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큰 명절 중 하나, 추석이 지났다.
명절이라 함은 자고로 먼 친척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소식을 전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음식도 만들고 제사도 지내는 그런 자리다. 요즘엔 명절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긴 휴가를 이용해 여행도 많이 가고, 제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내지 않는 집이 많다. 내가 좀 고지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상을 대하는 제사도 명절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다. 내가 그것을 중요시 생각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진 빚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보고 심각한 조카 바보라고 한다. 조카는 조카일 뿐 키워봐야 소용없다며, 시간도 돈도 이제 그만 쓰라고 한다.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해봤지만, 처음 보는 순간 그냥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직도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의 그 깊고 깊은 바다 같던 눈동자를 기억한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알았다. 이 아이를 내가 이 작은 생명체와 얼마나 사랑에 빠지게 될지. 그 작던 꼬마는 벌써 일곱 살이 되었다. 이제는 말하는 것도 제법 어른스럽고, 혼자서 샤워도 할 줄 안다. 자라는 과정을 쭉 봐왔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 작은 생명이 이마만큼 자라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여섯 살이 될 때까지는 밥을 하도 먹지 않아서 한번 밥을 먹이려면 한 끼에 두 시간씩은 족히 걸렸다. 먹지 않겠다며 입을 가리고는 ‘안먹!’ 하는 아이를 달래고 꼬드겨 한 수저씩 밥을 먹였다. 우리 꼬맹이는 잠자는 것도 힘들어했다. 아기를 재우려 치면 깜깜하게 불을 다 끄고, 숨소리도 안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아기를 안고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걸어 다녀야 했다. 덕분에 그 꼬마의 부모는 관절이 다 나갔었단다. 혼자 샤워를 하게 된 것도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제 겨우 일 년 정도 되어가나. 그 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 꼼꼼히 아이를 씻겨주어야 했다. 길어지는 머리 길이 만큼이나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는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아기일 때는 그저 씻기고 말리면 그만이지만, 요즘에는 샤워하는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입도 맞춰주어야 한다. 들어가는 공이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고작 일곱 살, 요만한 꼬마가 되기까지도 이렇게 많은 공이 든다.
조카랑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나도 저만할 때가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가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다.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자식들도 무릎에 앉혀 키운 적이 없으시다던 우리 할아버지가 내가 태어나고 나서는 늘 무릎에 올려놓고 놀아주셨다고 했다. 그만큼 나는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어렴풋이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이 다 나를 엄청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는 부모님, 조부모님, 친척들의 시간과 정성, 사랑이 깃들어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렸던 나와 사랑에 빠진 이유로 나에게 그 모든 것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모든 사실을 잊고 산다. 어쩜 그렇게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까.
사랑과 정성이 가득했던 기억들 사이사이로 세상을 살면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들이 끼어들어, 예전에 나를 가득 채웠을 그 따뜻함은 많이 희석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조카만큼이나 많은 사람의 사랑과 정성, 시간과 희생으로 키워진 아이다. 그런데 나는 그 노력만큼 나는 누군가에게 그 정성을 돌려준 기억이 없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 중에 사람은 아주 연약하게 태어난다. 송아지, 기린, 사슴 코끼리 같은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다. 동물 대부분은 출생 후 몇 분 이내에 기어 다니고 설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일어나 움직이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걷기까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유약하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어서지도 먹지도 못하니, 그대로 두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남을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의 수고로 생명을 연명한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간을 거쳐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그 시간 만큼, 그 누군가의 희생만큼 세상에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 빚을 진 사람이 부모이든, 다른 누구이든, 우리가 그 시간을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누구나 태어나서 얼마간의 시간 동안은 빚을 지게 된다. 우리 할아버지는 늘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빚지고 살지 마라, 누군가가 공짜로 너에게 무엇을 준다고 해도 그냥 무조건 받지 마라. 언젠가는 다 돌려주어야 하는 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옛날 분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걸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단순히 금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나 마음을 빚질 수도 있다. 빚을 졌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하게는 내가 빚진 사람에게 그 빚을 갚으면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그럴 수 없다면, 세상에 내가 진 빚만큼의 크기를 되돌려주면 된다.
우리는 누구나 빚진 인생을 살고 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태어나 스스로는 물 한 모금조차 넘길 수 없었을 테니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시간에 기대어 살아왔다.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이다. 요즘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 ‘아니, 세상이 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에게 하는 교육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뭔가 빡빡하게, 사람 냄새가 덜 나게 살아가는 듯하다. 이런 세상일수록 누군가는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해 세상에 돌려주면서 살면 좋겠다. 시간을 내어 가까이는 나의 가족과 이웃에게, 멀리는 말을 못 하는 동물에게,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내 마음을 내어줄 수도 있고, 그렇게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몽상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깝고 밝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조금씩 빚진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마치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바라는 것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조금씩만 내 것을 내어주는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생각한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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