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용히 행동하는 유머,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지킬 박사가 신약 개발에 실패했다…‘지킬앤하이드’ 뒤집는 코미디

이영경 기자 | 기사입력 2017/06/26 [14:47]

[리뷰] 조용히 행동하는 유머,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지킬 박사가 신약 개발에 실패했다…‘지킬앤하이드’ 뒤집는 코미디

이영경 기자 | 입력 : 2017/06/26 [14:47]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에 묘사된 지킬 박사는 친절하고 학식이 높으며 외형적으로도 준수한 상류층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중요시했던 지킬은 자신의 행동에 엄격했고, 그만큼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쾌락에 대한 욕구를 분명히 인식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욕망대로 행동하는, 이른바 ‘악’을 분리하고자 연구에 몰두한 박사가 약을 완성함에 따라 하이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내면을 분리하고자 했던 인간의 오만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국내에서는 아마 원작 소설보다 뮤지컬을 통해 이 기괴한 인물을 만난 이들이 더 많을 만큼 ‘지킬앤하이드’는 여전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신의 팔에 약을 투입한 무대 위 지킬이 짧지만 강렬한 고통 후 기겁할만한 하이드의 형상으로 변한 순간, 그가 한 말은 ‘정상’과 ‘자유’다.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도 지킬은 약을 마신다. 그토록 익숙한 뮤지컬 음악이 나오고, 박사가 고통을 토로하는데, 그런데, 하이드가 나타나지 않는다. 연극 속 우리 박사는 신약 개발에 실패했다.

 

(이미지제공=오픈리뷰(주) / 마케팅컴퍼니 아침)

 

학회에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발표해야 할 날이 내일이다. 실패를 말하면 사람들이 조롱할 것이고, 무엇보다 지원받는 보조금이 끊기게 된다. 시계 두 개를 가지고 다니며 서로 다른 시간 사이의 평균을 내어 행동할 만큼 고지식하고, ‘아싸 가오리’ ‘숭구리당당’을 이용한 썰렁한 개그를 일삼는 지킬 박사는 고민 끝에 하이드를 대신할 배우 ‘빅터’를 찾았다. 이 빅터로 말할 것 같으면 셰익스피어의 ‘헨리5세’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로서 헨리 5세 역은 아니고, 프랑스 황태자 혹은 귀족도 아니며, 군사령관도 아니고, 무려 이들이 이야기는 과정에서 잠깐 등장하는 전령 역을 맡고 있다. 대사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빅터는 신기할 만큼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지킬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그래서 나를 왜 불렀느냐’고 묻는다. 이들이 보는 것조차 불안한 일종의 사기극을 도모하고 리허설을 진행하는 가운데 갑자기 지킬의 약혼녀 이브가 등장한다. 지킬과 빅터는 이브를 속이기 위해 ‘지킬앤하이드’를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다. 지킬이 지루했던 이브는 ‘엉덩이 철썩철썩’ 같은 조악한 말을 내뱉는 하이드에게 매력을 느끼고, 급기야 스스로 약을 마신다. 이 모든 순간에는 사건을 가장 객관적으로 지켜보며 상황을 수습하는 조수 풀이 있다.

 

(이미지제공=오픈리뷰(주) / 마케팅컴퍼니 아침)
(이미지제공=오픈리뷰(주) / 마케팅컴퍼니 아침)

 

한정된 장소, 작고 사소한 거짓말이 꼬이고 엉키는 가운데 정신없이 헤매는 인물들이 유발하는 코미디는 미타니 코키의 전문분야다. 국내에서 연극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뮤지컬 ‘오케피’,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멋진 악몽’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말이 될 법도 하고 안 될 법도 한 상황을 버무려 유쾌하고 악의 없는 소동극으로 완성하는데 탁월하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미타니 코키의 의도와 유머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국내 관객이 익숙하도록 대사 표현 및 음악을 아주 조금, 약 1% 정도 영리하게 수정했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웃음을 위한 연극이다. 미타니 코키 대개의 작품이 그렇듯 과도한 액션이나 분장이 아닌, 캐릭터와 상황이 만들어내는 무리하지 않는 유머가 귀엽다. 메시지와 푸근함 혹은 작은 감동은 결국 웃음으로 완성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술과 눈물을 섞을지라도 결코 성공될 수 약 앞에서 소심한 지킬 박사는 절망한다. 인물들 중 유일하게 내면 속 욕망을 신명나게 발현하고 창피함에 그만 죽어버리고 싶었으나 모든 상황을 인정한 후 가볍게 떠나는 이브의 뒷모습만이 경쾌하다. 미타니 코키 작, 정태영 연출, 윤서현, 김진우, 박하나, 스테파니, 정민, 장지우, 박영수, 장태성 등 출연/2017.6.20~8.20일까지/두한아트센터 연강홀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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