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빠진 악습” 관절병원 대리수술은 현재진행형

최재원 기자 | 기사입력 2024/08/05 [17:25]

“썩어빠진 악습” 관절병원 대리수술은 현재진행형

최재원 기자 | 입력 : 2024/08/05 [17:25]

"궁금하지 않아요? 지역에서 1등으로 수술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안영숙 원장일지 아니면 공수호 과장일지…" 드라마 '모범택시2'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 달력에 빽빽하게 적힌 수술 일정을 보고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가 안고은(표예진 분)에게 던진 물음이다.

 

드라마에서 인공관절 전문 병원을 운영하면서 대리수술을 자행한 안영숙 원장은 지방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다 대리수술로 의사 면허 6개월 정지를 당했지만, 정지가 풀리자마자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러자 장성철(김의성 분)은 "법원 판결이 더 큰 자신감을 심어준 꼴"이라고 비꼬았다.

 

▲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방영된 SBS드라마 모범택시2에서는 대리수술을 자행한 관절전문 병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드라마 속 병원장은 주인공에게 시원한 복수를 당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불기소 처분으로 재판을 앞두고도 정상적인 병원 영업과 마케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 모범택시2 드라마 갈무리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속에 묘사된 대리수술

 

대리수술 적발에도 해당 병원들은 '영업중'

대리(유령)수술 혐의에 검찰 기소

그럼에도 '대대적인 홍보 마케팅' 이어가는 병원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쯔양 대리수술 논란 등으로 의료계 대리수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쯔양과는 별개로 대리수술 혐의를 받고 있는 병원들이 사건 영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경찰 수사가 진행됐어도, 심지어 검찰에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됐어도 대리수술을 자행한 병원들은 되려 대대적인 마케팅까지 펼치면서 의료행위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부산 중구의 한 관절, 척추 병원에서는 '영업사원'과 '간호조무사'가 버젓이 수술을 집도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당시 공개된 수술실 영상에서 의사는 맞은편에서 지켜보고 있고 간호조무사가 환자의 수술 부위를 꿰매는 등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대리 수술 영상이 보도되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해당 병원은 여전히 정상 영업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영상을 보도한 KBS에 따르면, 병원 SNS에는 '인공 관절 수술', '어깨 수술' 방법을 다른 병원에 교육하는 지정 병원이라는 등의 홍보가 진행 중이었다.

 

검찰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까지 하면서 재판에 넘긴 서울의 사례는 더욱 심각하다. 서울의 인공관절 전문 병원은 환자들을 상대로 무면허 의료행위, 진료기록부 거짓 작성 등의 의료법 위반 협의로 병원장을 비롯해 소속 정형외과 의사 4명, 간호조무사 1명, 영업사원 4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그런데도 병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21년 대리 수술했다는 고발이 접수돼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지만, 대리 수술이 아닌 수술 보조 행위로 결론 났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수술 보조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소장과 상반된 태도를 밝히는 뻔뻔함까지 보여줬다.

 

공소장에는 "성명불상 의사의 집도 수술에서 의료인이 아닌 피고인 문00가 의료행위를 했다"고 명시됐지만, 병원장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은 문제없다'는 식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의료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마취가 필요한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에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의사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다.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목숨을 책임지겠다는 동의서를 통해 보장받는다. 때문에 의사는 의료법을 준수하고 동의서에 환자가 서명을 한대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환자의 동의를 받아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가 아닌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가 대신 수술 집도를 하고,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유령의사가 참여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몇몇 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한 힘든 상황에서 혼자 수술을 전부 맡을 수는 없으니 보조 행위라도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신만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의사는 대리수술 지시해도 고작 '자격정지 6개월'

 

"어차피 (면허 취소 안되니)벌금내고 개명해서 병원 다시 차리면 돼. 금방 잊어버릴거면서." 모범택시2 中 이렇듯 대리수술이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는 처벌 규정이 약해서다. 특히 대리수술을 지시했거나 방조한 경우에 대한 처벌은 더욱 미약하다.

 

현행 의료법은 무면허 의료행위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지만, 이런 행위를 직접 지시, 교사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1년 이하의 자격정지 처분이 고작이다. 이마저도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을 통해 대리수술은 자격정지 3개월, 유령수술은 자격정지 6개월 처분에 그치는 등 처벌기준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의료행위가 필요한 소비자들의 비전문적인 지식을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의사 수가 부족한 어려운 상황에서 보조 행위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자신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짧은 징역이나 벌금을 내더라도 '환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는 이유를 갖다 붙여 병원 운영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운영하는 명분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이런 문제는 국회에서도 논의된 적이 있다. 지난 2020년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로 총 747건에 달하는 대리수술을 교사한 의사에게 단 4개월 자격정지 행정처분에 그치는 등 대리수술 및 유령수술에 대한 행정처분 규정이 거의 무의미한 수준인 점을 확인했다.

