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下] “돈 쫓아 베트남 가자니, 기술유출 아닌가”

국내선 인정 못 받는 장인정신 “중국·베트남 공장에 밀릴 수밖에”

임이랑 기자 | 기사입력 2017/04/07 [17:46]

[르포下] “돈 쫓아 베트남 가자니, 기술유출 아닌가”

국내선 인정 못 받는 장인정신 “중국·베트남 공장에 밀릴 수밖에”

임이랑 기자 | 입력 : 2017/04/07 [17:46]
▲ 완제품을 검사하기 위해선 맨손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자동선반 업계 특성상  장갑을 낄 수 없는 최재호 부장의 손에는 윤활유가 잔뜩 묻어있다.     © 임이랑 기자

 

국내선 인정 못 받는 장인정신 “중국·베트남 공장에 밀릴 수밖에”

한국 자동선반 업계…중국 생산량 공세, 베트남 인건비 공세, 단가 후려치기 공세에 '3중고'

 

세팅 작업과 완제품 검사를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됐다. 사진기를 들고 최 부장을 따라다니기만 했는데도 배가 고팠다. 식당은 직원들이 자주 가는 백반 집이었다. 큰 식탁에 세 명이 앉아 조촐한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중 최 부장은 현재 우리나라 선반업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국 선반업체의 물량 공세에 밀려서 요즘 맥을 못 추고 있지. 과거에는 중국 제품 품질이 별로였어. 그런데 요즘은 품질에도 큰 차이가 없어 경쟁이 심해. 더욱이 우리나라 선반업계는 갈수록 어려워져서 자동선반 기계 1~2대를 놓고 운영하는 공장이 많아. 우리 공장 정도면 큰 편이지. 근데 중국에 있는 선반 공장은 몇 백대의 기계를 두고 제품을 생산하니 생산량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부장은 “요즘 우리 회사로 가끔씩 베트남 사람들이 와서 일을 시켜달라고 해. 그런데 말도 안 통하고 하니까 거절하지.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한국 선반 회사에서 일했다고 하면 최고 기술자 대우를 해준데. 나는 그 점이 부러워. 우리나라도 기술자들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면 좋겠어”라며 다 마신 커피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현재 국내 선반 업계는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중국의 물량공세와 함께 우리나라 자동선반 기술자 중 일부가 베트남으로 이직하고 있다고 한다. 최 부장 또한 베트남 회사의 이직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베트남에 가서 뭐하겠어. 베트남 가면 대우는 좋다고 하던데. 나는 그냥 한국에 있을 거야. 돈 쫓아서 베트남 가면 좋긴 하지만 크게 생각하면 이것도 기술유출이거든”

 

최 부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꿀맛 같던 점심 휴식시간이 끝나 오후 작업이 시작됐다. 오전 내내 완제품을 포장하던 윤여황 팀장이 복합CNC 앞에서 도면을 들고 서 있다.

 

윤 팀장이 복합CNC로 만들 제품은 통신안테나에 들어가는 펜 나사이다. 복합CNC는 자동선반에 비해 훨씬 더 정밀한 부품을 만들기 때문에 쇠를 절삭하는 부분도 몇 배는 더 날카롭고 세팅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복합CNC로 만들어진 완제품은 제품비와 함께 세팅비용을 추가로 받는다.

 

▲15대의 자동선반을 혼자 맡고 있는 최재호 부장의 모습, 세팅을 하기 위해 부품을 찾고 있다.     © 임이랑 기자

 

안테나 펜 세팅을 끝마친 윤 팀장은 “자동CNC는 코드번호를 다 외워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어요”라며 “나한테 도면 아무거나 가져와볼래요? 못 만드는 거 없이 다 만들 수 있죠”라며 밝게 웃었다.

 

윤 팀장은 선반업계에서 일한지 17년째이다. 23살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기술이라도 배우자는 생각으로 자동선반을 배웠다. 윤팀장은 “먹고 살려고 배운 기술인데 요즘처럼 이렇게 바쁘면 자동선반 기술을 배운 게 후회 되죠”라면서 “차라리 용접을 배울 것을 그랬어요”라며 말했다.

 

그는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기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윤 팀장도 복합CNC에서 완제품이 생산되자 무게와 강도를 측정했다. 

 

복합CNC는 자동선반에 비해 완제품 생산이 늦다. 보통 자동선반이 완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20초 정도 걸리지만 좀 더 세밀한 제품을 만드는 복합CNC는 6~7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윤 팀장도 최 부장과 마찬가지로 복합CNC에서 육각을 자르고 나오는 찌거기를 빗자루로 조심스럽게 모으면서 “찌거기를 정리하면 완제품을 도금하러 가야해요. 바쁠 땐 납품이나 도금을 해주는 사람 한 명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찌꺼기를 정리한 윤 팀장은 윤활유가 잔뜩 묻은 안테나 펜들을 세척액에 깨끗이 씻어 말린 뒤 큰 포대에 담아 도금을 위해 트럭에 올랐다.

 

같은 시각 최 부장은 여전히 자동선반 15대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완제품들을 검사했다. 

 

두 딸의 아버지인 최 부장에게 자동선반 업계 일을 자식에게 추천할 수 있냐고 묻자 “아들이라면 추천해줄만 하지. 기술이잖아. 그런데 딸이라서 좀 그래”라며 “여자가 하기에는 위험한 일이야. 과거에는 여자 직원이 좀 있었거든. 그런데 머리가 길다보니까 자동선반 기계에 머리카락이 껴버려서 한 뭉텅이가 빠진 것을 본 적 있어. 그래서 그런지 추천 해주고 싶진 않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가 조금씩 뉘엿뉘엿 지는 오후 4시가 되자 윤 팀장이 도금을 마치고 돌아왔다. 도금을 마치고 잠시 과자 몇 봉지를 터 쉬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근무 중 처음 의자에 앉는 시간이었다. 

