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자연에 둥지 튼 문학가 박옥태 래진 시인

김광한 | 기사입력 2008/08/08 [14:04]

자연에 둥지 튼 문학가 박옥태 래진 시인

김광한 | 입력 : 2008/08/08 [14:04]
▲ 박옥태 래진 시인  
필자가 그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려할 때 선뜻 그의 현업을 가늠하기 어려운 여건이 복합적으로 내재해있어 직함을 말하는데 여러 가지로 헷갈리게 한다.

우선 남들은 성(姓)씨 하나에 이름 두자가 보통인 데 비해 성씨는 하나지만 이름 뒤에 붙는 래진이 도대체 무엇인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것보다 그의 현업을 설명할 주된 것이 여러 가지 업(業)에 가려져서 역시 독자들에게 주된 업을 설명하는데 조금 난감한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집가(家)자가 붙은 업과 함께 그 외에도 전혀 이것과는 무관한 여려가지가 꼬리처럼 달렸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아는 가(家)란 어의(語意)는 한 분야에 남들보다 이룩한 성과가 유별나다는 뜻인바, 그에게 자칭타칭으로 붙여진 가(家)자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기에 이것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종이와 연관지어진 시인, 소설가, 수필가, 시나리오 작가 등등은 한속(束)으로 묶어서 문학가(家)로 통일시키면 되겠지만 그의 약력에 쓰인 작곡가란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소리를 통해 귀로 듣는 분야인바 이것은 조금 궤(軌)를 달리해야 할 것 같아서 또 다른 평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조각가와 풍수지리학자는 이것들과는 전혀 이질적인 요소가 다분해서 독자들에게 이해를 시키려면 아무래도 박옥태 래진의 인생 자체를 소개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나중으로 미룬다.

그리고 그의 범상하지만은 아닌 그의 풍모 역시 요즘 시대에 흔하게 보는 그런 상(相)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의 관심을 더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흔히 귀골(貴骨)이라 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상식적으로 대하는 그런 편집이 괜찮아져 무슨 미남자이니 하는 용어보다 우리 전(前)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주장으로 일관해 고고한 일생을 보낸 도학자의 풍모가 엿보이는 것 역시 범상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흔히 음식점에 메뉴판이 요란하게 많이 붙어 있으면 그 한 가지 음식에 특징이 없다지만 그에게 붙은 여러 가지 호칭은 이것과는 궤를 달리해서 그 한 가지 한 가지에 상당한 의미로 전해지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가 살아온 세상과 그가 쓰는 글과 시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필자가 몇 번 만나본 그의 인상은 물론 피상적이지만 매우 다정다감하고 무슨 질문을 해도 나름대로 전문적인 견해를 아낌없이 피력한다는데 놀라움을 갖게 되었다.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그의 해박한 지식과 첨언 (添言)들은 그냥 흘려버리기에 아까운 것들이었다.

아무튼, 여기에서는 그 많은 분야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시에 대한 나름대로 해설을 달아야 할 필요가 있어서 다른 분야를 접어둔다.

전남 고흥, 지금의 나로도, 우주기지 건설하는 곳 근처에서 태어나 출발(出 鄕)한 그는 종이와 붓과 연관된 것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한 가지를 내세울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과 그동안 지은 책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의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삶의 권태

새벽이 일어나서 날 깨웠다.
그리곤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아침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햇살을 방안에 가득 채워 넣었다.

나는 눈이 부셔 몸을 뒤집어엎으며
잠의 영원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이번엔 잠속의 꿈들이 모두
머릿속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할 수 없이 일어나 눈을 감은 채로
개으른 체조를 문어발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삐리 링!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났다.
“네! 네! 알았습니다!”
얼마 후 나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잔잔한 바다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삶은 왕 소라 한 접시에 데친 주꾸미 한 접시
그리고 작은 항구에 앉은 내 앞에
담배를 바다를 향해 물고
푸른빛 하늘에 연기구름을 만들고 있는
노신사와 마주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하늘에 바다가 있듯이 바다에도 하늘이 있다.
그대 시간의 문턱에 걸터앉은 방랑자여!

