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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촛불집회 뿌리 4·19정신, 개헌에 반영돼야”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4·19혁명,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시작”
 
임이랑 기자 기사입력 :  2017/04/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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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4·19혁명,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시작”

4·19혁명, 제3세계 국가에겐 가장 모범적인 ‘시민혁명’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반발해 일어난 4·19혁명은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축출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누군가는 “우리나라는 국민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단 한 번도 끌어내리지 못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두 번에 걸쳐 민심을 배반한 권력자를 쫓아냈다. 

 

이처럼 1000만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약속이나 한 듯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일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는 4·19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정해구 교수는 “4·19혁명에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항쟁이 광화문 촛불집회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정해구 교수가 지난 13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영주 기자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특징 중 하나가 주기적으로 시민들의 항쟁이 일어난다”며 “첫 번째가 4·19혁명, 두 번째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세 번째가 6월 항쟁, 네 번째가 광화문 촛불집회”라고 설명했다.

 

그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 것과 관련해 “4·19혁명은 독특하게도 중·고등학생이 대거 참여한 혁명”이었다며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많은 학생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점이 4·19혁명과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19혁명은 독재자 이승만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후 1년 뒤인 1961년 5월 16일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을 주도로 한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이에 대해 몇몇의 역사학자들과 정치인들은 4·19혁명이 실패한 혁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4·19는 미완의 혁명”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보면 1년 뒤에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했으니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4·19혁명 때부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다”며 “4·19혁명을 실패했다고 이야기 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정 교수는 4·19혁명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작을 알렸지만 끝마무리를 제대로 못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했다.

 

5·16 군사쿠데타 당시 장준하 선생과 일부 4·19혁명을 지지한 지식인들은 5·16세력이 4·19혁명의 정신을 이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5·16세력이 처음에는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시켜주는 것을 보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5·16세력이 4·19정신을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5·16세력에 대한 지식인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박정희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사과와 배상을 제대로 받지 않고 타협해 가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5·16세력이 4·19혁명의 정신을 이어가려 했다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했지만 5·16세력은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통해 국민들을 지배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다고 하지만 4·19혁명 이후 5·16군사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땠을까.

 

정해구 교수는 “60년대부터 민주주의가 진행됐을 것”이라며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이후 민주당 전부가 추진했던 게 내각제였다. 내각제가 그때부터 발전했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상당 부분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영주 기자

 

경제발전 부분에 있어서 정해구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발독제를 통한 경제발전을 시켰다”며 “독재가 없었다면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발전이 진행돼야 하는데 발전 속도는 떨어졌겠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크게 뒤처져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서구에서는 민주주의 역사가 200년~300년의 시간을 거쳐 서서히 발전했다. 특히 1~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늦게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제3세계 국가들처럼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없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강제로 이식됐지만, 우리나라는 제3세계 국가 중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4·19혁명이었다. 

 

4·19혁명은 우리나라를 제3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국가로 만든 의미 있는 혁명이다. 아직까지 민주주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 입장에선 4·19혁명은 가장 모범적인 시민혁명으로 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4·19혁명을 반란으로 표현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정해구 교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 교수는 “4·19혁명은 반란이 아니고 구조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승만정권의 부정부패 문제, 단기적 측면에서 봤을 때 3·15부정선거에 의해 일어난 혁명”이라며 “4·19혁명은 국민주권의 발동이다. 더군다나 학술적 논문에서 4·19를 반란으로 표현한 것은 한 번도 못 봤다”며 반박했다.

 

정해구 교수는 프랑스를 예로 들면서 “1787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프랑스 헌법에는 혁명 당시 쓰여진 인권선인이 헌법 전문에 대거 반영됐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은 법이 되면서 문화가 됐고 제도화 됐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는 4·19혁명을 헌법 전문에 반영만 하고 구체적으로 이를 문화화, 제도화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달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각 대선 후보들과 정당들은 개헌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정 교수는 “만약 이번에 개헌이 된다면 헌법에 4·19혁명을 혁명 정신이 제대로 반영되고 5·18광주민주화항쟁과 광화문 촛불집회도 함께 반영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문화저널21 임이랑 기자  lyr@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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