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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을 따다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낸다 꽃 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 ‘뭣이 중하지요?’ 앙증맞은 토마토 첫 꽃 앞에서 머뭇거리는 남편에게 전지가위를 건넸다. 오월 초 순경 토마토 모종을 심었는데, 씩씩하게 줄기를 밀어 올리고, 제 영역을 넓히려는 듯 곁가지도 벌리더니, 작고 노란 첫 꽃을 피웠다. 반갑고 어여쁜 모습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열매채소의 첫 꽃은 따 주어야 튼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건넸다. 아깝고 미련이 남았지만 과감하게 첫 꽃을 제거하고, 중심 줄기에서 벋어나가 흔들거리는 곁가지도 쳐주었다. 여름 식탁엔 둥글둥글한 붉은 토마토가 푸른 깻잎과 고추와 상추 곁에서 식욕을 돋우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욕망하는 개체’이다. 모든 개체의 존재 양식은 ‘욕망이 빚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간도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매슬로우(Abraham H. Maslow, 1908-1970)가 세운 기본적인 욕구의 단계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욕망이 끼어들기도 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 욕구인 배고픔, 목마름, 수면, 성적 욕구에도 비정상적인 욕망이 끼어들면 건강과 사회적 질서와 윤리와 도덕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두 번째 욕구인 안전의 욕구 경우도, 외국 침략의 두려움에 떨었던 알바니아의 40년 독재자 호자(Enver Halil Hoxha, 1908-1985))는 재임기간 동안, 무려 700,000개의 지하 벙커를 만드는 데만 집착했다고 한다. 세 번째 욕구인 소속의 욕구에 과도한 욕망이 끼어들면, 나치 친위대처럼 집단의 극화현상(group polarization phenomenon)을 초래하기도 한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갑자기 전자기타를 배우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미 무용의 길에 들어선 아들이지만 스스로 가지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 전자기타 상가를 방문해서 기타의 종류를 알아보고, 기타를 다루는 분에게 전문적이고 다양한 의견도 들었다. 며칠 후, 아들의 무용지도 선생님과 함께 둘러앉았다. 무용지도 선생님은 아들의 신체적 조건과 예술적 감성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몇 달 후에 있을 88 올림픽 축하 공연 무대의 비중과 정상에 오른 무용가들의 혹독했던 자기 가지치기의 실례를 들려주며, 진정 전자기타리스트로 살고 싶은 것인가를 물었다. 신생아였던 아들을 안아주기 위해 하루에 한 갑씩 피우던 담배를 단번에 끊었다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아들은 말없이 특공대 훈련에 버금가던 공연 연습에 몰입했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렸던 88 올림픽 축하 공연 무대 위에서 아들은 아름다웠다.
“꽃 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던 시인의 고백처럼, 지금도 우리 곁에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세상을 위해 과감히 욕망의 곁가지를 쳐내고,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내”는 이들이 있기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것을 믿는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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