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하루 한 번, 감사일기

홍사라 | 기사입력 2025/06/13 [14:08]

[홍사라의 풍류가도] 하루 한 번, 감사일기

홍사라 | 입력 : 2025/06/13 [14:08]

  © 홍사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일 거다. 감사일기. 

많은 매체에서 한 번쯤은 다루었던 조금은 유행이 지난 이야기다.

 

내가 감사일기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20대 때부터 나는 오프라 윈프리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볼 수 없어서, 여기저기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올라와 있는 에피소드들을 다운받아서 보곤 했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여러 번씩 돌려가며 에피소드들을 다 외울 정도로 봤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프라 윈프리가 말하는 감사일기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 저녁 다섯가지씩 감사한 일을 일기에 적는 것을 10년도 넘게 해오고 있다며, 이 습관이 그녀의 성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신기했다. 감사일기라는 말도 처음 들었고, 그게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건지 그다지 공감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좋은 일’ 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서, 언젠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뭔가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쯤, 그 감사일기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연이라기에는 뭔가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날로 마음에 드는 노트를 골라 나도 한 번 감사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말로 듣기엔 간단한 일이었다. 감사일기를 쓴다는 게. 그냥 그날 있었던 5가지 일에 감사하다는 짧은 문장을 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난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뭘 적어야 할지,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회사에서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를 마치고 온 터라, 뭐가 감사했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날은 너무 엉망진창이었어서 감사할만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화낼만한 일을 쓰라고 하면 열 가지도 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쩜 이렇게 감사할만한 일이 하나도 없는지.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는 게 없어서 노트를 펼쳐두고 펜을 굴리면서 수분의 시간을 보냈다. 정말 쓸 게 너무 없으니 5가지는 무리다 싶었다. 그래서 3가지로 줄였다. 나름의 타협안이다. 그런데 이 3개도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다가 처음 쓴 문장은 ‘오늘 업무가 어찌어찌 끝났음에 감사합니다.’ 였다. 그리고 나머지 문장들은 ‘아직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합니다.’와 같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에 관한 일들이었다. 이 간단한 3문장을 쓰는데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억지로 없는 걸 짜내어 쓰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빈껍데기 같은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 알 거다. 이렇게 나의 초라한 감사일기가 시작되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감사일기를 써왔다. 처음엔 쓰는 게 고역이었고, 너무너무 귀찮은 날도 많았다. 늘 써왔던 것은 아니다. 썼다 말았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사일기가 데쓰노트의 형태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사일기를 유지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가장 먼저 생긴 습관은 ‘메모’다. 너무 쓸 것이 없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감사할 만한 일이 생기면 그걸 기록해 두어야 했다. 너무 사소하거나 금세 잊어버려서 저녁에 쓰려고 하면 기억이 나지 않아 또 천장만 한참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모를 해두면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지금도 나는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다. 메모만큼 머리를 비우는데 좋은 것은 없다.)

 

신기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쓸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나의 감사일기는 조금씩 쓸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일기를 써서 감사할 일이 더 많아졌다기 보다는, 자기전에 감사일기를 써야하니 거기에 쓸 말을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찾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냥 넘길만한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만한 일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또 속상한 일도 ‘그만하면 다행이지.’라고 생각하는 여유도 조금은 가지게 된 것 같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그저께 택배가 오배송되었는데, 막상 잘못 배송된 집에서는 모르쇠로 나와서 난감한 일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료가 거의 다 떨어져 가서, 강아지 처방식 사료를 주문했는데, 이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지인에게 부탁해서 어렵게 받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싼 것도 비싼 것이지만, 다시 받으려면 10일은 족히 걸리는 일이라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난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담당 부서에서는 귀찮다는 듯 응대했고, 집배원분은 어찌할 줄 몰라하는 눈치였다. 속으로는 ‘오배송된 물건도 가져가며 절도죄에 해당한다던데 확 신고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내 택배는 우여곡절 끝에 오늘 우리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비록 오배송 받은 집에 누군가가 다 뜯어보고 다시 포장되어 오기는 했지만. 그래서 오늘 감사일기 1번은 “사료가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강아지가 저녁을 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가 되었다. 화나는 일이 다행인 일로 바뀐 것이다.

 

여전히 쓰기 싫은 날도 있고, 유난히 쓸 게 없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감사일기를 여전히 고집하고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매일 그것을 써야 하는 귀찮음보다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서 읽어보면, 아 그날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감사일기를 매일 적다 보면 세상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감사할 일도 조금씩 더 많아지고. 당연한 것들도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왠지 내가 조금 더 좋은 기운을 가지고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감사일기는 평안할 때보다 삶이 괴로울 때 더 큰 효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뭔가 불만족스럽다면 오늘부터라도, 한가지씩이라도 감사일기를 써보면 어떨까? 뻔한 말 같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 오프라 윈프리의 말로 끝맺음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이 정말 그렇다고 믿는다.

 

"The more thankful I became, the more my bounty increased. 

That's because, for sure, what you focus on expands.

When you focus on the goodness in your life, you create more of it."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나의 풍요로움은 더 커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확실히 초점을 넓히기 때문이다. 

삶의 좋은 점과 좋은 점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만들어냅니다."

 

"Be thankful for what you have, you'll end up having more. 

If you concentrate on what you don't have, you will never, ever have enough."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라; 당신은 결국 더 많은 것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집중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충분히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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