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Review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이건청 시인 열한 번째 시집 출간
 
최재원 기자 기사입력 :  2017/02/06 [19:07]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이건청 시인의 11번째 시집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사진=신광식 기자)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건청 시인(75)은 대학 강단에서 은퇴 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고향인 경기도 이천의 자연 속에서 감성의 촉수를 적시고 있다. 시력 50년이 다 된 그의 말귀는 여전히 독창적이면서도 원숙한 경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11번째 개인 창작 시집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를 출판했다.

 

이번 시집에서 ‘말(馬)’은 시인의 무심한 듯한 시선 속에서 인간의 현실 세계를 각성한다. 이건청 시인은 말, 멍 자국, 기러기 떼, 사막여우, 길 위에 뿌리내린 질경이에 대한 객관적 관찰로 독자에게 각기 다른 시간과 상처를 이입시킨다.

 

이들 대상의 존재는 아픔, 상처, 고통 속 거역할 수 없는 시간 안에서 시간의 끝을 향해 버틴다. 그리고 세상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 안는 애정과 연민을 노래한다.

 

오형엽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건청 시인의 時를 “세계의 폭력적 구조를 변방의 시인이 가지는 고고의 정신으로 대응하고, 시간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고 횡단하는 중층적 시간 구조로 대응하면서, 세상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 안는 애정과 연민의 노래이며 승화의 노래”라고 평했다.

 

“감각과 상상력과 시적 긴장과의 길항 속에서 좋은 말들을 발견하는 일은 고된 것이지만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건청 시인이 11번째 개인 창작 시집을 내면서 던진 말이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cjk@mhj21.com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 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를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크고 넓은 등허리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무대로 뛰어내렸다가 휘익 몸을 날려

말 잔등에 올라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곡예사는 채찍으로 말을 내리쳐

박수 소리에 화답해 보였다

 

곡예사가 떠나고 다른 곡예사가 와도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쳤다.

말은 매를 맞으며 곡마단을 따라다녔다.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을 것이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문화저널21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광고
광고

[MJ포토] 축제 한창인 말죽거리에 말이 나타
저널21
대한민국 '최저임금 1만원' 적절한가
썸네일 이미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늘어나면서 영업이익 비중은 꾸준히 감소될 것이... / 조원석 기자
리뷰
[리뷰] 영웅에 가려진 민초들의 목소리 '적벽가'
썸네일 이미지
100만대군을잃은조조의입에서영혼없는실소가터진다.막다른퇴로에서도원수들... / 최재원 기자
많이 본 뉴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