날마다 죽고자 하는 영혼이여!
천 년을 하룻밤 꿈으로 보낸다 해도
그대의 거울 속에서는
이 해변의 모래알을 다 헤아리지 못할지니
그 모래알들이 그대의 모습일 지라

모래알도 삶의 흥미를 파도와 나눌 진데
그대는 오늘도 하루의 생을 버리려 하는가

그는 나의 모습이런가
선구자의 영령이런가
아니면 나의 넋이런가

그때 갈매기 떼들이 날아와
접시에 있던 술안주를 모두 부리로 낚아채 갔다.

한 세월이 왔다간 것처럼 물고 달아났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잠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자 무거운 아침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시대의 세파를 헤치며 등불처럼 돛을 올린
선구자의 모습도 불쌍하구나

오! 수심은 깊고 수평선의 파도는 망막하여라
하늘로 뿌려지는 바람의 진리이야기들
바다로 침몰시킨 사랑의 더운 파장들 어이 감추랴

영혼 속 하늘과 바다와 대지에서
바다를 예인한들 수평선에 문이 없고
수심을 건질들 건조할 대륙이 없어라

돛을 펼치어라. 영원의 날개로 하늘을 날도록
투망한 세상을 건져 올려 태양에 걸어 놓고
은하의 바람으로 물으라, 들으라. 깨이라. 열으라

오! 그렇게 하여도 이 시대에서는
하룻밤의 꿈속처럼 영원한 이방인일 지라
가져도 얻지 못하고 주어도 배우지 못할 시대에서
항해를 쉬고 가슴속 태풍의 눈 속에 남아 잠들도록

제발 나를 영원히 깨우지 말고 놔두라
 어리석은 파도들이 고요히 잠든 깊은 수심처럼
새벽과 밤 없이 남은 인생 침묵하도록

 ---------------------------------------------------------------


평상적인 하루의 일과에서 사람들은 권태를 느낀다. 매일 반복이 되는 그 시간과 그 행동과 그 말들 속에서 얻어지는 것은 삶의 무력감(無力感)이다. 사람들은 이 무력감에서 때로는 충전(充電)을 한답시고 며칠 동안 여행을 하고 이제까지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고 더 멀리 떠나려 준비를 한다.

그러나 내가 있는 장소를 얼마 동안은 벗어날 수가 있지만 오랫동안 비켜나지를 못한다. 마치 돌을 하늘에 던지면 그 돌이 하늘로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하지만 그 돌은 다시 내 머리 위로 떨어져 생채기를 내듯이. 그래서 사람들은 일탈(逸脫)을 꿈꾼다. 생소한 것에 대한 도전과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함으로서 현재의 생활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무위(無爲)로 끝나고 만다. 스님들, 고승(高僧)들은 무애행(無碍行)을 통해서 계율과 속박 속에 묶인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려 한다.

술을 마시고 여자를 가까이하기도 하고 이제까지 자신을 가두었던 옷들을 벗어보려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그 지점이다. 또한, 허무는 몇 배로 늘어나게 된다. 돌을 던지고 그 돌을 찾아 나서려면 돌을 던진 장소를 찾아가야 한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박옥태 래진 시인의 권태란 비교적 형식을 벗어난 장시 역시 시의 규율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어(詩語)의 일탈이고 이런 일탈을 통해서 얻은 것은 침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침묵 속에 자신을 던져두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라는 요지의 시속에 그의 삶의 형식이 배어있는 듯하다.
 

거울


바다와 하늘을 담고
대지의 꿈틀거림과 세월의 영원을 담은 
 그 거울에는 안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도 없었습니다
너무 높고 너무 깊어서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거울은 오직 있는 그 대로와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절이 스쳐가고 솔바람이 부는 밤에
삶에 지친 별들이 떠오르면
나의 별은 거기에서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나는 다 못 알아들었습니다
가슴속 바다에 잠겨 반짝이는 말인데도 말입니다

나는 사춘기 때 애초의 거울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거울을 또 장만했었는데

장년이 되어서 그 거울도 부숴버렸습니다
꿈과 맘에 안 들고 틀린 모습을 비춘다 하면서
파괴의 핏물은 대지의 강 줄이 되어서 흘렀습니다

내 정신을 부순 것이라 너무도 아팠습니다

그 후 다시는 거울을 찾지도 보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그 깨 버렸던 애초의 거울과 나중 거울이
똑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창조로 나타난 거대한 내 영혼의 거울
그가 여태 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별들의 이야기를 이제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가슴의 대지에서 용암의 꿈들을 읽어내고
바람을 안은 하늘의 사랑을 느끼면서
나의 참모습을 그가 찾아내 비춰주었습니다

