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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18항쟁 왜곡, 박정희 신격화 몰락의 분풀이”
안종철 전 5.18 기록물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 “5·18 한국현대사에 기여한 역사의 봉우리”
 
임이랑 기자 기사입력 :  2017/05/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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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철 전 5.18 기록물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

“5·18 한국현대사에 기여한 역사의 봉우리”

 

광주 5·18민주화항쟁 기념식이 18일로 제37주년을 맞이했다. 5·18민주화항쟁은 유독 다른 민주화항쟁에 비해 많은 부침을 겪었다. 

 

유언비어에 불과했던 ‘북한군 5·18 광주 침투설’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사실인 마냥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5·18민주화항쟁 기념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이냐 합창이냐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 

 

5·18민주화항쟁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세력은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5·18민주화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무장을 통해 계엄군에 대항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을 두고 프랑스인들은 이를 ‘폭동’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5·18민주화항쟁을 인정하지 않고 깎아내리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안종철 전 5.18 기록물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은 “박정희 체제를 이어받은 전두환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5·18민주화항쟁이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안종철 전 5.18 기록물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  

 

안 전 단장은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5·18민주화항쟁과 제주4·3사건 등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 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며 “박정희 체제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5·18민주화항쟁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북한군 5·18 광주 침투설’에 대해 그는 “1980년 5월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출몰해 광주항쟁을 일으키고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월북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며 되묻고선 “영토를 보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군 통수권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반박했다.

 

국방부도 지난 2013년 5월 5·18 북한군 광주 침투설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국방부의 확인에도 불구하고 극우세력은 “광주 시민에 의한 독자적인 시위는 없었다. 민주화항쟁도 없었다. 20~30만 명이 동원된 폭동과 살인과 방화가 있었지만 이를 지휘한 한국인은 없다”며 “국가는 북한이 써 준 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썼다. 국가도 국민도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안 전 단장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다”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미 5·18민주화항쟁은 국가에서 법적·제도적으로 정리했고 유네스코에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대법원에서 내려졌다”고 강조했다.

 

“5·18 왜곡은 전형적인 마타도어…전두환이 피해자? 소가 웃을 일”

 

5·18민주화항쟁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노량진 학원가에는 ‘5·18광주 민주화 항쟁 유공자들이 받는 가산점 10% 때문에 일반 공시생들의 합격이 어렵다’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가 유포되고 있다. 

 

이러한 전단지가 유포되는 것에 대해 안종철 전 단장은 “전형적인 마타도어다”고 선을 그었다. 

 

안 전 단장은 “5·18민주화항쟁 피해자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혜택도 없다”며 “1990년 국회에서 당시 평민당 등 야당에서 보다 합리적인 법안이 협의되어 통과되기를 원했지만 광주문제를 덮으려는 집권당의 반대로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회에서 통과된 보상법안은 그나마 일반적인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 주어지는 호프만식 보상이다. 실제로 사망자에게는 1억500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됐고 부상자들에게는 부상의 정도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상금이 주어졌다. 

 

반면, 대학생 피해자의 경우 무직자 처리가 돼 80년대 당시 법정노동금액으로 보상하게 됨에 따라 형편없는 보상금이 지급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5·18민주화항쟁 유공자 가산점에 대해 그는 “국가보훈처에서 유공자 가산점을 관리하고 있는데 다른 유공자들보다 더 준다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5·18 피해자를 앞세워 5·18민주화항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마타도어가 이렇게까지 창궐한다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 5·18민주화항쟁 당시 계엄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광주시민의 모습(사진제공=5·18 기념재단) 

 

지난 4월 출간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선 5·18민주화항쟁에 대해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회고록은 5·18 유가족과 유공자의 마음을 후벼 파는 발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안 전 단장은 “후안무취이자 언어도단”이라며 “강제 진압으로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수천명의 부상자를 만들어낸 당사자가 전두환이라는 것은 세계의 역사가 인정하고 있다”며 “5·18민주화항쟁 당시 광주를 외로운 섬으로 만들고 광주시민들의 자존심을 망가뜨렸던 당사자가 전두환인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며 비판했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 상급 지휘권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그 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전일빌딩 헬기사격에 대한 기자회견이 지난 15일 광주시청에서 열렸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1980년 5월 당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사격은 도청진압 작전이 전개된 5월27일 새벽 4시부터 5시30분 사이 61항공대 202, 203대대 소속 UH-1H 기동헬기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안종철 전 단장도 “1988년 조비오 신부 등이 국회청문회에서 헬기 사격문제에 대해 증언했지만 군당국에서 강력히 부인해 조사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였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라 전일빌딩 등 주요 건물에 대한 헬기 사격이 자위권과 무관하게 무차별 발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장항공부대인 31항공단 간부들은 시종일관 무사격을 주장하고 있지만, 계엄 상황과 교전상황이 중복된 엄중한 시기에 과연 상급 지휘권자의 헬기 사격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며 “31항공단의 무장헬기 기동여부에 대해 당국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18에 대한 국가 차원의 축소 작업, 광주 외면 불러와”

 

5·18민주화항쟁이 타지역에 비해 유독 광주와 전남에서만 추모되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1980년대 초반에는 5·18민주화항쟁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죄가 되어 당국의 체포와 수사 대상이 됐다”며 “피해 당사자들만 신군부의 부당함을 외치던 외로운 투쟁”이였다고 설명했다.

 

안 전 단장은 “6월 항쟁 이후 군부독재가 무너지면서 광주의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5·18민주화항쟁의 전국화는 상당히 진전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타지역의 냉담한 반응도 아쉽지만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5·18민주화항쟁이 왜소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종철 전 단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 차원에서 못 부르게 한 것이 5·18민주화항쟁을 축소하는 작업이었다고 비판했다. 

 

안 전 단장은 “5·18민주화항쟁에 대한 국가적 축소 작업은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5·18민주화항쟁을 외면하게 하는 계기가 됐고 급기야 광주를 멀리하는 국면으로 전개됐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안종철 전 단장은 5·18민주화항쟁이 국민과 민중이라는 역사의 주체가 전면에 부각된 계기라고 강조했다.

 

안 전 단장은 “비록 1980년 5·18민주화항쟁은 실패했지만 반민주에서 민주로 독재에서 공화로 전환되는 지점이었다”며 “한국현대사의 전환점에서 많은 기여를 한 역사의 봉우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무시만 당해왔던 민중이라는 주체가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바로 5·18민주화항쟁”이라며 “광주시민들의 흘린 피가 지금 열매를 맺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문화저널21 임이랑 기자 iyr@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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