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퀘렌시아, 당신이 진정 머물 곳은

임병식 | 기사입력 2025/09/18 [15:31]

[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퀘렌시아, 당신이 진정 머물 곳은

임병식 | 입력 : 2025/09/18 [15:31]

사람은 누구나 평화롭게 머물 수 있는 자리를 꿈꾼다.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 불리는 그곳은 투우장에서 소가 마지막 힘을 모으기 위해 숨을 고르던 작은 공간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퀘렌시아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상실과 아픔을 껴안은 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자리다.

  

죽음학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유한성을 향해 나아간다. 상실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삶의 결을 형성하는 동반자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불안과 흔들림 속에 있다. 평화롭게 머무는 자리를 찾는 일은 곧,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과 같다. 퀘렌시아는 상실을 성찰하는 가운데 삶을 더 소중히 붙드는 자리가 된다.

  

오늘의 사회는 성공과 성취를 삶의 중심으로 세운다.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것을 갖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인 듯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중심은 오래 가지 못한다. 성공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성취의 꼭대기에는 다시금 공허가 기다린다. 오히려 우리는 실패와 상실의 순간에, 눈물과 고통의 자리에 멈춰 섰을 때 비로소 자신을 새롭게 마주한다. 아픔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퀘렌시아는 바로 그 자리에서 태어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사는 존재’라 했다. 상실을 자각할 때 삶은 더 진실해지고, 지금의 순간은 더 강렬해진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에서 윤리가 시작된다고 했다. 타인의 눈물 앞에 멈춰 서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홀로’가 아니라 ‘함께’가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퀘렌시아는 단지 나 혼자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과 함께 머무르고, 그 고통을 내 안으로 맞아들이는 환대의 자리다.

  

우리는 언젠가 마지막 순간에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어디에 머물고 싶은가?” 그 대답은 화려한 무대나 완벽한 성취의 자리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곁,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그곳은 눈물이 흐르는 자리이자, 상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자리다. 거기서 인간은 서로를 위로하고, 아픔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힘을 나눈다.

  

퀘렌시아는 멀리 있지 않다. 삶의 중심에서 외면당한 아픔과 눈물, 실패와 상실을 다시 불러와 안을 때, 그곳이 곧 우리의 퀘렌시아가 된다. 진정 평화롭게 머문다는 것은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삶의 일부로 품어내는 일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만약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삶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상실을 성찰하며, 타자를 환대하며, 아픔을 삶의 중심에 두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평화로운 머묾의 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다움의 길이며, 치유의 길이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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