 

특히 당시 '대리 수술을 지시한 의사 행정처분 현황' 자료에 의하면 보건복지부는 유령수술은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 전 환자에게 고지된 수술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경우, 대리수술은 수술실에서 의사가 해야하는 의료행위를 의사가 아닌 자가 하는 경우로 구분하고 있었는데, 2015년 이후 2019년까지 대리수술을 지시한 의사에게 총 28건의 행정처분이 내려졌으며, 그 중 면허취소는 단 5건에 불과했다.

 

대리수술 행정처분 사례별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18년 의료인 자격이 없는 의료기기 판매업체 빅원에게 수술실에서 총 100회에 걸쳐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의사와 의료기기 판매업체 대표을 총 74회에 걸쳐 수술 등에 참여시켜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의사에게 각각 자격정지 3개월에 그쳤으며, 간호조무사에게 총 747회에 걸쳐 수술을 시키고 택시기사에게 환자 소개비를 지급하는 등 심각한 의료법 위반을 일삼은 의사에게 자격정지 단 4개월 행정처분에 그쳤다.

 

당시 권칠승 의원은 유령수술 및 대리수술 등 불법 의료행위를 지시하거나 방조한 의료인에 대해서도 무면허 의료행위에 준하는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안인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냈으나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 SBS드라마 모범택시2 극 중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모범택시2 갈무리, 최근 검찰 기소된 관절전문 병원장의 대리수술, 유령수술 관련 혐의로 기소된 내용

 

환자 수술동의서 꼼수,

병원장은 수술방 옮겨다니면서 병원장 집도의 타이틀

 

수술 참여한 의사, 간호사 등은

대리수술 참여 및 방조, 명백한 의료법 위반 '처벌대상'

 

대리수술을 정상적인 수술로 둔갑시키는 수술동의서 꼼수도 있다. 모든 수술에 앞서 집도의는 환자의 수술동의서를 받게 되는데, 병원장이 복수의 수술의 주집도의로 등재하고 정작 수술은 다른 의사들에게 맡기는 형태다. 

 

이렇게 되면 동시에 여러 수술방을 옮겨다니며 같은 시간에 병원장이 수 건의 수술이 가능해진다. 대다수 의사나 간호사들도 이런 방법이 불법이라는 일을 모른채 주된 의사가 수술실에 참여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팀 단위 수술이라면 가능한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지만,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법 제24조에 따르면 의사는 수술시 환자에게 수술등의 필요성과 방법 및 내용을 의무적으로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도록 하고 있고, 특히 수술에 참여한 주된 의사가 변경될 경우에는 변경 사유와 내용을 환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유명 병원의 경우 병원장의 유명세는 곧 마케팅과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환자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수의 의료계 관계자와 법조계 관계자들은 “팀 수술을 내세워 수술에 참여한 의사나 간호사들이 불법이 아니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면서 “주된 집도의가 수술의 주요 부분을 마무리 짓지 않았다면 집도의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즉, 팀 수술에 참여한 의사들도 주된 의사가 변경된 사실을 숨기고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면 함께 수술에 참여한 의사와 간호사 모두 대리수술을 방조한 것으로 처벌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맞다.

 

이는 의료계에서 내놓은 해석해서도 명확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해 이런 형태의 대리수술과 관련해 "한 집도의가 세 개 이상의 방을 오가거나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을 방조하는 행위는 건강보험 저수가, 매출 증대 등을 이유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전협은 "썩어빠진 악습과 병폐를 방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체계화한 사람들이 버젓이 직함을 내걸고 어두운 면을 숨긴 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끄러운 의료계의 현실"이라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이상 학술의 장에서 활동하는 것을 의학계 또한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도 이같은 수술방 옮겨다니기를 명백하게 대리수술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년 7개월 병원장이 수술 1만 건 넘게 집도

'상식 밖의 수술 실적' 내세운 관절전문 병원

대전협 "썩어빠진 악습과 병폐..부끄러운 의료계 현실"

 

최근 검찰에 기소되어 8월 재판을 앞두고 있는 서울의 한 관절전문 병원은 대표원장(병원장)이 2017년 1월 1일부터 2021년 8월 2일까지 약 4년 7개월 동안 1만 1,055건에 달하는 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중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대략 250일 정도가 되는데 어림잡아 계산해보면 병원장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하루에 약 11건 가량의 수술을 진행해야 이런 수치가 나온다. 여기에 TV 출연 등에 시간을 할애하고 외래진료 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병원장이 모든 수술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실제로 기소된 의료법위반 혐의 중에는 진료기록부 수술기록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도 포함되어 있는데, 다른 이들이 수술을 하도록 하고 마치 자신이 수술을 직접 집도한 것으럼 꾸민 혐의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 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대한민국 인공관절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며 마케팅을 이어가며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최소한의 상식은 환자의 신뢰를 버린 의사는 환자를 침대에 눕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져버린 의사들은 더 이상 전문직 간판을 내 세울 명분이 없다. 최소한 재판을 받는 와중이라도 영업은 고사하고 마케팅이라도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cj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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