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바이오社-4] 작은 코오롱, 약물혼용 사태 ‘헬릭스미스’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9/09/27 [08:52]

[추락하는 바이오社-4] 작은 코오롱, 약물혼용 사태 ‘헬릭스미스’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9/09/27 [08:52]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엔젠시스’ 3상 불발 사태는 코오롱티슈진 인보사 사태와 닮은꼴이었다. 

 

관리의 소홀함으로 임상과정에서 신약과 위약이 섞여서 투약되는 바람에 임상3상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사측에서는 ‘임상이 끝날 때까지 몰랐다’, ‘약물의 라벨이 잘못됐다’는 궤변만을 쏟아냈다. 2액의 세포주가 바뀐지 몰랐고 라벨을 잘못 붙인 것이라 해명했던 코오롱생명과학과 완전히 닮은 모양새다. 문제가 된 신약이 유전자치료제라는 점마저도 비슷했다. 

 

인보사케이주와 엔젠시스까지, 유전자치료제 2개가 ‘관리소홀’이라는 황당한 실수로 인해 추락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유전자치료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은 두 업체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업계 전체가 떠안는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추락하는 바이오社4-헬릭스미스]

 

#성장

 

헬릭스미스라는 업체는 원래 ‘바이로메드’라는 이름의 회사였지만, 글로벌 진출을 앞두고 일부 상표권 문제 등을 해결함과 동시에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올해 3월 사명을 ‘헬릭스미스’로 변경했다. 

 

1996년 서울대학교 교내 벤처 ‘바이로메디카퍼시픽’으로 설립된 헬릭스미스는 1999년 ‘바이로메드’라는 이름으로 변경한 이후 20여년간 사명을 유지해왔다. 

 

바이로메드는 2003년 허혈성 유전자 치료제 ‘VMDA-3601’에 대한 임상1상을 마치고 2004년 국내 임상2상 허가를 받은 뒤, 허혈성 관상동맥질환 치료제 ‘VM202RY’를 이연제약에 기술 이전했다. 여기어 더해 유한양행과의 공동연구협약까지 체결하면서 몸집을 키워 2005년 12월 코스닥상장을 이뤄냈다.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바이로메드는 이후 만성육아종 질환 치료제 ‘VM106’를 유한양행에, 항암 유전자 백신 ‘VM206RY’을 이연제약에 기술이전했다. 

 

허혈성 관상동맥질환 치료제 ‘VM202RY’의 국내 임상1상 승인과 허혈성 지체질환질환 치료제 ‘VM202-PAD’의 미국‧중국 임상1상 승인 및 국내‧중국 임상2상 승인, 허혈성 심장질환 치료제 ‘VM202-CAD’의 임상1상‧2상 등의 실적 역시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집중되며 성장을 이끌었다. 

 

# 정점기

 

2005년 12월 상장 첫날 시초 3만원에 거래를 시작한 바이로메드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고, 2018년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엔젠시스’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정점을 찍었다.

 

2018년 한때 바이로메드의 주가는 23만2300원까지 오르면서 시총 4조원선을 넘겼고, 코스닥 시총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DPN)’의 경우, 2009년 미국FDA 임상1상과 2상 승인을 받은데 이어 2014년에 미국과 국내에서 임상2상을 완료했다. 이후 2015년 4월 미국 FDA 임상3상을 승인받고 2017년에는 미국 임상3상(2nd) 승인을 받았다. 

 

바이로메드는 단순히 엔젠시스 뿐만 아니라 2016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치료제 ‘VM202-ALS’의 미국 FDA 임상2상 승인, 2017년 허혈성 지체질환 치료제 ‘VM202-PAD’의 중국 임상3상 승인 등의 이슈를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바이로메드가 신약 후보물질 하나만 갖고 있는 일회성 기업이 아니라 파이프라인이 탄탄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쉽게 자리 잡혔고, 이는 고스란히 주가를 올리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러 치료제들이 임상 단계를 수월하게 넘기면서, 바이로메드는 글로벌진출을 꾀하기 위해 2019년 3월 사명을 ‘헬릭스미스’로 변경하면서 회사 아이덴티티 구축에 힘을 쏟았다. 

