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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비평가의 시, 시인의 비평(2)

계간 시인세계 | 기사입력 2009/03/10 [13:46]

[기획 특집]비평가의 시, 시인의 비평(2)

계간 시인세계 | 입력 : 2009/03/10 [13:46]
<총론>

시와 비평의 길은 다르지 않다

                                                                                                             최    동    호

1. 시와 비평의 분리와 통합
 
우선 개인적인 고백을 먼저하고 싶다. 첫 시집 『황사바람』(1976)을 간행한 다음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1979)한 이후 나는 30여 년 간 시와 비평을 아울러 왔으며, 1989년에는 「서정시의 정신주의적 극복」(《현대시학》, 1989.8)을 통해 시단의 지평을 제시한 바 있다.
 
그 후 비평 활동과 더불어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2003) 등 네 권의 시집을 간행하기까지 창작에도 많은 적공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나의 창작은 비평가의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와 비평이 원칙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우리 문단의 지배적 관행이다. 어쩌면 이렇게 판단하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시에는 비평의 논리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거나 비평과 창작 사이에 코드 전환이 쉽지 않다는 의식이 잠복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판단이 일정 부분 타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와 비평을 겸행해온 결과 내가 깨닫게 된 것은 훌륭한 시를 탄생시키는 고도의 시적 정열은 일반적인 논리를 뛰어넘는 지적 명징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시는 논리가 아니다.”라는 명제에는 시가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여기에 시는 논리가 없어도 된다는 뜻이 내포된 것은 아니다.
 
나는 뛰어난 비평이 좋은 시를 쓰게 한다고 믿는다. 좋은 시는 동시에 뛰어난 비평을 가능케 한다. 이 양자는 서로가 보완적이며 상승적 작용을 하는 상호 순환 코드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비평의 황무지에서 결코 훌륭한 시가 산출될 수 없다. 좋은 시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어떻게 좋은 시가 산출될 수 있겠는가.

시의 형식 속에는 언제나 인간의 감동을 유발하는 고도의 논리적이며 유기적 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이 고전적 법칙이며, 그 구조가 취약한 시들은 일시적 유행을 바람처럼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대체로 내구성을 갖지 못하고 포말처럼 떠돌다 사라져 버린다. 그리스의 고전적 비극 작품들이나 중국의 당시 속에 들어 있는 고도의 논리성은 그 형식적 구조와 더불어 예술적 완결성을 제대로 성취했다는 뜻이다.

시와 비평의 자유로운 코드 전환이 지적 구조의 완결성을 토대로 하여 창의적 독자성을 얻을 때 시의 생산적 가치가 증폭된다는 것은 시와 비평을 병행하면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적 외형이 분방할지라도 그 내면에 완결된 논리적 체계를 갖지 못하는 시들은 자의든 타의든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2. 비평적 탐색을 통한 시의 길 개척
 
한국문학사를 되돌아볼 때 시의 길은 비평적 모색을 통해 개척되어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60년대가 개막되는 시점에서 서정주는 시집 『신라초』(1960)를 간행하면서 쓴 서문에서 『삼국유사』를 읽고 그 신라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시세계를 확장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불교적이며 샤머니즘적인 취향을 강하게 내뿜는 그의 시세계는 당시 찬반이 엇갈리는 반응을 받았지만 서정주의 시적 역정을 전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적 상상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미개척의 길을 새롭게 열어 주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우연이겠지만 이 시집이 20세기 중반을 가로지르는 시기에 간행되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6·25 전쟁 이후 과도기적 혼란 속에서 시의 길이 막힌 서정주가 찾아낸 것은 『삼국유사』를 통한 신라정신의 발견이었고 이를 자신의 시적 도약의 계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라를 건설한 박혁거세의 어머니 사소娑蘇의 독백으로 이어진 시 「꽃밭의 독백獨白」에서 우리는 ‘벼락과 해일海溢’의 길을 찾아낸 서정주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닫힌 문門에 기대 섰을 뿐’인 화자가 ‘문 열어라 꽃아’라고 되풀이해 외치는 것은 일면 영통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오히려 서정주에게는 막힌 출구를 뚫고 나가는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김춘수 또한 다른 일각에서 『삼국유사』에 수록된 처용설화를 자신의 시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라는 점이다. 김춘수 또한 그의 시적 전진로를 찾지 못할 때 삼국유사를 그의 시에 도입하게 되는데 서정주와 달리 현대적 연작 장시로 씌어진 『처용단장』은 1969년에 시작하여 1991년에 완결되는 대장정을 거치게 된다.
 