대자연 속의 나와 나의 영혼을 말입니다
그 거울 속 한가운데에서

 --------------------------------------------------------------

거울 속에는 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사물들이 함께 있다. 세상이란 거울 속에는 바다와 강과 하늘 모두가 한통속이요, 동시대에 존재하는 사물에 불과하다. 여기에 어떤 영적인 의미를 부여해도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20대의 철없던 시절의 내가 그 시대의 거울 속에 들어 있어서 이를 깨 버리고 한동안 그 거울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거울은 내가 거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거울 밖에서 응시하는 깨달은 내 영혼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이다. 매우 철학적이면서 얼핏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시 같지만 그와 영 육이 한데 어울리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한편의 모노드라마와 같은 시가 아닐 수가 없다.

박 시인의 겉모습은 늘 밝고 자상한 것 같지만 속내는 이렇듯 철학적인 사고로 마음을 닫아두는 고뇌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 세상과 일치가 되고 그 세상 속에서의 내가 하나라는 생각은 그가 얼마나 땅과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가를 알 수가 있다.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연구하면서 도도하게 흐르는 바람과 물과 모든 자연 앞에 머리 숙여서 자신의 영혼을 낮추는 것만이 나를 변화시켜줄 거울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시이다.


나를 방생한다


오! 나를 방생한다
나의 육신과 영혼이 이 시대에 썩어지기 전에
좁은 의식의 하늘에서 우주의 창공으로
자유로운 유영과 흩어짐의 진리를 위하여
나의 육신과 영혼의 소유권 인식을 없애고
나와 나에 대한 모든 권리를 해방 시킨다


나의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붙들고
나의 목숨이라고 두려워하고
나의 인연들이나 나의 사랑들까지도
나의 소유요 나의 인생이라며 날 설계하던 것까지
나의 속박에서 모두 해방하고 방생을 한다

나를 알아버린 나의 진리와 껍질과
 의식화된 도덕과 율법에서 해방 시킨다

대우주 속에서 보잘것없는 존재가치로 
나를 붙들고 있었음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를 깨우치는 것과 삶과 죽음을 깨우치는 것도
나에게 있지 않고 자연 섭리에 속해있다는 것
산다는 것 또한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기에
나는 나에게 매달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대 섭리의 세계로 나를 놓아 보내는 것이다

나를 속박하는 것들이여
그대들의 인연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대들의 존재가치마저 함께 사라졌다

내가 나를 붙잡지 않으니 그대들이 어찌 날 잡으랴
이젠 아무도 나를 가두거나 점령하지 못하리
최후의 주인 내가 나를 놓아 주었으니
이미 나는 우주의 정령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나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나에게 있어 나란 삶도 죽음도 아니다

생명이요 자연이요 일체 흐름의 세계로서
개체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나를 초극시키니 나의 존재가 초 극이라
내가 나를 이끌지 않음에 무아의 영이 있을 뿐이다

---------------------------------------------------------------


방생(放生)이란 살아있는 불쌍한 생물들을 해방해주는 불교적 용어이다. 말 못하는 물고기와 거북 등 사람에게 잡히면 먹이가 되고 죽어야 하는 딱한 생명을 사람의 이익을 떠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놓아주는 행동이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방생이 존재할 것인가.

물고기 등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방생일 텐데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아다가 다시 풀어주면서 방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어쩌면 그것은 의도된 위선이 아닐 수가 없다. 박 시인은 이런 인간의 조작된 방생을 통해 자유를 느끼기보다 스스로 영육을 방생함으로써 자연과 일체가 되는 실질적이고도 정직한 방법을 동원하여 마침내 해탈의 문으로 다가가는 수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나에게 있어서 나란 삶도 죽음도 아니다
생명이요 자연이요 일체 흐름의 세계로서
개체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문 시의 一節>

어쩌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적 사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내가 이 세계에 특별하게 태어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유아독존식의 사고로 일관해서 간혹 독재자도 생기고 온갖 범죄자들도 양산이 된다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란 자연의 하나이고 자연의 흐름에 내가 거역하지 않고 따라주는 것이 바로 일체요 해방이요,

연락(悅樂)이 아닐까 하는 시인의 생각은 매우 자연주의적인 방생에 진정한 세계가 아닌가 싶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접하고 글과 연관된 모든 것과 접하고도 부자유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안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연 속에 엎드려 하늘을 응시할 때 진정한 일체, 나와 남과 자연의 광대하고 무한한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의 시속에는 만다라의 무궁무진한 세계가 들어 있다.

