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노트] 소설가 주수자, 언어의 기억을 찾아 나선 여정의 기록

소설가 주수자가 말하는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와 문자의 생명력

이종인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5/02/17 [16:40]

[출판인노트] 소설가 주수자, 언어의 기억을 찾아 나선 여정의 기록

소설가 주수자가 말하는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와 문자의 생명력

이종인 객원기자 | 입력 : 2025/02/17 [16:40]

# 문화저널21 <출판인노트>는 출판 기획자, 편집자, 마케터 등 현직 출판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무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장편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이종인 객원기자

 

책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래된 돌에 새겨진 글자를 해독하는 작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지워진 흔적을 따라가며 사라질 뻔한 이야기들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 소설이고,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힘을 빌어 언어의 시간을 추적해왔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자 정체성을 규정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내게,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를 집필하면서 한글이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과 철학이 담긴 심오한 구조물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국문학자 김태준이 해례본을 찾아가는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실제로는 언어의 본질과 기억을 탐구하는 이야기다. 글자 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다. 말과 글이 억압받고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언어를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훈민정음의 창조된 근본 원리가 밝혀지지 않은 채 그저 단순한 문자로서만 사용되어 왔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글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살아 있는 존재'였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낱낱이 밝히며 한글이란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탄생된 언어 체계임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나는 한글을 '1인칭 화자'로 등장시키며 언어 자체가 스스로 증언하는 형식을 실험했다. (어쩌면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 소설가 주수자     ©이종인 객원기자

때때로 나는 언어가 미로와 같다고 느낀다. 보르헤스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끝없는 도서관의 복도를 걷고 있으며 문장의 문장들이 서로 연결되며 얽힌다. 한 글자가 다른 문장과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언어는 필연적이면서도 우연적이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이미 어딘가에서 기록되었고, 그 기록들이 겹겹이 쌓여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왜 기록하는가. 김태준은 국문학자로서 자신이 기록하고 연구한 것들을 온전히 후대에 전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의 혼란 속에서 그의 연구는 정치적·사상적 틀에 구속되어 조명받지 못했고 결국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혀 역사의 탁한 물결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헌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쓰면서, 기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문학은 단순히 허구를 창조하는 일만이 아니다. 문학은 망각과 싸우는 과정이며, 우리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이다. 책이 한 권 태어나고 누군가 그것을 읽고 다시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언어를 기록하는 일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쓰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유영하는 행위다. 나의 문장 하나하나는 이미 존재했던 것들의 그림자이자 새롭게 태어날 문장들의 예고편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문자를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그 문자들이 얼마나 깊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사유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스마트소설'을 써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는 속도를 요구하지만 그럼에도 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학은 형태를 바꾸며 시대와 함께 살아남는다. 과거에는 이야기꾼들이 광장에서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지금 우리는 짧은 문장 속에서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문학은 반드시 길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빠른 시대 속에서도 사유의 깊이를 잃지 않는 글쓰기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기록을 남기지만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하는 고민이 남는다. 언어(문학)는 기억의 유산이다. 누군가가 그것을 듣고, 읽고, 다시 말할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문장을 쓰면서 이 말들이 먼 훗날 누군가에게 다시 읽히기를 바란다.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따라 다시 길을 떠나고, 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과 조우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를.

 

문화저널21 이종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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