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화’ 없는 문명고등학교의 역사관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7/02/22 [18:17]

[기자수첩] ‘대화’ 없는 문명고등학교의 역사관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7/02/22 [18:17]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화 ‘변호인’에 등장하며 다시금 재조명됐던 책,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과거 전두환 정부 당시 불온서적, 소위 ‘빨갱이 서적’으로 불렸던 책이다. 지금은 역사관을 논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로 꼽히는 서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역사 교과서를 추진하고 나서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국민 모두가 고민해야할 문제가 됐다. 

 

결국 ‘대화’가 핵심이다.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기에 앞서 국민과 충분히 ‘대화’를 해야했고, 학교는 국정교과서를 도입하기에 앞서 학생들과 충분히 ‘대화’를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파든 좌파든 역사 앞에 진솔하게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역사교과서에는 ‘대화’가 없다. 국민들과의 대화 없이 졸속으로 만든 국정역사교과서를 학생·학부모들과의 대화 없이 수용하겠다는 학교가 있다.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다. 

 

현재 학생들과 학부모들, 해당 학교의 역사 선생님들까지 나서서 연일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학교 측은 소란을 핑계 삼아 ‘학교에 나오지 말고 주도 자율학습은 집에서 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듣지 않겠다는 태도,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해당 학교의 교장은 나름대로 대화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80%가 넘는 대다수 교사들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했다. 이를 찬성한 이는 교장과 학교 운영위원장 두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학교장은 마라톤 회의, 장기간 설득을 통해 ‘억지로’ 국정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강행했다. 

 

“다들 국정교과서가 잘못됐다고만 하지 제대로 내용을 검토해보지는 않지 않았나. 국정교과서가 잘못됐다고만 하지 말고 검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 내용을 비교해 달라.”

 

문명고등학교 교장이 한 말이다. 학생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내용을 검토해보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과 달리 현재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무수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현장 검토본 공개 후 한달 동안 무려 ‘760건’에 달하는 내용이 수정·보완됐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을 빼더라도 오탈자가 발생하거나 지명을 잘못 표기하는 등의 오류는 최종본에서도 속출했다. 

 

이런 문제점을 근거로 들며 학생들도, 교육 일선의 역사교사들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문명고등학교 측은 이를 듣지 않고 있다. 대화를 하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가 붙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선 현재의 학생들이 과거의 사실과 대화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명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비롯한 많은 수의 국민들은 국정역사교과서에 수록된 과거와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국정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화의 준비, 정확히는 완전 수용의 준비가 돼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어른들이 가르치는 것을 들으라고 말하는 고압적 국정역사교과서를 향해 일단 수용말고, 대화부터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받을 학생들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국정역사교과서를 들이미는 정부와 문명고등학교 교장의 행동은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은 받아들일 생각도 없는데 재빨리 한일 위안부협정을 체결하고 10억엔을 들이 밀었던 정부의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닌 무책임이다.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남긴 말처럼 역사에 다소 관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류가 수두룩한 국정역사교과서를 관용만으로 받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문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무책임을, 더 큰 죄를 지으라고 강요하는 행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pyj@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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