 전당대회로 출범한 문재인 대표 체제와 지속적인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해 2016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20대 총선을 지휘하며 서울 노원구병에서 당선되고 38석 확보라는 돌풍을 일으켰으나, 리베이트 파문으로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안 대표는 20175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득표율 21.41%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뒤진 3위로 낙선했다. 당시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으로 정치은퇴까지 거론되었으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2018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호남계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강행한다. 당 대표직에서는 사퇴하면서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득표율은 19.55%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조차 밀리며 떨어졌다.

 

독일로 출국한 그는 뮌헨 근교의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서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연수를 마쳤다이어 미국으로 넘어가 스탠퍼드대학교 , 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안 대표는 올해 1월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귀국했다.

 

한국에 와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담판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결국 바른미래당을 탈당, 창당 작업에 들어가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을 창당하자마자 그간 자신을 지탱하던 이태규·김수민·김삼화 등 비례대표 의원은 물론 당직자마저 미래통합당으로 이적하자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선거에 치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대구에서의 의료봉사로 당 지지율이 약간 상승했으나 대권을 바라보는 안철수 대표의 입장에선 정치적 장래가 불투명하다. 비례대표 의원도 아니고 정치세력도 전무한 상황에서 정치적 협곡을 어떻게 넘어갈지 망연자실하다.

 

‘TK 맹주꿈꾸다 박근혜 탄핵

정치적 뿌리 뽑혀버린 유승민의 방랑 삼천리

 

1958년 대구에서 출생한 유승민 전 새로운보수당 대표는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02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4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국회의원이 된 그는 20051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되며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07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20154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박 전 대통령을 격분시켰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20157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다가 결국 직을 사퇴하기에 이른다.

 

▲ 유승민 전 새로운보수당 대표(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이 불씨가 돼 제20대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하며 공천 파동의 진앙이 됐다. 무소속으로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해 꾸준히 당의 진로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하다가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그의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유승민 전 대표는 2017년 초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는 제19대 대선후보 출마를 비롯해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하다가 20182월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합당, 바른미래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손학규 대표를 축출하는 데 실패하며 올해 1월 바른정당계 8명과 함께 탈당했다. 이어 새보수당을 창당했으나 결국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과 합당을 선언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TK(대구·경북) 맹주를 자임하면서 야망의 세월을 꿈꿔온 유 전 대표의 가장 큰 난관은 TK 지역에서 박근혜 탄핵을 주도한 역적으로 몰려 지지기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TK 집단 정서의 문제다. 그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방랑 삼천리 유랑을 통해 미지의 삶을 개척해야 할 상황이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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