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회 헌혈자 임종근씨 “헌혈은 내 건강을 위한 적금”

“정책적으로 헌혈 독려해야…가산점 제도 운용 등 대안될 수 있어”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8/03/02 [17:25]

547회 헌혈자 임종근씨 “헌혈은 내 건강을 위한 적금”

“정책적으로 헌혈 독려해야…가산점 제도 운용 등 대안될 수 있어”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8/03/02 [17:25]

건강한 피 기부하려 마라톤 시작…임종근씨의 인생 자체가 된 ‘헌혈’

헌혈을 한다는 것? 매달 무료로 건강검진 받으며 건강을 챙기는 것

“정책적으로 헌혈 독려해야…가산점 제도 운용 등 대안될 수 있어”

 

“갈수록 피를 받을 사람은 많아지고, 피를 공급할 사람은 적어지고 있어요. 결국에는 피를 수입해오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헌혈사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혈액은 전시비축물자 중 하나기 때문에 국가는 비상시 혈액수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혈액 수급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정부는 수혈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요를 줄이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공급을 늘릴만한 정책적인 방안은 부재한 상황이다.     

 

▲ 547회째 헌혈을 진행하고 있는 임종근씨(61세). 그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 약 40년간 헌혈을 이어오고 있다. © 박영주 기자

 

지난달 23일 인천 부천 헌혈의집에서 만난 임종근씨(61세)는 “반대급부 까지는 아니더라도 헌혈의 의미라든가 긍정적 인식은 형성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는 것 같다”며 정책적으로 헌혈을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헌혈을 이어오고 있다. 횟수로만 ‘547회’에 달하고 양으로는 1.5L짜리 페트병 200개 분량이다.   

 

인천지역 최다 헌혈자면서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자 최고명예대장까지 받았지만, 임씨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물 퍼다 주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그러나.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하고 있을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헌혈 집계가 81년도부터 이뤄진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약 40년에 걸친 기간 동안 꾸준히 헌혈을 해온 임씨는 사실상 대한민국 헌혈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셈이다. 이미 ‘헌혈’은 임씨의 인생 자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헌혈 사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임씨는 누구보다 각별한 마음을 갖고 걱정하고 있었다. 임씨는 △가산점 제도 운용 △교과서를 통한 헌혈교육 △다회헌혈자들을 활용한 홍보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연예인을 동원해서 헌혈을 독려하는 것은 일시적이다. 오랜 세월 헌혈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활용해 헌혈의 순기능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00회가 넘는 다회헌혈자로서 임종근씨는 헌혈을 통해 어떤 것을 얻었을까. 그는 “헌혈을 하면서 오히려 건강해지고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헌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내 건강을 위한 것이다. 저 역시 하늘에 적금을 붓는 심정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헌혈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는 임씨는 현재 모든 삶의 기준이 헌혈에 맞춰져있다. 60세가 돼서까지 헌혈을 이어가고자 그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마라톤으로 건강을 챙기고 있다. 지금도 매일매일 20km씩 달리며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마라톤에 이어 사하라 사막 마라톤, 고비 사막 마라톤,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임씨는 11월 남극마라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종 마라톤도 건강한 피를 헌혈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 각종 마라톤 완주메달들은 임종근씨의 보물이자 인생의 기록이다.  © 박영주 기자

 

그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딱히 운동을 안 해도 헌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40대가 넘어가면서 부터는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헌혈은 엄두도 못 낸다”며 “헌혈을 하기 위해 자기관리를 하다 보니 지금까지 큰병 없이 건강하다. 40년 동안 헌혈을 하면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고 자신했다.

 

그는 헌혈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하나의 척도로서도 좋다고 말한다. 임씨는 “건강검진을 개인적으로 하려면 내 돈이 들어가지 않나. 그나마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2년에 한번씩 돌아온다. 하지만 헌혈을 하면 백혈구 수치부터 시작해서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사실 공짜로 매달 건강검진을 하고 있는 셈”이라 웃으며 말했다.   

 

임씨는 가산점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헌혈을 독려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기본적으로 피는 사고 파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물을 주고 피를 받는 등의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 이 때문에 매번 국정감사에서도 헌혈의 집에서 주는 문화상품권이나 영화 티켓이 표적이 된다. 

 

많은 정치인들은 ‘매혈(피를 사고 팜)’의 유사형태인 이러한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한적십자사에서는 그마저도 없애면 헌혈 참여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 우려한다.   

 

이에 대해 임씨는 “저 역시 적십자의 입장과 같다. 하지만 그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렇다. 차라리 기업에 취업하거나 승진할 때 헌혈기록이 가산점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낫지 않나. 대기업에서 헌혈기록을 보긴 하는 것 같은데 좀더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교과서에 헌혈의 순기능과 필요성에 대해 수록하고 교육을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근 대한적십자사는 교과서에 수록할 계획이라며 임씨로부터 사진과 신상정보를 얻어갔다. 

 

임씨는 “물론 무상헌혈이 원칙이고 나아갈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나 역시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피를 기꺼이 내준 사람들을 위한 예우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정책적으로 미흡하다고 본다. 공무원 역시도 수에 비해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이다. 이런 부분은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때 논란이 됐던 적십자사의 매혈 논란에 대해서도 임씨는 “투명하게 운영하면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적십자사는 제약회사에 혈장을 판매하고 있다. 누군가는 혈장으로 약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불가피한 것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투명해야 한다. 내가 헌혈한 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공개만 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투명하지 않으면 결국 화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 빼곡하게 기록돼 있는 헌혈기록들. 임종근씨는 지금까지 모은 헌혈증과 건강검진표 등을 전부 갖고 있었다. © 박영주 기자

 

임종근씨에게는 목표가 있다. 오는 11월 250km 남극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2021년엔 LA와 뉴욕까지 5500km의 미국횡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혈은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헌혈을 하면서 생긴 목표다. 임씨가 “헌혈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이유다. 

 

“누군가는 말해요. 많이도 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횟수를 채울 생각이라면 더 많이 할수 있었겠지만 저는 1년 365일 중 24회 횟수제한을 지키면서 헌혈을 해왔어요. 그래야 건강한 피가 유지되거든요. 지금도 간호사 분들이 말씀하세요. 교과서에서 보는 것처럼 정말로 건강한 혈액이라고. 횟수보단 얼마나 건강한 피를 기부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죠.”

 

임씨는 헌혈을 할 수 있는 최고연령인 70세까지 헌혈을 할 생각이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건강한 피를 기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70세 이후, 임종근씨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물음에 임씨는 웃으며 말했다. “헌혈은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만나 헌혈의 좋은 점을 전파하고 있을 거에요. 대한적십자사에서 교통비만 지원해준다면 제 헌혈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 어디든 갈 생각이에요.”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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