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숯
간장독에 띄울 숯을 사러 읍내에 간다 나무 타다 만 게 숯인데 나무토막 태워서 쓰자고 해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는 참숯만 써야 한단다
읍내 장터를 다 뒤져도 숯이 없다 가슴속 한 세상 더글거리는 타다 만 숯덩이들은 쓸모가 없겠지 육십릿길 더 달려간 도회지 시장통에서 가까스로 숯을 만난다 휘발유값이 몇 배는 더 들겠다
불길이 한참 이글거릴 때 바람구멍을 꽉 막아야 참숯이 된다고, 참숯은 냄새도 연기도 없다고 숯가게 할아버지 설명이 길다 참숯은 냄새까지 연기까지 감쪽같이 태우나 보다
이글거리기도 전에 숨통이 막힌 내 청춘은 그나마 참숯이 되어 있는지 언제쯤 냄새도 연기도 없이 이글거릴지 어쩔지
간장독에 둥둥 떠서 한평생 이글거리지도 못할 까만 비닐봉지 속 숯토막들이 못견디게 서걱거린다
# 쓰임새가 달랐다. 조왕신이 현신한 듯 큰집 살림을 알뜰하게 관리하셨던 큰어머니는 가마솥의 밥물을 잦히곤 아궁이 속에서 타고 있던 장작을 부지깽이로 끌어내어 불길을 탁탁 쳤다. 불길이 잦아들며 작게 부스러진 벌건 숯덩이들을 아궁이 앞에 그러모아 그 위에 된장찌개도 끓이고, 조그만 햇감자들도 구워 간식으로 내놓으셨다. 그러나 장날 장터에서 구입했던 진천 숯가마에서 구워진 “참숯”은 항아리 안에 소중하게 두곤 간장이나 된장 만들 때나, 특별할 때만 꺼내 쓰셨다.
‘숯’은 ‘신선한 힘’이란 뜻을 지닌 우리말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탄화된 ‘숯불’을 얻을 수 있었다. 약 45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목탄’이 출현했는데, 이 숯불은 불이 꺼진 후에도 다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인류의 먼 조상들은 나무를 태운 후에 생긴 우연의 산물인 숯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나무를 태우면 열분해 되어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기체인 목가스, 액체인 목초액과 목타르와 고체인 숯이 나온다.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숯은 탄화 과정만 거친 일반 숯이다. 그러나 “참숯”의 재료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같은 참나무과 나무들로 만드는 데, 일반 숯을 만드는 일차 과정을 거친 다음, 다시 600-900도의 열을 가해 재차 열처리한다. 이런 과정에서 숯의 몸통에는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활성화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참숯은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쓰였다.
우리 선조들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새끼를 반대로 꼬아서 참숯 덩이를 끼웠다. 타인에게 아기의 출생을 알리는 동시에 참숯에서 나오는 음이온을 이용하여 출산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산모와 아기를 타인이 묻혀드릴 부패한 미생물이 일으킬 수도 있었던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려 하였다. 특히 참숯은 장을 담글 때,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였다. 간장을 담그던 날, 큰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흰 앞치마를 두르고 흰 무명천으로 머리카락을 감싸고, 잘 띄워진 메주를 간장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으신 후 전날 퍼 올려 참숯을 담가두었던 우물물을 한 바가지씩 천천히 메주 위로 부어주셨다. 알맞게 부어진 항아리에 붉은 고추와 참숯을 띄우고 항아리 뚜껑을 닫기 전, 두 손을 모으고 간장독 앞에서 공손히 절하시던 큰어머니의 모습에선 조왕신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시인의 아내도 간장 독에 넣을 “참숯”을 구해야 한다며 읍내에 간다. “읍내 장터를 다 뒤져도 숯이 없다” 요즈음엔 집에서 장을 담그기보다는 마트에서 대형 회사 제품인 간장을 사서 먹는 추세이니 간장독에 넣을 “참숯”을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 부부는 “육십릿길 더 달려간 도회지 시장통에서/가까스로 숯을 만난다”. 시인이 보기엔 “휘발유값이 몇 배는 더” 든다는 생각마저 든다. “불길이 한참 이글거릴 때/바람구멍을 꽉 막아야/참숯이 된다고,/참숯은 냄새도 연기도 없다고/숯가게 할아버지 설명이 길다”. 시인은 “참숯”을 바라보며 “이글거리기도 전에 숨통이 막힌/내 청춘은 그나마 참숯이 되어 있는지” 자성해 본다. 아마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세상을 향해 내달아 산화하고 싶었던 젊은 날을 회상해 보는 것이리라. 지금 우리가 여기 이 땅에서 자손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은 위기의 조국을 위해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불꽃으로 내닫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재가 되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삶을 한탄 하기보다는 “참숯”의 정신으로 우리의 자손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어린 자손의 문 앞에 내건 금줄이 되어주기도 하고, 간장 위에 뜬 참숯처럼 우리 삶의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쓰임새로 부끄럽지 않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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