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분석] ‘피해자 중심주의’ 돋보인 안희정 판결

안희정 전 충남지사,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 실형 확정돼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9/09/09 [15:58]

[MJ분석] ‘피해자 중심주의’ 돋보인 안희정 판결

안희정 전 충남지사,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 실형 확정돼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9/09/09 [15:58]

1심, 진술 신빙성 가볍게 배척…‘피해자 다움’ 강요 논란

위력존재는 인정하고 행사여부는 인정 안해 모순드러나

2심, 피해자 진술 중심주의로 접근해 신빙성 여부 집중판단 

위력의 존재만으로 위력행사 있었다고 판단…1심 모순 보완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3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확정 받았다.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이후 대법원이 형을 최종 확정한 것인데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대한 판단에 있어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1심의 판단은 사실상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내린 판결, 2심의 판단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검증을 중심으로 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간음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이라는 실형을 확정받았다.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대법원2부는 9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심에서는 김모씨의 피해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피해 진술에 일관성이 있어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이 2심에서 선고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하면서 안 전 지사는 실형을 살게 됐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2월 사이에 수행비서였던 피해자 김모씨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차례, 강제추행 5차례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이는 ‘위력에 대한 행사여부’와 ‘진술의 신빙성’ 부분에서 시각차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먼저 1심 재판부는 피해자 김씨가 고학력에 성년을 훨씬 지나고 사회경험도 상당한 사람이라 보고, 안 전 지사가 김씨를 길들이거나 압박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나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심은 김씨가 진술의 일관성이나 신빙성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위력에 대한 행사여부에 주목했고 “피해자의 증언·진술을 믿기 어렵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뒤, 10개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안 전 지사 측이 주장했던 ‘피해자다운 모습’이었다. 가해자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거나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에 대해 성폭행 피해자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 1심에서 받아들여졌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판례 등에 입각한 1심의 판단에 여론은 재판부가 반드시 성폭행 피해자는 겁에 질려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획일적’으로 명시했다며 들끓었다. 

 

또다른 문제는 1심 재판부가 위력에 대한 ‘행사’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위력 자체에 대해서는 존재를 인정한 부분이었다. 위력을 갖고 있었음은 인정하지만 이것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진 않았다는 것이 1심의 판단이었는데, 이에 대한 2심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상황적 판단에 집중했던 1심과는 달리 2심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에 주목했고, 위력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사가 가능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았다.

 

2심 재판부는 “사건상황과 행위내용,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상호행동, 당시 피해자가 느낀 감정에 대해 말한 부분이 구체적”이라며 피해자 김씨의 진술 내용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세부적인 부분까지 세세하게 묘사돼있어 진술에 있어서의 비합리나 모순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는 ‘통상적인 상황’을 근거로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 없다고 판단한 1심과는 명백히 다른 피해자 진술 중심의 접근 방식이었다.  

 

위력에 대한 판단 역시 엇갈렸다. 2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무형적 위력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이미 위력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인정한 상황에서 위력의 존재만으로도 무형의 위력행사가 있었다는 것이 2심의 판단이었다. 

 

이는 “피해자는 신분상 특징과 비서라는 관계로 인해 지시에 순종해야 했고, 안 전 지사는 이런 사정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부분에서도 읽어낼 수 있었다. 

 

대법원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1심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에 대한 질책이 나온다. 재판부는 “개별적‧구체적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한 부분 역시도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성폭행 피해자의 피해 이후 대처양상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명시했다. 

 

위력행사 부분도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 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해 물리적 형태의 제압을 넘어 무형의 제압 역시도 위력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판결의 기준이 되는 만큼 이번 판결이 앞으로 있을 성범죄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위력에 대한 행사 여부나 성인지 감수성 등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피해자 김씨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재판부에 감사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재판부 판단 존중환영 일색

권력형 성범죄 근절의 계기, 위력에 의한 강간은 성폭력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직후, 피해자인 김씨는 입장문을 통해 “세상에 안희정의 범죄사실을 알리고 554일이 지난 오늘, 법의 최종 판결을 받았다”며 “수많은 증거와 사실관계를 꼼꼼히 파악해주신 재판부의 공명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통해 진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다. 제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주시라. 간절히 부탁드린다”며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다. 그분들의 용기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판결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우리 사회가 차제에 여성의 인권과 성 관련 범죄에 대한 인식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구두논평을 통해 입장을 전했다.

 

자유한국당 역시도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회적 지위가 업무상 위력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피해자의 용기로 권력을 폭력의 근거로 삼은 성범죄를 심판할 수 있었다. 이번 판결을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권력형 성범죄 근절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바른미래당에서는 “대법원의 엄중한 판결을 존중하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확립이라고 평가한다”며 “살아있는 권력이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진실과 정의마저 왜곡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법원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오늘 판결로써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더 이상 피해자다움은 가해자의 무기가 될 수 없다”며 “우리사회는 비동의에 의한, 위력에 의한 강간이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해왔다. 이는 상급자이자 권력자가 위력을 행사해 자신의 어긋난 욕구를 충족시키는 직장 내 성폭력의 한 형태다. 앞으로 모든 성폭력 판결에서 이같은 원칙이 확고히 반영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민주평화당에서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환영한다. 이번 판결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며 위대한 싸움을 진행한 미투 운동의 승리다. 이번 판결로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던 성폭행과 성추행의 그릇된 문화가 일소되길 바란다”며 “지난해 폭로 이후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김지은 씨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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