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십자家 전쟁' 국민 위에 적십자 그 위에 녹십자

최재원 기자 | 기사입력 2017/10/20 [17:08]

[기자수첩] '십자家 전쟁' 국민 위에 적십자 그 위에 녹십자

최재원 기자 | 입력 : 2017/10/20 [17:08]

적십자와 녹십자의 ‘혈전(血戰)’이 시작됐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혈액제제의 원료인 혈장가격을 놓고 치열한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돈’이다. 적십자는 녹십자가 생산하는 약품의 원료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 원료의 가격 인상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료라는 것이 재미있다. 다름 아닌 우리가 평소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헌혈을 통해 제공한 ‘피(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헌혈을 하는 국민 대다수는 자신의 피가 돈벌이를 위한 싸움의 대상이 됐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적십자 vs 녹십자 '혈전' 혹은 '혈맹'

최소한의 경제논리도 적용 못시키는 혈액 값

 

피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구성체다. 그런 피를 국내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곳이 적십자다. 적십자의 명예회장자리를 현직 대통령이 맡고 있는 것도 이런 중요성 때문이다.

 

적십자가 하는 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다양하다. 이 중 하나가 사람의 혈액을 원료로 하는 혈액제제를 만드는 기업들에게 원료를 제공하는 일이다. 적십자는 헌혈로 모아진 피의 상당량을 기업에게 판매하고 그 이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단체다.

 

때문에 기업에 제공하는 피를 마냥 헐값에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민의 피가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게 해서도 안된다. 

 

적십자가 매년 기업에 판매하는 피 값을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이런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적십자는 피 값 인상에 대해 “제대로 된 피 값을 받아야 한다”고 기업들과 협상을 시도하지만 녹록치 않아 보인다.

 

적십자는 왜 혈액값이 낮다고 주장하면서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기업에게 쩔쩔맬까? 

 

경제학적으로 물품에 대한 최종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산정되기 마련이다. 수요는 높아지는데 공급이 녹록치 않다면 수요경쟁으로 가격이 올라가는게 당연하다. 

 

국내에서 혈액제제를 생산하는 기업은 녹십자와 SK플라즈마 두 곳이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혈액제제 생산량은 적십자로부터 구입해오는 혈액의 양을 상회한다. 다시 말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적십자는 매번 기업들에게 혈액가격 인상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매번 고배의 잔을 마시고 있다. 

 

이는 혈액가격이 수요자들의 경쟁으로 발생한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많은데도 공급자가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시장독점자의 입김이 강하다고 추정할 뿐이다.

 

이는 시장 독과점 체제에서 수요자가 일종의 단합을 통해 공급가격을 통제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럼에도 녹십자

 

그럼에도 왜 녹십자일까? 현재 국내 혈액제제 시장독과점자가 녹십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SK플라즈마도 혈액제제를 생산하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약 ‘8대2’ 혹은 ‘7대3’의 비율 정도로 녹십자가 우세하다고 추정된다. 물론 추정치일 뿐이다.

 

본지는 최근 혈액제제 취재를 위해 취재내용을 공개하고 적십자에 기업별 판매비율 자료공개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적십자가 이를 꺼려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비율 산정이 안되고 있다.

 

혈액을 원료로 하는 혈액제제는 보건당국이 지정한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원가 보존은 물론 적지 않은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장사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가 무려 20% 이상의 약가 인상을 허가했다.

 

국내 제약업체 기술력이면 원료수급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개발할 수 있는 품목이 혈액제제다. 

 

쟁점은 원료수급인데, 혈액제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설립해야 하고, 약품 개발에 걸맞는 연구개발비용도 투자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급처와 독과점에 의해 원료수급이 사실상 통제상태에 있다면 어떤 제약사도 혈액제제 사업에 뛰어들 수 없는 구조가 성립된다.

 

작금의 적십자와 녹십자, 그리고 SK플라즈마가 혈액납품 가격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적십자가 이들 기업의 독과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불공정거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몰론 다른 제약업체의 시장 진입도 어려워진다.

 

말머리에 언급한 적십자와 녹십자의 공방은 말 그대로 그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혈전일수도 혈맹을 위한 협상일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놓고 벌이는 쟁점의 중심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혈액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본지는 적십자와 녹십자의 유착 정황을 파헤친 ‘[단독]적십자와 녹십자의 끈적한 '혈(血)맹'’이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이후에도 관련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혈액이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 이 취재를 이어가려 한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cj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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