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팩트 체크

박항준 | 기사입력 2019/10/01 [15:20]

[박항준 칼럼] 팩트 체크

박항준 | 입력 : 2019/10/01 [15:20]

인터넷 속어 중 ‘팩트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허언이나 거짓말 등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실(팩트)을 제시하여 해당 주장이 틀렸음을 알리는 합리적, 논리적 행위로, 본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제시하여 상대에게 폭력과 같은 충격을 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곧 상대방에게 팩트를 제시하여 허언이나 구라 등을 치는 사람에게 면박을 준다는 의미로 변질되었다.(출처 나무위키) 허언에 대한 사이다 발언으로 찬사를 받기도 한다. 

 

유사하지만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용어로 ‘팩트 체크’라는 말도 있다. 동일 주제에 대해 상대와 내 텍스트가 다를 때 이에 대한 사실의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을 서로 체크하는 것을 말한다. 일방향의 ‘팩트 폭력’과는 달리 쌍방향의 ‘팩트 체크’ 과정에서는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화자들 간에 서로 불완전한 정보 기반 텍스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팩트를 따지다 보면 무자비한 ‘팩트 폭격’이 되어 버리고 감정이 상한다.

       

혹자는 만나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대화 주제가 ‘종교’과 ‘정치’ 얘기라고 한다. 왜 ‘종교’과 ‘정치’ 얘기는 결국 몇 시간을 지루하게 끌다가 언성이 높아지거나 싸움으로 번져야 끝나는 것일까. 신의 존재 여부나 이념 이데올로기가 달라서라기보다는 ‘팩트 체크’ 과정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네가 신을 직접 본 적 있나?”, “네 아이가 아프면 신이 보일 거다.”, “지금 내 아이에게 악담하는 거냐?”, “힘들어봐야 신이 보일 거란 얘기다.”      

 

“장관이 어찌 그럴 수 있나?”,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던데.”, “아니긴 뭐가 아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지.”, “뭘 그렇게까지 사람을 미워하냐?”, “미운 게 아니라 양심이 없어 보인다. 양심이!”, “그래도 한 나라의 장관인데 검찰이 너무한 것 아니야?”,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사퇴했어야지.”     

 

이 두 주제의 대화에서 어느 쪽 텍스트도 팩트가 확실한 것이 없다. 이는 팩트 체크를 가장한 자기들의 일방적인 경험과 주장을 상대에게 우기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들은 얘기, 신문과 뉴스의 짜깁기, 자신의 추측만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텍스트들을 본인의 프레임에 맞춰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텍스트로 상대를 설득하다 보니 근거도 희박한 자기주장만 하게 된다. 서로 간 불명확한 팩트를 상호 체크하다 보니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감정이 상하게 되며, 심지어 멱살잡이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 

 

콘텍스팅

 

주제의 본질을 찾는 콘텍스팅(contexting) 대화법의 지혜를 통해 팩트 체크의 유혹에서 벗어나 보자.

 

혹 상대의 텍스트가 허언이며 구라인 것 같은가? 다소 과장되었다고 생각되는가? 우리가 판사나 검사가 아닌 이상 팩트 체크를 할 필요는 없다. 불완전한 텍스트들을 가진 이의 대화에 끼어들어 완전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팩트 체크를 하다 보면 도둑과 형사가 되거나, 범죄자와 판사 흉내를 내야 한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감정만 상한다.      

 

최근 모 교수님과의 저녁 대화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현 정부가 개성공단이라도 재개했어야하지 않았냐는 의견에 교수님은 개성공단에 지점을 두었던 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매달 1천억 원의 현금이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어 이 돈이 핵무기 개발에 사용되었을 것이므로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만일 그 자리에서 필자가 이 주장에 대해 팩트 체크를 했다면 어땠을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져 7년간 인건비로 6000억원이 현금으로 지급되었다는 사실과 월 1천억 원이면 7년간 8조 4천억원 이상의 규모니 8조 원이 리베이트나 불법 지원 자금으로 북한에 지급되었다는 얘기냐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당시 개성공단 은행 지점장이었던 지인에게 그 자리에서 전화해서 월 1천억씩 현금다발을 들고 개성공단으로 향했다고 얘기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라고 팩트 체크를 할 수도 있었다.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팩트 체크’ 과정을 거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다음부터는 이 교수님과는 절대 만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껄끄러워져서 모임이 파했어야 했을 수도 있다. 팩트 체크의 후유증이다.      

 

반면 혹 교수님이 숫자를 헷갈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유튜브나 다른 곳으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전달했을 수도 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조금 과장된 수치를 제시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교수님만이 아는 은밀한 정치적 뒷거래 정보를 알고 계셨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1천억이라는 숫자(팩트)가 아니다. 대화의 본질은 개성공단 재개의 리스크, 즉 남북경협의 안전성 문제를 얘기한 것일 게다.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면 평화와 안정을 위한 남측의 추가 노력, 북측의 현금 전용을 막기 위한 대안품 지급 등 보다 건설적 얘기가 오갔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얘기에 대한 ‘팩트 체크’가 아니다. 부부싸움도 상대가 이런 말을 했느냐 안했냐 라는 팩트 체크에서부터 싸움이 크게 번진다. 

 

설교나 강의 중에 휴대폰으로 강사의 말이 사실인지 팩트를 체크하기도 한다. 상대가 얘기하는데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거나 사사건건 팩트의 진실성 여부를 따지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아직도 사사건건 따지는 행위를 하고 있으신가? 왜 이런 얘기가 나왔으며, 본심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자. 

 

즉, ‘팩트 체크’보다는 ‘본질 체크’가 필요하다. 본질 체크로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의 여유가 생기고, 화풀이가 자제되며, 세상이 미워보이기 보다는 안타까워보이게 될 것이다. 아내도 친구도 동료도 파트너들도 내 포용성에 감동하게 된다. 

 

본질 체크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겠지만 중요한 것은 ‘팩트 체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팩트 체크’를 멈추는 것은 갈등해결의 지혜로 다가가는 첫걸음이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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