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임병식 | 기사입력 2025/09/25 [15:53]

[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임병식 | 입력 : 2025/09/25 [15:53]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가수 송창식의 노래 한 구절이 오늘따라 귀에 오래 맴돈다. 바람결에 스며드는 그 음성은 마치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내는 듯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떠남을 맞이한다. 죽음이든, 이별이든, 혹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의 상실이든. 그 순간은 너무도 낯설고, 세상은 텅 빈 듯 무너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쉽게 건네지지만, 상실의 고통은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상실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모양으로 우리 안에 살아남는다.

 

그리움은 때로 짐처럼 무겁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리워한다는 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고, 함께한 순간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애써 지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껏 그리워해야 한다. “그리워해도 된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깊은 위로가 아닐까.

 

죽음학에서 말하는 ‘부정성’은 단순히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핍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태어나는 자리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우리는 결핍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결핍은 역설적으로 삶의 빛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부재가 있어야 존재가 빛나듯, 상실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더욱 귀하게 바라보게 한다.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잊어라, 견뎌라”는 말은 오히려 상처를 깊게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곁에 앉아 함께 눈을 마주하는 일, 함께 침묵을 지켜주는 일이다. 슬픔을 없애줄 수는 없어도, 그 무게를 함께 나누는 일은 가능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날 존재다. 이 당연한 사실이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삶을 더 깊게 만든다.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삶이 더욱 소중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인연, 오늘의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단지 아픔이 아니라, 그와 내가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증거다.

 

상실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시작이다. 떠난 이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몸짓과 말 속에서 여전히 함께 살아 있다. 우리가 오늘 누군가를 다정히 부르는 목소리, 조심스레 건네는 손길 속에도 이미 그 사람이 있다.

 

그러니 오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주저하지 말고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자. 그것이 떠난 이를 잊지 않는 방식이고,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리움은 고통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잇는 다리다.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여전히 사랑하며, 다시 살아간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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