 

# 문제의 시작

 

순탄한 행보를 이어온 헬릭스미스지만, 잘 키운 ‘엔젠시스(VM202-DPN)’가 때아닌 악재를 만났다. 임상3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임상시험을 진행한 25개 기관 중 3곳 이상에서 신약과 비교대상인 위약군의 약물혼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미 해당 발표가 나오기 전인 7월부터 ‘임상3상에서 사용된 약물의 라벨이 잘못돼 3상 데이터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라는 루머는 끊이질 않았다. 

 

이에 대해 사측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닌 루머”라며 “루머를 만들어낸 사람은 당사를 너무 싫어해서 잠깐이라도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 즐기는 병적 사디스트거나 이를 통해 이익을 편취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기꾼”이라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어쩌면 이때라도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결과가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측의 비난 섞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 23일 헬릭스미스는 위약군 환자의 혈액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고 엔젠시스군에서는 약물 농도가 지나치게 낮은 것을 발견했다며 “피험약 혼용 가능성으로 플라시보와 엔젠시스의 효과가 크게 왜곡돼 명확한 결론 도출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저희도 이런 혼용이라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이번 일은 사고이며, 법적조치에 나서겠다고 강수를 뒀다. 그러면서 혼용으로 인해 효능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안전성은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미 주식시장 내에서는 헬릭스미스의 해명을 믿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도 신약과 위약이 섞일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관리만 제대로 했다면 임상3상에서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헬릭스미스가 관리 소홀의 책임을 다른 곳에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헬릭스미스에 대한 실망은 고스란히 주가하락으로 이어져 사흘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연속해서 하한가를 갈아치웠다. 한때 24만9000원에 달했던 주가는 26일 현재 7만9000원까지 떨어졌다. 

 

# 현 상황

 

어떤 해명이 나오더라도 현재 헬릭스미스의 엔젠시스 임상3상 데이터는 사실상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11월에 제출 예정이던 최종보고서가 무산된 상황에서 헬릭스미스는 FDA에 이러한 사실을 상세히 보고하고 향후 임상3상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2020년으로 예상됐던 허가신청 역시 물거품이 됐다. 

 

헬릭스미스에서는 조사단을 꾸려 책임자를 찾아내 법적소송을 하겠다고 예고했지만, 관리소홀 문제를 회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고려한 듯 헬릭스미스는 기존 대비 절반 정도인 150~200명 규모의 임상을 2~3개 진행하고 직원을 수시로 보내 철저하게 관리한 이후 임상 데이터를 보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상 실패가 아닌 연기라고 주장하는 헬릭스미스의 반응과 달리 이미 주주들은 바이오주에 대해 크게 실망한 상황이다. 오히려 헬릭스미스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내비치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만 이득을 봤을 뿐, 사측의 해명을 믿었던 국내 개미투자자들은 일제히 손해를 입고 말았다. 

 


 

 (사진=image stock / 자료사진)   

 

임상과정에서 신약과 위약이 혼용됐다거나 성분이 뒤바뀌었다는 것은 업체의 기본적인 관리 문제와 직결된다. 아무리 많은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하더라도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은 회사의 신뢰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바이오업계 대장주로 꼽혔던 업체들이 줄줄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대한민국 바이오 자체가 '환상'이라는 이미지를 투자자들에게 심어줬다는 점이다.

 

제약·바이오의 특성상 먼 미래를 바라보며 국가 차원에서의 끊임없는 투자와 연구개발을 지속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마치 바이오주가 단기투자를 통한 차익실현의 장으로 인식되면서 불신이 업계를 좀먹고 있다. 

 

코오롱의 인보사, 신라젠의 펙사벡, 에이치엘비의 리보세라닙, 헬릭스미스의 엔젠시스 등은 신약에 대한 도를 넘은 투기성 기대심리와 중소바이오 업체들의 관리 소홀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당연히 해야할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채 의미없는 정보만 흘리는 업체들의 한탕주의에 투자자들은 신중한 고려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고, 주식시장은 혼란만 겪었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신약 하나가 탄생하려면 후보물질을 발굴해 전임상을 거쳐 임상 1·2·3상을 마친 뒤 판매되기까지 적어도 15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최소 40억달러(4조7천억원)에 달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만 하더라도 개별품목당 R&D 비용이 110억 달러(13조2000억원)에 달했다.

 

대한민국 바이오주의 몰락은 우리 앞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제약·바이오업계에 대한 한탕주의를 없애고 기본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업계 스스로의 자정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투자자들의 인식개선 역시 동반돼야 한다. 바이오 기업들의 성급했던 발표 뒤에는 당장의 성과를 요구했던 주주들의 조급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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