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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나쁜 자존심 / 허영자
 
서대선 기사입력 :  2017/03/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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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자존심

 

다리가 아프다

많이 아프다

 

아프지만 안 아픈 양

똑바로 걷는다

똑바로 걷는 시늉을 한다

 

돌아보면

일생 동안 나는

다리가 아팠던 노동자

이제는 드러내놓고

다리가 아프다

 

아프지만 안 아픈 양

똑바로 걷는다

절뚝절뚝 똑바로 걷는다

 

나쁜 자존심이다

 

# 도대체 체면이 뭐길래, 물에 빠졌는데도 개헤엄은 칠 수 없다고 버틴다면 좋은 자존심일까?

과도한 체면치레 속에는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자신을 왜곡시키고 치장하려는 원시적 자기사랑의 행위가 내재되어 있다. 유아기 시절 자신을 양육하고 사랑해 주어야할 어머니와 가족들과 같은 의미 있는 타자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되면 자기사랑에 상처를 입게 되어 낮은 자존감이 형성된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없기에 타인의 눈에라도 나은 존재로 평가받고 싶은 자기존재의 허망함과 고갈된 모습(depleted self)을 방어하려고 외면적 포장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체면에는 ‘도덕적 체면’과 ‘능력 체면’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도덕적 체면’은 자신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 판단이 중심이 되며, 도덕성과 양심을 준거로 한다. ‘능력 체면’은 능력이나 신분 지위가 부끄러움의 준거가 된다. 체면을 지키는 것이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체면의 순기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기능적 체면치레는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므로 타인에게 발각될 염려가 없다고 생각되면, 들킬 때 까지 부정한 일을 쉽게 저지르고 반복하면서도 죄의식이나 부끄럼을 느끼지 못한다.

 

“돌아보면/일생 동안” “다리가 아팠던 노동자”였던 시인은 ”아프지만 안 아픈 양” “똑바로 걷는 시늉을”하며 살았다고 고백한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안간힘 써온 삶을 돌아보며,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것에 대해 반성적 사유의 거울을 비추어 본다.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와 같은 ‘능력 체면’에 손상을 입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체면치레를 위해 ‘도덕적 체면’까지도 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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