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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 / 박상순
 
서대선 기사입력 :  2017/02/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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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으로 만든 얼굴들

 

여기, 철문으로 만든 얼굴이 있다.

철문을 뜯어서 만든 얼굴이 있다.

 

작은 철문으로 만든 얼굴, 큰 철문으로 만든 얼굴

모두, 검게 칠한, 검은 얼굴들

 

처음에는 옥상에, 복도에

다음에는 문밖에, 거리에

이제는, 산에도, 바다에도

 

무거운 철문을 뜯어서 만든, 무거운,

딱딱한, 차가운, 너무 무거운,

여기,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이 쌓여 있다    

 

# ‘완벽한 성공’을 이루고 싶은가? 그렇다면 ‘가능한 더 많이 철면피(鐵面皮)가 되고 더 철저하게 흑심(黑心)을 지녀야’ 영웅도 될 수 있고, 천하도 호령할 수 있다고 설파 했던 사람이 있다.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를 살았던 이종오(李宗吾)는 ‘후흑학(厚黑鶴)’을 제정하여 난세에서 살아남는 실천적 생존전략을 강조하였다. 세상이 혼란하고 지도자가 무력할수록 이런 전략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작은 철문으로 만든 얼굴, 큰 철문으로 만든 얼굴/모두, 검게 칠한, 검은 얼굴들”이 “처음에는 옥상에, 복도에/다음에는 문밖에, 거리에/이제는, 산에도, 바다에도” 가득해져 가고 있다.

  

‘후흑(厚黑)’의 제 1단계는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꺼먼 단계이다. 이 단계는 안색이 혐오스러워 사람들이 접근하길 꺼린다. 제 2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이다. 낯가죽이 두꺼운 자는 어떤 모욕을 가할지라도 미동도 하지 않는 자이다. 속마음이 시커먼 자는 마치 옻칠한 간판처럼 남에게 대접을 받는 자이다.  

 

제 3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채가 없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하늘은 물론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마저 그 사람을 ‘후흑’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불후불흑(不厚不黑)’한 인물로 여기게 된다. ‘불후불흑(不厚不黑)’의 상태란 사람들로 하여금 ‘철면피도 아니고 흑심도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이 경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누구든지 성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속에 ‘불후불흑’의 경지에 이른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흑(厚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이다. 면후는 두꺼운 얼굴이니 ‘뻔번함’을 의미하고, 심흑은 검은 마음이니 ‘음흉함’을 의미한다. 혹여 ‘후흑’을 뻔뻔함과 음흉함을 활용한 거짓말과 속임수의 처세술이라고 여겨, “철문을 뜯어서” “자신의 “얼굴”을 만들고 “검게 칠하여” ‘후흑’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자들은 하수다.

 

진정으로 경계해야할 자는 ‘후흑’으로 무장한 채 겉으로는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의 옷으로 치장하고 애매모호한 말로 선동하며, 선량한 시민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자이다. 이런 자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닐 때,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후흑‘의 역설적 전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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