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게 하는 것 하나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겐 그것이 스케치였고 계속 이 습관을 유지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가치 있는 스케치로써 주변에 나누고자 합니다" - 방명세 정림씨엠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아리수 갤러리'에서는 정림씨엠건축사사무소 방명세 대표의 첫 번째 개인전 '또 다른 시선'이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건축가 방명세의 필드스케치와 아카이브'를 부제로 하는 만큼 방명세 대표가 20여 년간 국내외 현장을 오고 가며 보고 느낀 것을 '그리고(draw) 정리하고(organize) 내재화(internalize)'한 출장 수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중 코이카(KOICA) 해외 업무를 다년간 수행하며 해외 출장을 다녔던 그는 해외 출장 중에 틈틈이 수첩에 메모와 간략한 스케치를 해왔다. '출장 정리 흔적'이고 '기억의 한계를 넘으려는 습관'이었다.
12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한 방 대표는 스케치 습관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학생 때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낙서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산만하고 집중이 안 되는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긴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건축가로서 활동하던 중 본부 리더로서 첫 해외 출장지에서 본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에 메모와 거친 이미지 스케치를 반복하던 것이 습관의 시작이 됐다"고 밝혔다.
이런 습관을 지속하다 보니 산만하고 논리적으로 정리가 안 되는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려던 낙서가 어느새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으로 발전하게 됐다.
특히 뉴욕에서 마주한 '브루클린 브리지'를 보고 그린 스케치는 오늘의 스케치가 있게 한 기점이 됐다.
브루클린 다리는 로블링 가족의 염원이 담긴 건축물이다. 토목건축 기사였던 존 로블링은 획기적인 방법으로 다리 건설에 착수했다가 안타까운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이어받아 진행했다. 하지만 그도 감압증에 걸려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게 됐고 그의 아내인 에밀리 로블링이 메신저 역할을 도맡아 공사 현장을 지휘했다. 가족들의 13년간의 집념으로 완성된 건축물이다.
방 대표는 "항상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 어려운 현장을 찾아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하고 격려해 왔다. 그러던 중 뉴욕에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찾아 건립 과정을 봤는데 무려 140년 전에 완성한 건축물이었다"라며 "특히 아버지와 아들을 거쳐 며느리가 완성한 집념의 상징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34년을 달린 나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에서도 스케치를 시작한 그는 스케치 습관을 조금 더 조밀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업무에 적용하던 'OKR'을 적용했다.
OKR은 'Objective(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 Key Result(핵심 결과)'의 약자로 'O'는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나타내며 'KR'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의미한다.
그는 달성 가능한 목표를 '글 쓰고 스케치하기'로 두고 이를 위한 방법으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 만들기'에 집중했다. 비행기와 호텔에서 TV나 모니터를 켜지 않았고, 조식 전에 전날 일정과 이슈를 일기 쓰듯이 정리했다.
방 대표는 "개인적으로 새벽 시간이 제일 머리가 맑아서 아침 일과 전에 메모하거나 30분 정도 일과를 정리한다"며 "출장 갔을 땐 비행기나 호텔에서 집중해서 30분 만이라도 내 시간을 만드는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시간을 집중하면 나중에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며 "자기만의 비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같이 출장을 다니면서 방 대표의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본 김원철 정림씨엠 코이카 아프리카 지역CM 단장은 "같이 출장을 2주 동안 다닌 적이 있는데 비행기에서도, 조식 먹을 때까지도 스케치를 해서 보여주곤 했다"며 "전시관 한 면에 채워진 함께 했던 시간을 보니까 '기억은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어 "방 대표의 스케치는 사실적인 모습의 전달과 순간의 생명력을 전하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건축을 노가다로 칭하지만,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땀 냄새 나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전한다"며 "'또 다른 시선'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해주는 것 같다"고 전시 관람 소감을 전했다.
전시는 ▲출장수첩 아카이브 ▲WORKS(해외 현장 필드 스케치) ▲Looking into Life & Heritage 등 3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출장수첩 아카이브 전시에서는 방 대표의 지난 20년간 습관이 됐던 출장수첩의 의미와 인생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습관의 시작부터 '한 장 정리'가 주는 의미까지 확인해 볼 수 있다.
해외 현장 필드 스케치 전시에서는 코이카 사업과 함께 ▲아이티 ▲페루 ▲과테말라 ▲파라과이 등의 출장 일정과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콜롬비아(한콜우호센터 건립공사), 볼리비아(엘알토 3차 병원 증축 등), 에콰도르(과야스주 보건의료센터 건립), 세네갈(EDCF 국립암센터 등), 에티오피아(오르미아주 보건의료센터), 콩고민주공화국(국립박물관) 등 주도했던 사업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Looking into Life'는 세계 각지의 시장 사람들, 광장에서 사진 찍는 가족과 연인들, 또래 친구끼리 엉켜있는 모습, 어촌 사람들 등 그들의 일상을 또 다른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들이며 'Heritage'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어디를 가도 기억할 만한 자연유산과 옛 흔적들의 광경을 그려냈다.
이날 전시관을 찾은 이형재 정림건축 고문은 "신입사원 때부터 방 대표를 봐서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저는 건축가로서 무채색 잿빛만 그렸다면 그는 본인의 건축에 대한 열정, 희망 이런 것들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축은 사물이고 이러한 사물을 문화로,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우리 CM의 작업"이라며 "예술로 현장을 바라보는 일을 방 대표가 앞장서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 전공을 하는 한 남학생은 건축가 꿈을 갖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방 대표는 "건축은 오래가는 학문"이라며 "시대가 바뀌면 행태도 바뀌지만 무조건 필요한 부분이기에 단기적으로 보지 말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얼마든지 성장하는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방 대표가 생각하는 가슴 뛰는 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평생 일만 하고 살았는데, 가슴 뛰는 일을 하면 마음에 평화가 오고 힘이 된다"며 "하고 나면 마음이 좋아지니까 오히려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만큼 스케치는 내게 의미 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힐링이 되지만 이제는 주변과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게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이제 일은 좀 줄이고 스케치를 늘리는 게 바람"이라고 밝혔다.
한편, 방명세 대표는 'WORKS'에 해당하는 액자 스케치는 코이카에 기증할 예정이고 전시회 수익금은 아이티와 아프리카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후원할 계획이다.
문화저널21 이한수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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