서정주가 샤머니즘적 영통주의로 나아가 김종길로부터 비이성적이라고 비판받고 있을 때 김춘수는 그 나름의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답보 상태에 있던 무의미시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시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것이다. 김춘수의 시적 모색은 서정주에 비해 매우 이성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데 『처용단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정주가 전통적인 시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면 김춘수는 이와 전혀 다른 서구적 감각의 모더니즘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여기서 우리는 1960년대 한국현대시의 양극이 서정주와 김춘수의 시적 전개와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서정주의 『삼국유사』에 대한 시적 탐구가 김춘수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모더니즘 시인에서 참여시인으로 변신한 김수영의 시적 탐구 또한 동시대적 질서 속에서 다시 한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1960년대의 시적 지형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제대로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반시론」을 쓰고 「시여 침을 뱉어라」(1968)로 나아간 것도 나름대로 시적 전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서정주가 ‘가슴으로 쓰는 시’를 주장한 것에 대한 반대 명제가 ‘온몸으로 쓰는 시’라는 명제라는 것이다.
 
모더니즘시에서 참여시로의 대전환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 김수영이 유고시「풀」에 이르러 이 양자의 종합에 도달했다고 본다면 전통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변증법이 그에게도 해당된다고 하겠다.

1968년 6월 유고시로 발표된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자 문학사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다.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보여준 모더니즘에서 참여 시인으로의 변신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의 시적 지형도를 서정주, 김춘수, 김수영 등을 통해 살펴 볼 때 전통시, 모더니즘시, 참여시 등의 세 가지 동선은 20세기 한국현대시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지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지향성은 1980년대까지의 참여시 또는 리얼리즘시가 주도적 역동성을 나타내던 시기까지 그대로 지속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신동엽, 신경림 등이 개척해나간 리얼리즘의 동선과 달리 모더니즘과 참여시를 아우른 김수영의 후계자로서 김지하, 황지우, 이성복 등이 그러한 영향권 속에 있었던 것이다. 김지하는 특히 김수영의 소시민성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풍자냐 자살이냐」(1970)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서 1970년대가 어떻게 1960년대를 극복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평문이라고 할 것이다.
 
김수영 문학의 풍자에는 시인의 비애는 바닥에 깔려 있으되, 민중적 비애가 없다. 오래도록 엉켰다 풀렸다 다시 엉켜 오면서 딴딴한 돌멩이나 예리한 비수로 굳어지고 날이 선, 민중의 가슴 속에 있는 한의 폭력적 표현을 풍자라고 한다면, 그런 풍자는 김수영 문학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바로 그가 민중으로서 살지 않았다는 점에 그 중요한 원인이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한계다.

젊은 시인들은 김수영 문학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이어받을 것이며 무엇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가 시적 폭력 표현 방법으로서 풍자를 선택한 것은 매우 올바르다. 이것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폭력 표현의 방향을 민중에만 집중하고 민중 위에 군림한 특수 집단의 악덕에 돌리지 않은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것을 비판적으로 넘어서야 할 것이다. 풍자를 민중에게 가한 김수영 문학의 정신적 동기만을 긍정하는 방향에서 젊은 시인들은 이제 풍자의 가장 예리한 화살을 특수 집단의 악덕으로 돌려야 한다.
 