 

몇 분만에 과자를 모두 먹은 최 부장과 윤 팀장은 각자 담당하는 기계 앞으로 다가가 일을 시작했다. 보통의 공장처럼 같은 일의 무한반복이었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둘이서 오랫동안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넒은 이 공장을 맡아서 일 해왔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자동선반이 에러로 멈추면 세팅 작업을 다시해야 한다. 혼자서 에러 부분을 찾고 있는 최재호 부장    © 임이랑 기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최 부장은 돋보기를 쓰며 완제품 검사를 했다. 노안이 생겨 작은 완제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나둘씩 자동선반, 복합CNC가 완제품을 모두 생산하고 멈추기 시작했다.

 

팩스로 들어온 주문서를 확인한 최 부장과 윤 팀장은 들어온 주문에 맞춰 다시 각자가 맡은 기계 앞에서 세팅 작업을 시작하자 기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퇴근이 언제냐고 묻자 최 부장은 “이제 곧 가야지. 오늘 들어온 주문을 내일까지 맞춰야 하니까 미리 세팅해서 새벽까지 자동선반이 혼자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놔야지”라며 말했다.

 

저녁 8시가 되자 주변의 공장들은 모두 불이 꺼졌지만 성진산업은 여전히 불이 켜진 채 자동선반 기계가 돌아간다.

 

자동선반의 기계음을 뒤로 한 채 공장의 문이 닫혔다. 최 부장은 “기자님 기사 좀 잘 써줘”라는 말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최 부장과 윤 팀장이 퇴근했지만 공장의 자동선반은 여전히 큰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고민하고 있는 인력 부족과, 고령, 제품의 단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문화저널21 임이랑 기자  lyr@mhj21.com

저널21
썸네일 이미지
통일 위한 첫단추, 남북 보건의료 협력부터
저널21
통일 위한 첫단추, 남북 보건의료 협력부터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순항이 지속되면서 통일을 대비해 남북 보건의료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북한 귀순병사 몸속에 수많은 기생충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현재 북한 ...
저널21
썸네일 이미지
문재인 케어의 성공, 간호인력 처우개선에 달렸다
저널21
문재인 케어의 성공, 간호인력 처우개선에 달렸다
문재인 케어 도입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보건의료 정책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간호인력에 대한 처우개선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의료서비스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직군이 간...
저널21
썸네일 이미지
제약사들의 갤러리 소통…Best와 Worst
저널21
제약사들의 갤러리 소통…Best와 Worst
일반시민 무료공개, 저소득층 미술교실로 안국약품 Best사내 갤러리에 전시하고 언론보도(?) 녹십자 Worst 제약사들이 진행하는 사업은 국민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이 때문에 모든 제약사들은 병으로 고통 받...
사회일반
썸네일 이미지
“친일파 교육감 당선을 취소해 주세요”
사회일반
“친일파 교육감 당선을 취소해 주세요”
“청소년도 교육감을 뽑게 해주십시오”“청소년의 교육감 선거권을 요청합니다”“청소년의 선거권을 보장해주세요”“교육감 선거만이라도 참여 연령을 만17세로 낮춰주세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고등학생들...
사회일반
썸네일 이미지
조재현 성폭행 재일교포 여배우 찾기(?)…언론들의 '관심법'
사회일반
조재현 성폭행 재일교포 여배우 찾기(?)…언론들의 '관심법'
재일교포 여배우가 약 16년 전 배우 조재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가운데, 일부 언론들이 사실관계가 아닌 과도한 인물 폭로성 보도를 내놓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지난 20일 SBS funE는 단독 기사를...
자동차
썸네일 이미지
기아차 쏘렌토 ‘에바가루’ 수산화알미늄…폐섬유증 유발
자동차
기아차 쏘렌토 ‘에바가루’ 수산화알미늄…폐섬유증 유발
지난 2015년부터 현대기아차 일부 차종에서 에어컨 작동 시 송풍구에서 백색가루(에바가루)가 나오는 현상이 제보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가루 성분이 알루미늄 코팅이 산화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수산화알미늄으로 유력하게...
정치일반
썸네일 이미지
北·中관계 과시하는 김정은…후속회담 주도권 잡을까
정치일반
北·中관계 과시하는 김정은…후속회담 주도권 잡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후속 북미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찾았다. 미국과의 만남 때마다 김 위원장이 북중 관계를 드러내는 행보가 포착되면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한 내...
사회일반
썸네일 이미지
부산서, 중·고등학생 7명이 여중생 한 명 ‘감금·폭행’
사회일반
부산서, 중·고등학생 7명이 여중생 한 명 ‘감금·폭행’
20일 인터넷과 SNS에는 폭행을 당한 피해 여중생의 부모로 추정되는 글이 게재됐다....
경제일반
썸네일 이미지
권오준, 사임하고도 포스코 개입…골프 인맥 회장추천
경제일반
권오준, 사임하고도 포스코 개입…골프 인맥 회장추천
지난 4월 사의을 표명한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여전히 CEO 승계 카운슬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코의 CEO 리스크 해소를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4인 초기 사진展 ‘목련꽃 아래서’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