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약자의 편향에 빠진 사회, 형평독재를 조심하자

박항준 | 기사입력 2025/04/18 [11:34]

[박항준 칼럼] 약자의 편향에 빠진 사회, 형평독재를 조심하자

박항준 | 입력 : 2025/04/18 [11:34]

▲ IISC(Interaction Institute for Social Change) ⓒAngus Maguire


우리는 종종형평이라는 말을 정의(正義)’의 다른 이름처럼 여긴다. 특히 위의 그림처럼, 서로 다른 조건의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보기 위해 박스를 나눠 가진 모습은, 형평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암시하는 이상향이 정말로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형평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선으로 기능하기 시작할 때, ‘형평 독재라는 또 다른 모순을 낳을 수 있다.

 

예컨대 위 그림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은 아무런 설명 없이 자신이 서 있던 박스를 빼앗겼다면?, 그가 자발적으로 사양지심에서 양보한 것인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박탈당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반대로 박스를 받은 키 작은 사람은 그 도움에 대해 감사함이나 사회적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지도 중요하다.

 

혹여나 키가 큰 사람이 허리가 약해 경기를 보는 동안 잠깐 앉아 쉬어야 한다면, 그를 위한 의자는 어디에 있는가? 쉬는 시간이 되면 박스를 되돌려주는 계약이 준비되어 있었는가? 혹은 키 작은 사람은 이 도움을 갚기 위해 박스를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만약 그가 단지작기 때문에모든 혜택을 받아야 한다면, 그 형평은 노력 없는 특권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키 작은 사람이 그렇게 된 이유도 중요하다. 그것이 선천적 조건이라면 제도적 배려가 가능하겠지만, 만약 본인의 과실로 인해 낮은 위치에 있게 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키 큰 사람 역시 오랜 노력과 자기관리 끝에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면, 높은 키는 죄가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양보를 강요 받고, 시기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정의(正義)가 아니라 또 다른 차별이다과정 없는 형평은 정의가 아니다. 분배 이전에 고려되어야 할 것은 그 분배가 어떻게 도출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형평을 이유로 모든 문제를 재단하는 태도는, 약자의 언어로 포장된 새로운 형태의 독재일 수 있다

 

형평은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의 사유, 책임의 재분배, 가치의 상호 이해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누군가의 것을 일방적으로 가져다 채우는 것,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반복될 때, 형평은 점차형평독재로 변질된다. 약자 편향은 언뜻 도덕적으로 옳아 보이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불균형을 만들 수 있다특히, 상황과 무관하게 무조건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평등독재도 문제이며, 진보진영의 형평독재 또한 문제가 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모든 노력을 무시하고, 특정집단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사회는 '부와 권력의 독점'이나 '희생자의 권력화'라는 기묘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것들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진정한 '형평'은 나눔 이전에 신뢰와 공감, 그리고 책임을 포함해야 한다. 상자를 준 사람이 잠시라도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받은 사람이 그것을 되돌려주려는 의지를 보이며, 서로가 서로의 무게를 이해하는 사회. 그것이 건강한 형평이다. 형평의 가치는 결과만이 아닌 과정에도 존재하여야 한다. 결코 단편적 이미지로 모든 정의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이미지 뒤에 숨은 형평의 독재.

 

강조하건데 형평은 필요하지만 절대선은 아니다. 형평이 진정한 정의로 기능하기 위해선, 그것이 자발적 존중과 합의, 그리고 상호 보상과 책임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평은 화합이 아닌 분열을 낳고,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억압의 새로운 얼굴이 될 뿐이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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