김지하는 위의 글에서 김수영의 풍자에는 시인 자신의 비애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민중적 비애가 없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젊은 시인들이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은 시적 폭력 표현 방법으로 풍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풍자의 예리한 화살을 특수집단의 악덕에 돌려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김지하는 김수영을 넘어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 나름의 독자적인 시형식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오적』(1970)과 『대설』(1982)이 70년대 이후 한국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은 이러한 비평적 탐구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김지하에 대한 신경림의 비판 또한 주목할 만하다.
 
김지하의 경우, 때로 우리는 그의 두드러진 전투성에 역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 민중을 아는 시인이었다. 민중의 생활과 감정을 알고 기쁨과 설움을 함께할 줄 아는 시인이다. 판소리·민요 등 우리 고유의 가락의 부활에 의한 시의 방법도 그에 관한 한 매우 적절하다. 다만 그의 시가 지닌 지나친 전투적 요소는 민중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일부층의 기피 현상조차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데 대해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지하는 본질적으로 민중을 아는 시인이며 민중의 기쁨과 설움을 함께 할 줄 아는 시인이다. 고유의 시형식을 현대화시킨 것도 그의 중요한 시적 기여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전투성은 오히려 민중의 언어에 대한 기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위의 글 「문학과 민중」(1973)에서 신경림은 비판하고 있다. 신경림의 『농무』를 비롯한 일련의 시적 성과가 이러한 비평의식의 소산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해체시가 유행한 이후 정신주의시와 생태시가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아직 우리 시단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뚜렷한 시적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21세기를 맞이하였다. 최근 문단의 일각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미래파>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이들의 논의는 문학사적 연속성을 바탕으로 한 시적 지향성을 논한 것이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젊은 세대의 시적 특성을 논하고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미래파로 거론되는 시인들의 시에 미래에 대한 역사적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다. 자폐적이며,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동시에 소통불능의 언어로 구사되는 이들의 시는 병적 징후의 단면을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그들의 시적 작업이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의 시적 전진에 대한 뚜렷한 방향이 모색되지 않은 상황에서 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들이 자신의 전진로를 어떻게 개척했는가를 점검해보는 것은 문학사적 맥락 속에서 우리의 시적 전진로를 파악하려는 비평적 노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적 방향 모색과 비평적 탐색의 행복한 만남이란 지극히 예외적이다. 시와 비평이 이율배반적인 시대일수록 문학적 충돌은 심화될 것이다. 결국 창작 비평의 가로지르기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과 비평의 소통경로를 천착해 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시와 비평의 아름다운 만남
 
모든 문학의 출발은 시로부터 시작되어 시로 귀결된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시적인 것은 모든 예술을 움직이는 태양의 흑점과도 같다는 것 또한 과장이 아니다. 고도의 지적 논리가 요구되는 비평에 있어서도 시적인 요소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문학의 영역에서 축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문단에서 시와 비평의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조화는 김종길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절제된 시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의 비평은 시와 비평의 코드 전환이 자유로움을 알려주는 예증일 뿐 아니라 그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50년대 후반부터 우리 평단을 주도한 비평가 유종호, 이어령은 물론 김윤식, 윤재근 또한 시작노트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유종호는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2004)를 간행한 바 있다.
 
착한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에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영 다시 볼 수 없게 된 옛날
국민학교 선생님이라든가
복사꽃이라든가 함박눈이라든가
초승달이라든가 이깔나무라든가
저 무던한 사람들과 속깊은
자연 앞에 떳떳하기 위해서도
앞으로 많은 시를 써야겠지요
먹바위 굴려 올리기에 가뻐
그동안 너무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거든요
허둥지둥
세계의 은혜를 몰랐거든요
   ―― 「복사꽃이라든가 함박눈이라든가」 후반부
 
위의 인용은 시를 쓴다는 것은 물론 문학을 하고 세상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무던한 사람들과 속 깊은 자연 앞에서 떳떳해지기 위해 시를 쓰고, 시를 쓴다는 것은 그것들의 고마움과 은혜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시를 쓰고 시를 논하는 모든 것이 세상의 고마움과 세계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지나친 과장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종호의 이 시에서 우리는 시와 비평의 행복한 만남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청년 시절 그가 지닌 문학에 대한 꿈이 시로부터 촉발되었음을 알려주는 좋은 예증이 될 것이다.
 