▲ 지난 5월3일 출판 기념식장에서앞의 모자 쓴 이가 박옥태 래진 시인     ©김광한

그의 본명은 박옥래이고 정제(正濟)는 아호이다. 그동안 살면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초인 박옥태래진><삶과 영혼과의 대화><천상의 도덕><천기의 혈 터> 그 외 많은 중단편이 있다. 시집으로는 <시와 잠언><사랑이 사랑에서 무궁까지><사랑과 영혼의 블랙홀> 그리고 작곡으로는 <남는 것뿐이야>외 1백여 곡을, 한국신문예협회 문학상 대상, 현대 철학상, 문예춘추에서 은유 문학상을 받았다.

본 코너 (시인의향기)에 소개될 촉망되고 훌륭한 시인을 문화저널21 편집국 (02-3667-4555)또는 이메일(master@mhj21.com  /  mh0100@naver.com)으로 추천 하여주시길 바랍니다. 

☞ 삶의 향기가 가득한 문화예술전문분야의 선두주자“문화저널21”
[저작권자(c)문화저널21 & www.mhj21.com.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
Copyright ⓒ 문화저널21 www.mhj21.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저널21 / 편집위원,한국문인협회회원
김학섭 08/08/08 [16:14] 수정 삭제  
  김광한 소설가의 글을 통해서 박옥태 래진 선생의 세계를 다시 보는 듯합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을 많이 쓰시기 바랍지다.
박옥태래진 08/08/09 [00:17] 수정 삭제  
  평론해 주신 김광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훌륭하신 많은 분들이 계셔서 제가 존재하고 세상도 밝게 빛이 납니다.
많은 격려와 채찍을 승화시켜서 더욱 좋은 참됨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문화저널21의 무궁한 발전을 함께 빌면서, 감사 인사 올립니다.
소연/김태순 08/08/09 [11:26] 수정 삭제  
  두어번 뵈었어도 무척이나 기억에 남았는데
주신 시집을 보며 박시인님의 시심을 많이 담았습니다
부드럽게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그 시심에 감동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후배로써 많이 닮고 배워야할 마음 가짐이라 여기게 했습니다
박시인님의 글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건안 건필하시고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카페가 잘 되질 않아서 글 적었는데 다 날라갔네요~ㅎㅎㅎ
김광한 선생님~!
선생님의 후배 사랑에 늘 존경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더운 날씨에 건안하소서....~^&^
이현실 08/08/09 [15:23] 수정 삭제  
  박시인님. 성함이 특이해서 혹은 외모가 눈에 띄어서(?) 아무튼 2가지 모두 사실입니다. 5-6년 전 인가요? 어느 출판사의 문학기행에서 선생님을 뵈었지요. 그러고 수 년 후인 또 다른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만 ㅎㅎ
이제 온라인 상에서 세 번째의 조우를 합니다.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나를 방생한다- 제목이 주는 신선함에서 사고의 깊이를 헤아립니다. 수 없이 번민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작품들은 많이 있지만 나를 뒤돌아보며 방생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죠. 시심의 깊이를 혜안을 가늠해봅니다. 좋은 시를 만남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 람- 08/08/11 [22:18] 수정 삭제  
  시의 소재는 자연에서 얻은 철학이 숲을 이루고 있는 박옥태래진 시인 철학가님.....그 깊이가 오묘하여 하늘이 노해버린 시인.....그러면서도 인명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는 시인..... 김광한 선생님의 부연 설명으로 의미가 더욱 돋보입니다.....읽는 밤의 마음이 뿌듯합니다.....
전세원 08/08/17 [15:51] 수정 삭제  
  그래요~ 보통사람의 기준을 초월한 사람같은 느낌의 다재 다능한 분이시지요
김작가님의 평을 읽으니 무언가 알것 같으네요
흐믓한 마음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박옥태 래진 시인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MJ포토] 백운만 경기지방중기청장, 경중연 서부지회 정기모임에서 특강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