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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친절한 강요의 세계 ‘수탉들의 싸움_COCK’
기사입력: 2017/03/14 [09:53] ⓒ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원래 이별을 고하는 입장에서도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굳이 이해하고 보듬어줄 필요는 없지만 이별을 말하는 용기는 애썼다 할 만하다. 그런데 존은 대체 뭔가. 그가 얼마 전 이별을 고한 오랜 동성애인 M, 그가 최근 사랑에 빠진 여자 W 그리고 뜬금없는 M의 아버지 F가 소고기 앞에 한데 모여 논쟁을 벌인다. 둘 다 사랑할 수 없으니 누군가를 선택해야함이 마땅함에도 존은 스스로를 방어할 뿐이고,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M(남자)과 W(여자)만이 신랄하게 싸운다. 이들의 논쟁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직접 무대에 올라가 결론 내려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W의 말 따라 둘 다에게 ‘개새끼 짓’을 하고 있는 존이 별사탕 없는 건빵 열 봉지처럼 답답하지만, 한편으로 안쓰러운 공감이 가는 건 왜일까.

 

▲ 연극 ‘수탉들의 싸움_COCK’     © 이영경 기자

 

존은 자신을 어리게만 보는 애인 M에게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 난생 처음 여자 W와 하룻밤을 보내게 됐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멋진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존은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그 ‘개난리’를 쳐놓고는 돌아가고 싶다며 M을 찾아간다. 고민의 흔적이 듬뿍 담긴 선물 테디베어 인형을 들고 가서 하는 말이라고는 W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대체 이게 뭔가 싶지만, 이 둘만의 서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했지만 구체적이고 위트 있는 대사로 연극은 이미 매력적이다. 당황은 M의 몫임에도 끊임없이 방황하는 것은 존이다.

 

W는 귀엽고 친절한 여자다. 존은 M의 충격을 덜어주고자 W가 남자처럼 크고 거칠다고 거짓말을 한다. 존은 미끄러지는 생선처럼 M과 W 사이에서 계속 유영하고, 상황이 답답한 M은 W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혹은 바야바를 상상했는데 작은 여자가 들어왔다. M은 존과 W를 비난하고 W는 존을 감싸며 자신과 함께 이 집에서 나갈 것을 친절하게 강요한다. 이때 M의 지원군 아버지 F가 들어서면서 이들의 유치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출구 없는 말싸움이 정점을 향한다. 무대 위의 인물들 뿐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까지 존을 제외한 모두가 외친다. 존, 제발 결정을 하라고!

 

경제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선택사항이 많을수록 행복할 것 같지만 무언가를 포기하므로 치러야 하는 상처 혹은 후회가 불안을 증폭시킨다.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해야 하는 가련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연극이 진행되는 어느 순간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존에게 후회와 상처를 담보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고 확신했으나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내면의 추레한 우월감이 난감하다. 확신에 찬 인물들의 무한한 설득 속에서 오직 이름을 부여받은 존은 새롭게 사유하기 시작한다.

 

무대는 아무 장치 없는 링이다. 존이 불붙인 싸움의 내용은 지난하고 반복적이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에서만큼은 정직한 인물들의 경쾌한 리듬이 균형을 이루며 속도감을 유지한다. 링 위에서 누구도 이기지 않고 누구도 지지 않는 싸움이란 없기에 어떤 식으로든 승패가 갈리기 마련이고 모두에게 착잡한 패배감이 깃든다. M과 W, 즉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정체성 문제에서 시작한 연극은 인간의 정체성 문제로 확장되고 관계의 균열, 확신했던 자신과의 기묘한 낙차, 논쟁의 본질 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적이고 솔직하며 귀엽고 분노에 찬 대화들이 만발하는 틈에 사유의 침묵이 있다. 존이기도 한 동시에 M·W·F이기도 한 우리 모두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이크 바틀렛(Mike Bartlett) 원작, 송정안 연출, 이태구·이명행·손지윤·선종남 출연, 2017년 3월 10일부터 4월 9일까지, 아트원씨어터 3관.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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