청년 시절 신춘문예 시인으로 등단한 김화영이 비평가로 불문학자로 시종한다는 것도 또 다른 예증의 하나이다. 오세영과 이승훈은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국문학계의 대표적인 시론가들이다. 이미 이 두 사람의 비평적 업적은 그것만으로도 족히 전문적인 비평가들도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영과 이승훈은 가히 시인이자 비평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무게 중심이 어느 한 쪽이 기운다고 할 수 없다. 오세영의 경우 치밀한 분석력과 논리적 설득력은 단순한 시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며, 이승훈의 경우 이상, 김춘수의 계보를 잇는 독자적인 비대상의 시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가로서 주목할만한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시인 중에는 남진우를 비롯하여 이희중, 정끝별, 권혁웅 등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평론가로 등단하였고, 비평 활동 또한 활발한 문인들이다. 젊은 세대의 문인들 중에서 시와 비평의 코드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인이 남진우이다. 예민한 통찰력과 섬세한 감수성에 의해 씌어지는 그의 시와 비평은 우리 문단에서 시와 비평이 함께 나아가는 가장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최근 미래파 논쟁을 불러일으킨 권혁웅의 문단활동 또한 시작과 비평 양쪽에 두루 적용되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방민호, 허혜정, 김용희는 물론 김춘식에 이르기까지 젊은 문인들의 경우 더욱 점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우리 문단의 지적 풍요로움을 위해 결코 터부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이어령이 「저항의 문학」(1957)과 「화전민의 지역」(1959)를 내세우고 문단에 등단한 1950년대를 돌이켜본다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축적되어온 학문적 축적을 통해 성취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오늘의 시대는 전통단절이나 전통부재를 논하던 지적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와 분명 다르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하나는 과연 오늘 비평이 시적 창조성에 생산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현학적인 지식의 과시이거나 지적 추수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오늘의 비평의 과잉 현상은 오히려 지적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비평은 오늘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시작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비평적 노력의 활성화야말로 우리 시단의 난관을 타개하는 원동력이다. 대수롭지 않은 비평만을 뒤쫓아 다니는 시인과 다른 시인의 시를 읽지 않는 시인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비평적 무관심을 지닌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현재성에 사로잡힌 맹목적인 시인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평가의 시는 호사가의 관심거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시인의 비평과 동질의 창작물이다. 시심을 가다듬는 것은 시인만이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적용된다. 늘 시심을 가다듬지 않는 비평가는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없다. 시심이 없는 비평가는 제대로 된 비평가가 아니다.
그들은 억압적인 논리와 지식의 과잉으로 문학의 외각을 맴돌거나 문학 초과현상을 나타낼 것이다. 문단생활 50년을 정리하여 30권의 라이브러리를 간행한 이어령도 앞으로 “펴내고 싶은 것은 시집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문필활동의 가장 깊은 곳에 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시와 비평의 원활한 그리고 창조적인 소통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이 우리 문단의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 문학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는 비평적 의식이 없다면 우리 문단은 외래의 처방전만 남발하는 지적 추수주의를 끝내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문학의 풍요로움은 모든 문화예술의 창조적 토대이다. 문화예술의 창조적 동력 없이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 문학의 풍요로움은 시적 생산의 비의가 비평적 감수성에 의해 포착될 때 이루어진다. 훌륭한 비평가가 모두 훌륭한 시인은 아니지만 훌륭한 시인은 훌륭한 비평가이다. 시와 비평이 상승적으로 작용하여 정점에 도달할 때 명편이 산출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누가 시와 비평의 단절을 불러왔는가.
시의 길과 비평의 길은 끝내 다른 것이 아니다.
비평적 지성의 결여가 시적 창조성의 고갈을 가져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오늘의 명제이다.
 
 
최동호   1948년 수원 출생.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 1976년 시집 『황사바람』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아침세상』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공놀이하는 달마』, 시론집 『현대시의 정신사』 『평정의 시학을 위하여』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 등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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