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업계의 악습 ‘태움’…살인적 근무환경이 만들어낸 괴물

밥도 못먹고, 기저귀 차고 일하기도…무급 초과근무도 비일비재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8/02/19 [14:13]

간호업계의 악습 ‘태움’…살인적 근무환경이 만들어낸 괴물

밥도 못먹고, 기저귀 차고 일하기도…무급 초과근무도 비일비재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8/02/19 [14:13]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만 16명 이상, 중환자만 3~4명

밥도 못먹고, 기저귀 차고 일하기도…무급 초과근무도 비일비재

 

설 연휴기간 서울의 한 A대형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자택에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진상조사 촉구 및 ‘태움문화’ 근절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간호사들의 살인적인 근무량에 있는 만큼 의료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격적인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화단에서 27살 박모씨가 숨진채 발견됐다. 이후 박씨의 남자친구가 SNS에 글을 올리고 이른바 ‘태움’이라고 불리는 신입 간호사 교육이 박씨의 자살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며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히는 일종의 ‘직장 내 괴롭힘’이다. 태움은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긴 하지만, 여전히 병원 일선에서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명목 하에 비일비재하게 행해지고 있다. 

 

쓸데없는 군기잡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데는 일반 국민들이나 간호사들도 동일한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 일선의 간호사들은 태움을 만드는 비현실적인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나도 태움을 당할 때는 내가 선임이 되면 안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근무를 하다보면 작은 실수가 엄청나게 많은 일을 만들다보니 혼을 내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게 만드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이 사람을 악마로 만든다”고 하소연한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다른 간호사 C씨는 “가장 가슴 아플 때가 아프니까 빨리 와달라고 하는 환자에게 ‘죄송하지만 다른 급한 환자분이 있다’고 말할 때다. 국민청원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갔던데, 생명을 구하는 간호사들로서는 모든 환자를 살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안 될 때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현재 간호사들의 근무환경은 한마디로 살인적이다. 3교대로 운영되고는 있지만 잠시 의자에 앉을 시간,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식사를 못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심할 경우 기저귀를 차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선임들의 태움이 더해지면 신입 간호사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환경에 놓이게 된다. 

 

태움문화는 없어져야하는 악습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태움문화를 만들어낸 살인적인 의료시스템도 개선돼야만 한다.  

 

현재 미국은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가 4~5명 가량이다. 바로 옆 나라 일본도 7~8명 정도를 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이 16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해야 한다. 큰 병원일수록 환자가 많아져 간호사 1명이 20명의 환자를 담당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중환자의 경우 간호사 1명 이상이 붙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 1명이 3~4명의 중환자를 담당해야해 환자들이 감당해야하는 위험성도 큰 상황이다. 무급 초과근무도 비일비재하다. 

 

▲ 간호협회 감사 및 태움문화 근절을 촉구하는 청원들. (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쳐)    

 

"아가씨라 부르면 자괴감 들어"…일부 환자들의 인식수준 '심각'

간호사, 전문의료인임에도 인정 못 받아

심각한 상황에도 '대한간호사협회'는 침묵…누굴 위한 협회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간호사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 수준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간호사에게 ‘아가씨’, ‘야’라고 부르는 경우가 아직까지도 많고, 간호조무사와 간호사의 차이를 모르는 이들도 대다수다.  

 

간호사는 정규대학에서 4년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간호조무사는 사설학원이나 특성화고 등에서 1년간의 교육만 받으면 된다. 법적지위 역시도 간호사는 의료인으로 분류되지만,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닌 의료보건인으로 분류돼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경력을 쌓은 간호사의 경우, 의사에 준할 정도의 대우를 해줌과 동시에 의사에 버금갈 정도의 전문의료인으로 인식한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무리 실력있는 간호사라 할지라도 일반 간호조무사와 동일하게 의사를 도와주는 사람, 의료서비스직 종사자 정도로만 취급한다. 

 

갖가지 요인 때문에 숙련된 간호사들은 양성되지 않고, 우수한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는 비단 태움만의 문제도 아닌 전체적인 시스템의 문제다. 간호사들의 처우와 관련된 이슈는 잊혀질만 하면 불거지지만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간호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힘써야 하는 대한간호협회에 대한 책임 추궁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의 권리 및 복지증진에 나서는 단체인 만큼 간호사의 처우와 관련된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럼에도 대한간호협회는 현재까지 어떠한 성명서나 입장문 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앞서 간호사들의 장기자랑이 논란이 됐을때도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서야 뒤늦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각종 서명운동과 기자회견 등으로 여론의 동의를 구하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는 대조되는 모양새다. 

 

현재 청와대 청원에는 대한간호사협회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해당글에서 게시자는 "대한간호협회는 그동안 간선제로서 회장선거를 치루면서 간호사의 권리 및 복지증진에 앞서지 않고 관련된 임원들의 수익증진에 앞장서왔다"고 비난했다.

 

또다른 글에서는 "협회비만 받아가고 대체 하는게 뭐있나 각성 좀 하시라. 간호사 복지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대체 한게 뭐있나. 간호사 면허유지를 위해선 다들 어쩔수 없이 내는 협회비 어떻게 쓰여지는지 투명하게 공개해달라"는 요청 등이 쏟아지고 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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