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⑱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한국의 전기통신 통화요금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5/20 [17:32]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⑱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한국의 전기통신 통화요금

이세훈 | 입력 : 2020/05/20 [17:32]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한국의 전기통신 통화요금…5분당 2만원하는 비싼 공중전화

 

공중전화는 전화업무를 시작했던 1902년부터 경성, 인천, 개성에 이어 1903년에 본격적으로 사업화되어 평양, 수원, 마포, 남문, 시흥, 서문 등 모두 9곳에 공중전화소가 설치된다.

 

일반국민들이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는 하나 오늘날의 공중전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통화료는 매 5분 당 50전(지금의 2만원 정도)으로 비쌌다. 더군다나 전화요금은 미리 내고 사용하는 선납제로 환불은 되지 않았다. 

 

오늘날과 비슷한 의미의 공중전화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08년 서울에서 공전식 전화교환기가 개통되면서 자동전화라는 명칭으로 시행된 전화국 ‘창구통화제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편국이나 전화국의 창구에서 고객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공중전용전화이다. 창구통화제도가 처음 시행될 당시 통화료는 3분 단위 10 전이었다.

 

무인 부스에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공중전화가 등장한 것은 1910년경 이다.동전을 투입하는 형태의 공중전화가 공원 등과 같은 중요장소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신문기사로 보아 적어도 1910년대 현행의 공중전화와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또한 경성에 설치한 공중전화가 우마차 등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언급을 통해 보더라도 도로에 오늘날의 무인전화부스와 같은 공간을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 공중전화소에서 전화를 사용할 때 이용자는 먼저 수화기를 들어 전화교환수를 부른 다음 5전짜리 동화나 10전짜리 은화를 동전투입구에 넣으면 이를 인지한 교환수가 전화를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공중전화 이용이 이루어진다. 1925년 경성의 홍수로 용산 지역의 가입전화가 마비되자 대부분 일본인이 살던 용산 가입자의 편의를 위해 임시로 10여 개의 이동공중전화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 (좌) 10전 또는 5전을 투입하는 일제강점기 공중전화(자동전화) (우) 체신부에서 설치한 옥외 공중전화 부스 (kt 사료집 자료)

 

일제강점기 공중전화의 보급은 매우 미흡했다. 더구나 새로 설치되는 공중전화소의 경우에도 빈번히 발생하는 수화기의 도난이나 전화요금의 도난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대부분 파출소 부근에 설치했다. 그러나 일제가 독립운동 세력의 공중전화 이용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공중전화의 설치를 일부러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한편, 공중전화 요금을 10전에서 5전으로 인하를 단행한다. 새롭게 많은 공중전화가 1937년 이후에 설치됐는데, 전화요금 도수제가 실시됨에 따른 차원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920년 54개소, 1937년 119개소, 1941년 147개소의 공중전화소가 시설되었다.

 

1935년 자동교환의 개시 이전에는 소위 남방걸이라 불리는 전화교환수를 통해 전화를 호출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는 당시 조선인으로선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전화를 해야 할 때면 전화번호를 일본어로 외워서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고충도 많았다.

 

지금과 같은 다이얼방식 자동공중전화기는 1954년 8월 16일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됐다. 옥외 무인공중전화(1962) , 간이형 공중전화(1966) , 벽걸이형 체신1호 자동식 공중전화 (1969) 등이 등장하였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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