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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화는 차지게 구토는 우아하게, 연극 ‘대학살의 신’
교양 가득한 거실에서 벌어지는 품위 있는 부부들의 인생 최악의 오후
 
이영경 기자 기사입력 :  2017/06/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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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하면 유치해지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싸움, 그중에서도 말싸움이다. 진지하고 치열할수록 기막힌 코미디가 된다. 그것을 알기에 고상하고 매너 있는 이 두 쌍의 중년 부부는 품위를 잃지 않고자 몸과 마음을 다잡고 대화를 시도한다. 친구를 때린 11살 페르디앙의 부모 알렝과 아네뜨가, 맞아서 이빨 두 개가 부러진 브뤼노의 부모 미셸과 베로니끄 집에 찾아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가 거실에서 마주보고 앉아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상의해가며 경위서를 작성한다. ‘무장’처럼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단어는 합의하에 삭제해가면서.

 

▲ 연극 ‘대학살의 신’이 지난 24일 개막, 오는 7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 이영경 기자

 

좋게 말하면 이성적인 변호사 알렝, 단정하고 우아한 가정주부 아네뜨, 평화주의자 도매상 미셸, 교양과 인류애가 넘치는 아마추어 작가 베로니끄다. 비싼 튤립이지만 가격보다는 가치를 중시하고, 무슨 일을 하느냐 묻는 질문에 ‘저는 재테크해요’라고 고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몇 십 분이 지나면 세계의 안녕을 바라지만 지나친 자의식으로 관계의 안녕을 불편하게 만드는 베로니끄, 소심한데 다혈질에다가 햄스터를 버리고 싶지만 만지지도 못하는 미셸, 결국 길거리에 버려졌다는 햄스터가 신경 쓰일 만큼 섬세하나 열받으면 상대에게 ‘미친년’이라 소리 지르는 아네뜨, 가해자가 된 아들의 사건은 폄하하면서 가해자 제약사를 위해 핸드폰을 놓지 않는 알렝이다. 알렝에 대해 살짝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익하지만 가장 재앙적인 발명품이 휴대폰이라는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몸소’ 느끼게 해준다.

 

품위를 지키며 시작된 대화는 교양의 대학살로 막을 내린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찌질함이 어떻게 폭로되는지를 코믹하지만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애초에 없었으면 좋았을 이 잘못된 만남은 시작부터 아슬아슬한 단어와 단어 사이, 편하지 못한 문장과 문장 사이, 어색한 침묵 사이에서 유머와 불안의 징조가 차곡차곡 얹혀간다. 이 중압감에 아네뜨가 속에 있는 것을 한바탕 게워낸 후, 이제는 다들 전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평화와 문화와 교양으로 가득했던 베로니끄의 거실은 엉망진창이 되고, 덩달아 특별한 레시피로 완성된 베로니끄의 대접용 파이도 그저 토사물로 전락한다. 슬슬 민낯이 드러나는 판, 처음에는 부부끼리 편을 먹던 것이 여자-남자끼리, 그러다 각개전투로 변해 모두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야만적 대학살은 이렇게 ‘문명버전’으로 우리 일상에서도 수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도 대학살의 구성원이다. 보면서 웃지만 이러한 전투가 우리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식의 이빨 두개가 부러지면 눈이 뒤집히기 마련이고, 반대로 내 자식이 가해자라면 그럴 만 한 상황이 있었을 거라 믿기 마련이다. 꼴이 좀 웃긴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부터 삿대질하기 전에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면 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약 90분가량 진행되는 연극을 살리는 건 절대적으로 배우의 몫이다. 무려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품위’을 더해가는 배우 남경주와 최정원, 시간이 지나도 매력과 귀여움을 잃지 않는 배우 송일국과 이지하가 한 팀(?)이 되어 저마다의 존재감을 발산한다. 원작 야스미나 레자/번역 임수현/드라마트루그 오세혁/연출 김태훈/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 출연/2017.6.24.~7.23일까지/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 +1_ 남경주·최정원·이지하·송일국,

그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 되는 배우들의 만남

 

