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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갓에게
쑥갓이 꽃을 피웠다 생전 처음 보는 꽃 해바라기 닮은 국화였다 상추도 꽃이 핀다고 황금처럼 노란 꽃밭이 된단다 저도 시를 쓸 수 있을까요 타고난 재능도 없는데 꽃 피기 전엔 누구나 그렇다 쓰임새가 전부인 줄 아니까 굳은 생각을 뚫는 가지 하나 조금만 더 기다리자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은 꽃이 핀다
# ‘꽃을 피웠네’. 가위를 들고 마당 한 귀퉁이에 대강 심어둔 대파 한줄기를 자르려 허리를 숙였는데, 둥그스름한 파꽃 한 송이와 눈을 맞추었다. 한 달 전, 오 일 장터에서 대파 두 단을 샀다. 마당 한 곁 흙 속에 심어두고, 필요한 만큼만 대파 줄기를 잘라 먹거리로 썼는데, 그중 한 뿌리가 꽃을 밀어 올린 것이다. 가위를 든 채 파꽃을 보고 놀랐던 것은 대파를 먹거리의 “쓰임새”로만 보았던 때문이었다.
장날, 비닐 끈에 한 다발씩 묶인 채 리어카에 가득 실려 있던 대파는 이파리가 싱싱하고 뿌리가 튼실했다. 대파 두 단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음식에 풍미를 더할 먹거리로만 대파의 역할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마당 한 귀퉁이에 심었던 대파 중 한 뿌리는 흙과 햇빛과 물과 바람을 만나면서 문득 유전자의 엄중한 소명에 눈을 떴나 보다. 작지만 치열하게 밀어 올린 파꽃을 보며, 인간의 먹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후손을 남기려는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 대파의 의지에 뭉클했다.
역할(役割) 학습은 개인이 새로운 역할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학습하고, 그에 맞도록 행동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다. 역할의 사회화(社會化)는 개인이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역할을 습득하고, 이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역할 학습은 ‘역할 기대’와 ‘역할 수행’으로 구분된다. 역할 기대는 사회가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행동과 태도를 의미한다. 사회적 규범과 규칙에 의해 형성된 이 기대는 개인이 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반면, 역할 수행은 개인이 실제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이는 개인의 성격, 경험 기술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주어진 역할을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높은 심리적 만족을 경험하고 개인의 만족도와 직결된다. 개인에게 주어진 역할 기대는 개인의 정체성(正體性) 형성의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사회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아를 형성하고, 개인의 자기 인식과 자아 존중감에 깊이 관여한다.
예컨대, 부모, 직장인, 사회구성원 등 다양한 역할을 맞게 된 개인은 그 역할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역할 수행 과정에서 자아 존중감을 높이기에 역할 기대에 따른 역할 수행은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인식되고 평가되는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역할 사회화는 개인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역할을 내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체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역할 기대와 역할 수행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면, 그로 인해 갈등과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 꽃을 피운 대파를 더 이상 먹거리로만 대할 수는 없었다.
먹거리로 알았던 “쑥갓”이 “꽃을 피운”것을 “생전 처음” 보았던 시인은 자신이 알던 사물에 대한 “굳은 생각”에 놀란다. 채소들이 꽃도 피워내는 사실 앞에서 “저도 시를 쓸 수 있을까요/타고난 재능도 없는데”라며 지금껏 살아왔던 자신의 역할 기대와 역할 수행에 의문을 갖는다. 일 예로,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였던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역할 수행에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에게 네루다의 시처럼 멋진 시를 바치고 싶다는 열망을 갖는다.
그는 네루다에게 멋진 사랑 시를 써달라고 졸랐다. 이때 네루다는 우체부 마리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메타포(metaphor)를 가르쳐주었다. 우체부 마리오는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간절했던 사랑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게 될 수 있었고,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아직도 주어진 사회적 역할이 자신의 “쓰임새의 전부인 줄” 알고 있다면,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여 보자. “조금만 더 기다리며”, “쑥갓”처럼 자신만의 “꽃”을 피워보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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