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완두콩 / 김영탁

서대선 | 기사입력 2017/05/08 [08:48]

[이 아침의 시] 완두콩 / 김영탁

서대선 | 입력 : 2017/05/08 [08:48]

완두콩

 

지하철 계단에서 완두콩을 까고 있는 늙은 여인

손이 부지런하다. 아무리 봐도 콩을 사는 사람은 없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이미 가망 없는 뻔한 업業이지만

여인의 주름진 손이 염주를 굴리듯

콩 껍질에 희미한 때처럼 비쳐 오가는 그림자를 어루

만진다

콩은 시간이 갈수록 오도카니 쌓여 가는데, 어찌어찌

껍질 안에서 빠져나온 콩 하나가

지하철 계단을 콩콩콩 내려간다

땅속으로 들어간 콩의 유전流轉이야 뻔하겠지만

그때부터 여인의 손에서 완두콩 넝쿨이 쑥쑥 뻗어 나와

하늘로 푸르게 푸르게 올라간다 

 

# “지하철 계단을 콩콩콩 내려”가는 저 콩 한 알, 가난하고 늙은 여인이 놓친 “완두콩” 한 알이 “땅 속으로 들어가” “넝쿨이 쑥쑥 뻗어 나와/하늘로 푸르게 푸르게 올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잭과 콩 나무’ 동화처럼 마법의 콩 나무줄기 타고 구름을 뚫고 올라 거인국에 가서 황금 알을 낳는 오리도 안고 오고, 금과 은과 보석들도 가져와 다시는 “지하철 계단에서” 완두콩을 까는 일이 없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꿔 볼 수 있을까? “지하철 계단에서 완두콩을 까고 있는 늙은 여인”의 완두콩 하나가 “껍질 안에서 빠져나온 콩 하나가” “콩콩콩” 굴러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랄 수 있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소원이 그 콩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국회의원 가슴 마다 푸른 줄기를 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는 “지하철 계단”에서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일이 없도록 착한 ‘거인’이 되어 줄 수 있는 국회의원들로 가득찬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늙고 가난한 여인의 “완두콩” 한 알 굴려보고 싶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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