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말하는 존재다. 언어(言語)는 내 생각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세상을 인식하게 한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인식의 틀이고 존재의 방식이다. 같은 경험이라 해도, 어떤 언어로 말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른 체험으로 남는다.
한국인은 과로하면 어깨가 결린다고 말하고, 미국인은 등이 아프다고 말한다. 같은 육체적 고통이지만 표현이 다르고, 따라서 그것을 감각하고 기억하는 방식도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등에 부상을 입은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일할 때, 미국인들은 그의 불편한 자세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등이 아플 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언어는 곧 공동체의 인식이 되었던 것이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가 사고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고를 만들어내는 구조라고 보았다. 언어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이며, 언어의 빈곤은 곧 내 삶의 단순화, 감각의 무뎌짐, 의미의 마름으로 이어진다.
은퇴 후 세계 여러 멋진 곳을 여행하신 분이 다녀온 장소들을 설명해 주는데 별 감흥이 없다. 다녀온 곳 모두를 “너무 멋졌다”, “정말 아름다웠다”, “진짜 예뻤다”로만 표현하고 있어서다. 말이 사라지면 풍경도 사라진다. 풍경이 사라지면 기억도, 감정도, 삶의 결도 함께 빛을 잃는다.
갑골문에서도 言(언)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뜻, 자연의 섭리를 세상에 퍼지게 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語(어)는 내가(吾) 신의 대변자로서 내놓는 말(言)이었다. 3~4천 년 전 갑골시대부터도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설계도이자 명령문이었다.
말을 가볍게 여기면, 내 행동도 가벼워진다. 말이 가난해지면, 나의 감각도 가난해진다. 나의 사랑도, 분노도, 설득도, 신에 대한 기도도 모두 메마르고 무뎌진다. 그러므로 말의 품격은 곧 삶의 품격이고, 말의 책임은 곧 존재의 책임이다.
가진 돈과 명예, 나이에 비해 주위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면 내 말의 빈곤을 의심해봐야 한다. 내 말이 빈곤해질 때, 내 삶도 빈곤해지기 때문이다. 말의 빈곤은 내가 마주한 세계를 작고, 얕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가? 멋진 풍경을 보고 비속어를 제외하고 50개 이상 다양하게 표현할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언어의 풍요를 위해 어떠한 책을 읽고 있는가? 나는 인공지능으로부터 훌륭한 답변을 유도할 수 있도록 더 훌륭한 질문의 언어를 생성하고 있는가?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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