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계선편 중에서 <동악성제>의 가르침에 말하기를 천자는 사사로움이 없고, 신명은 어두운 곳에서도 살피시니 "복을 내릴 사람에겐 제를 올리지 않아도 복을 내리고, 재앙을 내릴 사람에겐 도리를 잃지 않아도 재앙을 내린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마치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하나 날마다 자라고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마치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없어도 날마다 줄어들고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명심보감 천명편 中 <익지서>에 이르기를 "악한 마음이 몸에 가득차면 하늘은 반드시 그를 벌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악한 자가 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악한 행동이 아직 몸에 가득차지 않았을 뿐 하늘은 반드시 그를 벌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악한 이가 언젠가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말에 치밀던 화가 가라않고, 내 스스로 위안이 된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잠언들은 마치 비 오는 날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단순하고 맑은 울림으로 기억된다. 특히 명심보감은 그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텍스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울림은 점차 복잡한 색을 띠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수많은 경험과 실패, 그리고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명심보감이나 채근담과 같은 서적을 잠언서라 한다. 잠언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늘처럼 날카롭고 짧은 경구"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자로는 경계할 잠(箴)과 말씀 언(言)으로 이루어져, "경계하거나 깨우치기 위해 전하는 짧고 핵심적인 말"을 의미한다. 잠언의 본질은 길고 복잡한 설명 없이도 인간의 본질, 삶의 교훈, 또는 도덕적 원칙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잠언은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서 형성되어 왔으며, 그 안에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명심보감과 같은 잠언 문구들을 보면서 종종 “맞아, 맞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자기 동의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의는 때때로 우리의 경험을 합리화하거나, 과거의 실수를 위로하며 자신만의 견고한 관념적 성(城)을 쌓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선택적 수용과 자기 위로는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자기 관념의 맹신 속으로 이끈다. 이를 확증편향이라 칭한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의 신념, 의견, 또는 기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인지적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사고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인지 편향의 한 형태로, 심리학, 철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반면,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글을 읽지 않는다.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잠언 속 본질과 지혜는 아이들에게 순수한 형태로 전달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선택적 수용도, 자신을 합리화를 위한 해석도, 타인을 비판하는 데 사용하는 일도 없다. 그렇기에 옛 성인들은 훌륭한 명심보감을지금의 초등학교 교과서로 분류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비어 있는 화폭과 같아서, 그 위에 잠언의 씨앗이 뿌려질 때 지혜가 맑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명심보감을 단순히 삶의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잠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그것이 자신의 경험과 맞닿을 때 생기는 자기 위안이나 합리화를 경계해야 한다. 잠언은 비판의 도구나 신념화를 위한 틀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로 활용되어야 한다.
명심보감은 아이들에게는 삶의 첫 번째 나침반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지혜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편견과 성벽을 허물고, 잠언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를 얻어야 하겠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 역사문화아카데미 사무총장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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