▲ 미셸 역의 송일국과 베로니끄 역의 이지하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알렝 역의 남경주와 아네뜨 역의 최정원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남경주] 최정원씨와는 28~29년 정도 함께했고 콤비라고 불린다. 그럼에도 연극에서 만난 건 처음이다. 기분이 색다르고, 역시 든든하다.
연극 무대가 그리웠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 등 표현방법이 다양하다. 그만큼 연극에 비해 내용 면에서 단순한 게 사실이다. 연극은 상대적으로 복잡해서 지적 탐구가 많이 필요하다. 관객을 웃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연기하기 보다는 진짜 그 인물이 돼 상황 속에 녹아들어야만 진정한 코미디가 나온다. 남경주만의 방식대로 대본을 분석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서 나만의 알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작품이 끝나고 나면 배우로서 더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이 고양되고 정신이 강화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정원] 다들 남경주씨와 부부 역할로 많이 출연했을 거라 생각할 텐데 이혼한 부부, 결혼하기 직전의 연인 역할로 함께 무대에 서봤다. 둘이 연극은 처음인데 왜 남경주라고 하는지 알겠다. 이번에야 말로 찰떡궁합으로 호흡을 맞춰 제대로 된 부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처음 연극을 한 건 2003년 이명우 선생님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 힘이 드는데 왜 자꾸 연극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누워 있으면 떡을 먹을 수 있는데 산에 오르면 산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학살의 신’은 배우 최정원에게 다시 한 번 더 담금질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것 같다.

 

[이지하] 일상 속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리얼한 상황을 맛깔나게 표현한 텍스트와 시니컬한 코믹함에 매료됐다. 출연 제안이 왔을 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관객 분들이 무대 위의 배우들을 마음껏 비웃으면서도, 결국에는 작품 안에 동화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인간의 본성을 까발리는 작품이다. 약 90분 동안 배우들의 입담만으로 이뤄진다는 게 이 연극의 매력이다. 캐스팅부터 과감하고 흥미롭다.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색깔의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어떤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 지 기대해 달라.

 

[송일국] 나는 공연에 있어서 중고 신인이다. 뮤지컬계 최불암-김혜자라 불리는 남경주, 최정원 그리고 이지하 선배와 한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다. 첫 공연 후 회식을 했는데 이지하 선배가 칭찬을 많이 해줬다. 처음 대본을 읽을 때는 ‘저 인간과 어떻게 무대에 서나’ 했는데 이제는 봐줄만 해졌다고 했다. 인내해 준 연출님께도 감사하다.
사실 소극장 공포증이 있었다. 이제는 설렌다. 연출님이 제발 오버하지 말라고 할 정도다. 배우 송일국은 무겁고 선이 굵은 역할들로 각인 돼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모습 그리고 진짜 내 모습에 닿아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싶었다.

 

■ +2_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대학살의 신’

 

 

국내에서 ‘아트(Art)’로 잘 알려진 희곡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 ‘대학살의 신(Le Dieu du carnage)’을 영화한 작품이다. 한 장소에서 ‘리얼 타임’으로 진행되는 연극에 끌렸던 로만 폴란스키는 프랑스였던 배경을 뉴욕으로 옮기고 그 중에서도 브루클린을 택했다. 브루클린이야말로 자유로우면서도 지성적이고 교양 있는 삶을 추구하는 부부들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자신과 함께 ‘피아니스트’ ‘유령작가’를 만든 스태프들을 불러 모아 작업을 시작한 로만 폴란스키는 2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그 안의 거실, 침실, 복도 등의 세트는 물론 배우들의 의상까지도 작품 속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고품격’과 ‘막장’의 조화를 성사시킨 배우들의 열연이 압권이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의 엄청난 연기를 만날 수 있다. 이미 화려한 이력의 감독과 배우들인 만큼 이들이 참여한 영화 편수를 합치면 총 315편이며,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이들의 수상 횟수를 더하면 총 209회다. 또한 연극에는 없는 공원 장면이 오프닝과 엔딩에 짧게 삽입, 어른들의 배려 없는 싸움을 더욱 코믹하게 만든다.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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