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국가와 민족 간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다. 인터넷과 이동성의 증가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중 국적을 갖거나, 하나의 국적만을 가졌더라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민족과 국적의 개념은 단순히 혈통이나 출생지가 아니라, 개인이 선택하고 조정하는 정체성의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의 틀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다.
전통적으로 민족 정체성은 언어, 역사, 종교, 문화적 유산이라는 시간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었고, 국적은 법적·행정적 개념으로 공간적 맥락에 의해 구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디아스포라와 이민자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틀에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하고, 일본에서 일하며, 유럽에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민족과 국적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단일화될 수 없다. 따라서 중첩된 민족성과 국적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의 민족 정체성 논의가 동질성과 결속을 강조했다면, 글로벌 시대의 정체성은 다층적이고 유동적이다. 이제는 하나의 정체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조합하여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나 민족을 넘어 개인의 가치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기존의 국적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적이 단순히 시민권과 법적 소속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국적을 선택하고 변경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기회, 교육, 비즈니스, 정치적 자유 등을 이유로 국적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특정 국적이 단순한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설계하는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중 국적자의 법적 지위, 권리, 의무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에 대한 유연한 태도다. 과거에는 민족과 국적이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면, 이제는 개인이 자신의 삶의 경험과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하는 초개인화 시대다. 글로벌화된 사회에서는 민족과 국적이 단일한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경험을 중심으로 다층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여정 속에서 계속해서 변화하고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아스포라는 더 이상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정체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이들은 현재 소속된 국가의 시민으로서 소속된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자신의 민족적·역사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중첩의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어느 한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는 미국 시민으로서 사회·경제적 공동선을 추구하는 구성원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자신의 민족적·역사적 정체성을 활용하여 공동선의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발전을 위해 기여하면서도, 자신의 문화적 뿌리와 정체성을 자산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디아스포라는 종종 정체성 갈등 속에서 이방인으로 머물렀지만, 이제는 사회적·경제적 주체로서 자리 잡으며, 다층적 정체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시대다. 정체성의 중첩을 갈등이 아닌 강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 디아스포라는 글로벌 사회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결국 글로벌 시대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민족이나 출생지에 묶이지 않고, 중첩된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려는 시도보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어떻게 정체성을 확장하고, 소속된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더불어 국가와 사회는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유연성을 인정하고, 민족과 국적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정체성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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