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바꾼 ‘추석풍속도’에 서민들 “편해졌다”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7/09/29 [17:13]

김영란법이 바꾼 ‘추석풍속도’에 서민들 “편해졌다”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7/09/29 [17:13]
▲ 명절 선물세트들의 모습 (사진제공=이마트 / 자료사진)   

 

김영란법 시행 1년째…안주고 안받는 문화에 심적부담 줄어

교직원들 사이에선 ‘반반’…“관계가 삭막해진 것도 사실”

전문가들 “개정은 있을 수 있지만 김영란법은 계속돼야”

 

김영란법이 통과된지 1년이 지난 추석, 원래대로라면 연중대목에 해당하지만 ‘3-5-10’이라는 김영란법의 상한선이 명절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서민들은 김영란법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화훼농가, 한우농가에서는 시름이 나왔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서민들은 대체로 “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0일간의 긴 명절을 맞아, 일반 시민들은 김영란법에 대해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명절이나 무슨 ‘데이’만 되면 회사에 어느 정도 금액의 선물을 돌리는 게 좋은지 고민이 많았어요. 다른 사람이 저보다 높은 금액의 선물을 돌렸을 때는 괜히 업무할 때도 내가 비싼 선물을 안 돌려서 그런가 하는 자격지심도 들었는데, 5만원이라는 상한선이 정해지니까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37살 회사원 정○○씨

 

“직무관련성은 없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작은 선물이라도 받지 않으려는 문화가 정착된 점에서 좋다고 봐요. 교수님이 계신 연구실에 찾아갈 때도 심적 부담이 덜해진 것이 사실이죠” -28살 대학원생 권○○씨

   

“친척들끼리 선물 주고받는 것은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비싼 선물을 못 해도 예전보다 덜 미안한게 있죠. 오히려 요즘엔 비싼 선물을 주면 ‘김영란법에 걸리는 것 아냐’라는 농담이 오가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좋아졌다고 보는데요” -55살 주부 조○○씨 

 

“3만원이라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서 금액적인 부담은 없지만 오히려 다른 걱정이 생겼어요. 3만원 선에서 어떤 선물을 줘야 있어 보일까 하는 그런 고민, 아예 선물을 안 하자니 그건 좀 그렇고 주자고 하니 그 정도 가격에서 어떤 선물이 구색이나 성의 면에서 괜찮을지. 오히려 고민이 깊어졌어요” -29살 회사원 김○○씨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은 지난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됐다. 현재 시행된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실제로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청렴해졌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회에서 당연한 것처럼 오갔던 작은 선물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청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센스있게' 선물을 돌리는 사원이 인정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안주고 안받는 문화가 정착돼 오히려 사회가 공정해졌다는 평도 주를 이룬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3-5-10 조항’은 식대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라는 제한을 골자로 한다. 특히 공무원과 교사, 군인, 법조계, 언론계 종사자의 경우 돈이 아닌 물품이 오가더라도 부정청탁으로 보았기 때문에 해당 직군에 종사하는 이들은 상당부분 압박을 느꼈다. 

 

“일정한 범위 안의 사교·의례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선물 등이나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은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명시가 있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오가는 작은 선물에까지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김영란법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작은 선물도 웬만하면 받지 말자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9일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1년에 따른 교원설문조사 결과’   (사진=포토애플 / 표=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직원들, 김영란법 시행 1년 성과 '긍정적 52% 부정적 47%'

"교육 특성상 받지도 주지도 말자는 것은 불가능"

전문가들 "개정 목소리 나오지만, 김영란법은 유지해야"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청렴한 사회를 만들긴 하지만 “정(情)이 없어졌다”는 평도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9일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1년에 따른 교원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2%의 교사는 김영란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했지만, 부정적으로 인식한 교사들도 47%나 돼 찬반양측이 팽팽한 모습을 보였다. 

 

김영란법 시행에 긍정적 의사를 밝힌 데는 구체적으로 교직사회의 청렴의식이 상승했다(37%), 부정청탁과 금품수수가 근절돼 학교 신뢰도가 올라갔다(15%)는 평이 있었다. 반면 부정적 의사를 밝힌 이유에는 교원·학생·학부모 간 관계가 삭막해졌다(33%)는 평과 교내외 각종 행사 운영시 불편함이 생겼다(12%)는 답변이 있었다. 

 

현직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갖가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28살 정모 교사는 “선생님도 사람이다 보니까 선물을 준 학생과 주지 않은 학생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학부모들도 웬만해선 선물을 주지 않는 문화가 생기니까 오히려 전보다 학생들을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36살 강모 교사는 “정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옛날에는 체육대회 같은 행사 때 넉넉한 가정의 학부모들이 반에 햄버거나 피자를 쏘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 학교에서 그 비용을 대는 것도 부담스럽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행사를 최소화하게 된다”고 답했다. 

 

31살 장모 교사는 “김영란법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주는 것은 강하게 규제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는 큰 규제가 없다”며 “한번은 우스갯소리로 학생들이 ‘쌤, 간식사주세요’라고 한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김영란법 때문에 안돼’라고 답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학생들이 ‘선생님이 저희한테 사주는 건 안 걸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상당히 삭막하고 차가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정년을 앞둔 57세 박모 교사는 “정말 옛날에는 촌지를 받는 교사들이 있었지만 그때도 제대로 정신이 박힌 선생님들은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촌지가 어딨나”라고 반문하며 “오히려 김영란 법이 마치 교사들은 아직도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받기만 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 같아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도 법위반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과하다’는 지적이 쏟아진 바 있다. 나눔과 사랑을 기본으로 한 교육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받지도 주지도 말자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오히려 교육을 딱딱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김영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도 ‘법’이다 보니 과해선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법 없이 사는 사람도 있지만 법이 있어도 이를 어기는 사람들이 있다. 법은 최소한의 조치가 돼야지 일상생활에까지 어려움을 줄 정도가 돼선 안 된다”고 평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되지 않다는 괴담도 김영란법 개정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공무원에 국회의원도 포함돼 있다고들 말하지만, 공직자들이 공익적 목적 하에 민원처리 차원에서 선물이나 금품을 건네는 것은 허용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지적도 피할 수는 없다. 

 

김영란법 개정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김영란법의 시행이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져준 것 또한 사실이다. 받는 게 당연하다, ‘금액=정성’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경계하고 청렴함이 일반화되기 위해서라도 김영란법은 당분간 계속돼야 한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pyj@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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